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함께 중년을 건너가는 중입니다 (3) : 책 대신 영화 이야기
본래 '책과 함께 중년을 건너가는 중입니다'는 책을 통해 만나는 중년의 고민을 담는 글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책은 아니지만 중년의 고민과 연결 지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영화 <인사이드 아웃 2>에 대한 감상을 정리했습니다.
'아... 왜 자꾸 눈물이 나지...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적이거나, 슬픈 내용도 아닌데. 주책없이 왜 이렇게 자꾸 눈물이 나는 거냐고...'
어두운 극장에서, 9살 쌍둥이 딸들과 <인사이드 아웃 2>를 보면서 나는 흐르는 눈물을 닦지 못했다. 딸들이 만화영화를 보면서 눈물 흘리는 아빠를 이상하게 볼까 봐 눈치가 보였다.
나는 무엇이 불안해서 내 감정에 솔직하지도 못하고 이렇게 눈치를 보는 것일까? 나름 감정 표현에 솔직하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자식 앞에서는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나 보다. 생각이 유연하지 못 한 나는 어른일까, 아이일까?
"어른이 된다는 건 기쁨을 느낄 일이 줄어드는 것인가 봐."
극 중 기쁨이의 대사다. 나는 눈물을 흘리면서 생각했다.
"어른이 된다는 건 기쁨도 슬픔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없는 불쌍한 상태인가 보다."
40대 중년의 나이에 나는 그렇게 '만화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그저 아이들과 주말에 시간이나 때울 생각이었는데...
<인사이드 아웃 2>가 개봉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쌍둥이 딸들은 난리도 아니었다. 꼭 보고 싶다고, 꼭 보러 가자고 그렇게 신신당부를 하면서 약속을 강요했다. <인사이드 아웃 1>을 인상 깊게 봤던 딸들은 <인사이드 아웃 2>에 대한 기대가 컸다.
나 역시 전편을 좋은 느낌으로 봤기에 나름의 기대와 주말에 아이들과 시간 때우기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극장으로 향했다. 영화 속 주인공이 사춘기 소녀인 탓인지 극장에는 비슷한 나이의 관람객들이 많았다.
<인사이드 아웃 2>는 영화 초반에 '사춘기'라는 경고등이 들어오면서 한 바탕 난리가 나면서 전편에는 없었던 새로운 감정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새로운 감정들 중에서 '불안'이가 초반에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하필 불안이라니....
언제나 나를 긴장하고 타인과 비교하게 만들었던 '불안'
소심한 사춘기를 보냈던 나는 늘 불안했다. 100m 달리기를 할 때도 출발선에 서면 가슴이 쿵쾅 거렸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했던 나는 발표 수업 전날이면 잠도 제대로 못 잤다.
그리고 이런 '불안'은 나를 타인의 반응에 예민하게 행동하고, 남의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으로 만들었다. 타인의 반응에 예민하고, 눈치가 빨라야 실패에 대응하고, 타인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야 선생님과 부모님, 친구들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고 인정을 받아야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불안이'와 라일리의 모습은 나의 사춘기를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불안이의 불안한 모습과 결정이 낯설지 않았기에 기쁨이를 힘들게 하는 불안이가 그리 밉지 않았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라일리가 저 불안을 어떻게 이겨낼지, 라일리의 몸속에 있는 감정들이 어떻게 변화할지 기대하면서 스크린에서 시종일관 눈을 떼지 못했다.
나는 나의 '사춘기'로부터 얼마나 성장했을까
영화는 그렇게 누구나 겪었을 '사춘기'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중년의 나는 머릿속에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지금 당신은 라일리보다 많이 성장했습니까?"
라일리보다 30년 이상 더 살았지만 나는 여전히 불안하고, 타인의 눈치를 보며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경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중년이 된 지금은 그동안 갖고 있던 나의 꿈과 사명조차 흔들리고 있고, 그동안 내가 쌓아온 '자아'가 흔들리는 느낌마저 받는다. 사춘기 그 시절처럼 중년도 새로운 자아를 형성해야 하는 시간인 모양이다. 영화 속 라일리처럼 중년도 삶 속에서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래서 <인사이드 아웃 2>는 대한민국의 사춘기 10대들 뿐 아니라 중년들까지도 울게 만들 것 같다.
그래도 이제는 조금 알고 있다. 타인이 주는 인정보다는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나는 어른이 된 나의 내면에서 여전히 기쁨이보다 불안이가 더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나는 아직 내 안에 잠들어 있는 기쁨이를 부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아는 것과 실천은 별개의 문제인 모양이다. 그래도 제2의 사춘기를 보내며 나의 상태를 깨닫고 있으니 점차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해본다.
중년에 다시 찾아보는 진짜 '나'
영화를 보면서 나는 아직도 내가 누구인지, 나의 감정과 나의 마음과 행동은 어떤 원리로 작용하는지 정확히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실은 나를 반성하게 만들었고, 진짜 '나'를 찾아야겠다는 각오로 이어졌다.
그런 생각과 각오가 들면서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9살 딸들과 함께 주말에 시간이나 때울 생각으로 보러 갔던 영화에서 나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저 하루하루 사는 것이 바빴다는 핑계 속에서 나는 몸만 성장한 중년이었다는 것을 <인사이드 아웃 2>를 통해 깨달았다.
중년이라면 꼭 한 번 <인사이드 아웃 2>를 보면서 지난 사춘기 그리고 중년이 겪고 있는 또 한 번의 사춘기를 어떻게 보낼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 진짜 '나'를 찾는 여정과 방황은 사춘기가 아니어도 삶이 이어지는 한 계속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