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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현 Jul 28. 2020

그래도 엄마와 함께여서 좋았다

#대만일기 5. 안녕, 타이완


집에 가는 날. 오후 한 시였던 귀국 편이 두 시간이나 앞당겨져 열한 시가 되었다. 그렇게 타의로 오전 일정을 통으로 비울 수밖에 없었다. 바뀐 시간을 보고 늦은 오후로 바꿀까 하다 말았다. 친구들과의 혹은 나 홀로 여행이었다면 심야 비행기나 내일 새벽에 떠나는 비행기를 탈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엄마와의 여행' 중이니까. 나도 그렇지만 엄마 역시 당장 내일부터 출근을 해야 했기에 짧더라도 쉴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시간 맞춰 가면 된다'는 나의 모토와 '미리미리 가있어야 한다'는 엄마의 모토는 여행을 할 때면 더 자주 부딪친다. 그래도 경험이 더 많다고 "엄마, 어차피 일찍 가도 할 거 없다니까. 그냥 맞춰서 가면 돼."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데 엄마는 늘 "그래도 사람 일이라는 게 모르잖아. 일찍 가있자."라 한다. 그래 어쩌겠어, 엄마와의 여행인데 엄마 마음이 편해야지. 그래서 엄마는 오전 7시에 그리고 나는 7시 10분에 일어나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완벽하게 정리된 캐리어를 끌고 식당으로 내려가 마지막 조식을 먹었다. 딱히 끌리는 메뉴가 없기도 하고 <타이베이 메인 스테이션>의 테이크아웃 초밥집에서 초밥 먹을 생각에 밥 반 공기에 카레만 부어 먹었다. 일정은 망쳤지만 식사만은 마음에 들게 마무리하겠어.



이제는 익숙한 시먼딩의 골목. 이 사거리의 지리는 가지 않아도 머릿속에서 길이 훤하다.





타이베이 메인 스테이션에 도착하자마자 테이크아웃 초밥집으로 갔으나 애석하게도 문이 닫혀있었다. 내가 너무 빨리 온건가, 주말이라 그런 건가, 왜 그들은 부지런하지 못한 건가. 그러게 조금 더 여유롭게 나왔어야 한다니까. 영 시들한 여행의 끝에 힘이 빠졌다.  


그나마 우리가 탑승하자마자 칼 같이 출발하는 1819 국광 버스에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이런 타이밍은 좋네. (잃어버린 줄 알았던 버스 티켓을 어제 아침, 엄마가 여권 사이에서 발견했다.)



언제 어디서나 색이 화려한, 내가 좋아하는 대만의 모습.





엄마의 계획대로 출국 한참 전에 공항에 도착했다. 아주 여유롭게 출국 심사를 받았다. 모든 것을 느긋하게 했다. 심사도, 걷는 것도 모두. 출발 게이트에 앉아 쉬다 비행기가 한 시간이나 연착되었다는 걸 알았다. 티켓 발권할 때 조금 딜레이 된다 하여 알겠다 했는데 그 조금이 한 시간이었을 줄이야. 미리미리 알려줬으면 일정을 추가하진 못하더라도 호텔 침대 위에서 더 쉴 수 있었을 텐데. 그리고 초밥을 먹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충분히 일찍 온터라 출발하려면 두 시간이나 더 기다려야 했다. 커피와 샌드위치를 사 와 대충 끼니를 때웠는데도 시간이 남았다. 멍하니 앉아있다 비행기를 타고, 정신을 차려보니 집이었다.


이렇게 엄마와 나의 두 번째 여행이 끝났다. 마지막 날은 싫은 소리를 잔뜩 적어놓긴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내가 익숙한 곳을 엄마와 함께 거니는 것이 좋았다. 여행이 끝나고 TV를 보던 엄마가 나와 함께 갔던 곳이 나온다며 아는 체 말을 하는 모습이 좋았다. 처음 둘이 여행을 떠날 때만 해도 귀찮아하던 엄마가 아직 정해지지 않은 다음 여행지를 궁금해하고 또 설레어하는 모습이 좋았다. 그래서 여행에서 그 어떤 짜증 나는 일이 생겨도 결국엔 다 좋았다. 그냥 엄마와 함께여서 좋았다.


2017년 4월 16일

캐논 EOS 6D




여행일기 #두번째 대만 편 연재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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