중년의 허전함은 지금껏 살아온 삶에 문득 의문이 들면서 시작된다. 분명, 정신없이 그리고 열심히, 열정적으로 살아왔는데 어느 순간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온 것인가"하는 의문이 들 때, 중년은 허전함을 느끼며 길을 잃고 멈춰 선다.
나는 내가 소중하게 생각했던 가치와 꿈을 중년이 되면서 내려놓고 안정적인 삶을 선택하면서 허전함이 몰려왔다. 물론, 현재의 삶에서도 나의 가치와 꿈을 실현할 방법은 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변화 속에서 난 길을 잃은 느낌으로 안개가 자욱한 앞을 내다보고만 있다. 걸어갈 힘을 잃은 채...
책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주인공 '펄롱'은 그런 나 자신이, 얼마나 한심하고 나약한 존재인지 느끼게 해주는 중년의 가장이다.
'남들이 비웃을 정도로 빈손으로 태어난’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다섯 명의 딸과 아내를 둔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의 중년 가장, 펄롱.
펄롱은 삶이 풍요롭지는 않지만, 석탄을 팔면서 번 돈으로 어제와 다를 바 없는 하루하루를 사는 평범한 소시민이다. 그래도 펄롱은 가족을 사랑하고, 동네의 어려운 아이들을 보면 주머니에 있던 잔돈을 다 내어 줄 정도로 따듯한 마음을 가졌다.
그러나 펄롱에게도 가슴이 아리는 고민의 순간들이 있다.
펄롱은 지금의 삶에 문제가 없는지 늘 고민하고,
어렵게 사는 동네 아이들을 보면서 고민하고,
자신의 출생과 아버지에 대해 궁금해하며 가슴 한 구석의 허전함을 느끼며 살아간다.
하지만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쁜 일상의 무게는 펄롱이 그런 고민에 깊게 빠져들지 못하게 한다. 그저 평범하고 조용하게 살도록 만든다. 가치를 고민하고 자신의 의지를 펼칠 여유조차 없이 하루를 버텨내는 것조차 버거운 중년의 삶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말이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다시 읽어보게 되는 책의 첫 문단.
그런 펄롱이 수녀원 세탁소의 아이를 만나게 되면서, 그의 내면에 있던 작은 불씨에 불이 붙는다. 수녀원이라는 거대한 울타리 안에서 착취당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고 하대 받으며 살아왔던 자신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을 것이다.
펄롱은 평소답지 않게 원장 수녀에게 저항하고, 집에 와서 깊은 고민에 빠지고, 결국은 아이를 구출한다. 그러면서도 펄롱은 아이를 구해야 한다는 자신의 신념과 당장 내일부터 닥칠 현실의 문제 앞에서 갈등한다.
완벽한 슈퍼 히어로가 아닌 인간적인, 소시민의 용기 있는 행동에서 독자들은 “나라면... 이럴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평범해 보였던 펄롱의 이 행동은 지킬 것이 많은 중년들의 삶에 묵직한 파장을 일으킨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18~20세기에 아일랜드에서 운영된 막달레나 세탁소에서 있었던 실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바쁘게 뒤를 돌아볼 여유도 없이 경주마처럼 달리기만 하는 중년에게도 가치와 꿈을 향해 열정을 쏟아내던 순간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지킬 것이 많아진 중년들은 다시 그렇게 뜨거워질 자신이 없다. 그런 중년들에게 펄롱은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져준다.
그리고 펄롱은 실천의 방법까지 제시하고 있다.
(...) 먼 길로 돌아가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펄롱은 용기를 내어 평소에 다니던 길로 계속 갔다. (...)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 그럼에도 펄롱은 순진한 마음으로 자기들은 어떻게든 해나가리라고 기대했고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 본문 118~120p 중 일부 -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는 용기를 내어 나를 바라보고 진심으로 협력하며 바른 길을 향해 나아가자고 말하는 것 같다.
협력. 용기. 진심.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말하는 세 가지만 기억하면 불씨가 꺼져버린 중년도 눈앞의 안개를 걷어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설사 펄롱처럼 거대한 부조리에 맞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일상 속 작고 사소한 것에 대한 고민부터 시작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