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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현 Sep 16. 2019

안녕, 가오슝

#대만일기 6. 안녕 또 안녕


가오슝에서의 마지막 날. 오늘도 날씨가 좋다. 그리고 오늘도 여전히 형편없는 조식. 첫날에는 '그저 그랬다'에서 어느새 '형편없다'까지 전락하고 말았다. 같은 메뉴인데 날이 갈수록 더 먹을 게 없는 건 무슨 일인지? 나만 이런 건지? 오늘도 마감 시간 가까이에 내려갔더니 -그래 봤자 30분은 더 남겨둔 시간이다- 오믈렛조차 해주지 않는다. 야박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별수 없이 어제는 그토록 좋아했던, 사실은 맛없는 김치와 기본 쌀밥 그리고 구워져 있는 계란 프라이와 초생강으로 식사를 했다. 주스도 다 맛없어서 음료도 없이 그냥 물과 함께.


조식을 먹고 방으로 돌아와 다시 한번 짐을 쌌다. 여느 때보다 빵빵한 나의 캐리어. 한 손에는 사슴 인형이 담긴 커다란 종이백도 들었다. 빠진 게 없나 둘러본 후 체크아웃. 이번 여행의 호텔들은 모두 체크인이 아닌 체크아웃을 하며 숙박비를 결제했다. 가오슝 호텔은 P의 카드로 결제하기로 했는데 결제가 되지 않았다. 왜지! 뭐 그럼 내 카드로 하면 되지. 친절하게도 한화로 결제할지 아니면 대만달러로 결제할지 결정할 수도 있었다. P의 카드로는 달러와 대만달러 중 결제할 수 있었고. 카드마다 다르네? 아무튼 달러로 해야 이중 환전이 안될 텐데 고민 끝에 멍청하게 한화로 결제해버렸다. 어물쩡 거리다 손해 본 기분.


어쨌든 마지막 날 여행 시작!






나는 공원을 좋아하는데


프런트에 캐리어를 맡겨두고 길을 나섰다. 출국까지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 본격적으로 어딘가를 갈 수는 없어 미려도역에서 한 정거장 떨어져 있는 <중앙공원>에 가보기로 했다. 미리 찾아본 SNS 속 중앙공원은 끌리는 곳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여기 미려도역이 별 볼 일 있는 건 아니거든. 그리고 난 원래 공원을 좋아하기 때문에 실제로 가서 보면 내 마음에 쏙 들지도 몰랐다. 나무만 좀 많고 조성만 그럴듯하게 해 놓았다면. 난 공원이라 이름 지어진 곳에 관대한 편이다.



중앙공원은 개찰구로 나오는 순간부터 굉장했다. 대륙은 아니지만 대륙의 스케일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어지간한 건물 크기의 계단형 화단이 있고 그 화단에 정말 엄청 커다란 조화가 꽂혀 있었다. 조화라고 하기엔 미안하지. 조형물 수준이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화단 한가운데 공원으로 오르내리는 에스컬레이터가 있었다. 여기에 에스컬레이터 끝으로 드넓은 푸른 하늘까지. 여기까진 괜찮다.




괜찮은 건 거기까지. 중앙공원은 SNS에서 본 그대로 정말 별게 없었다. 내 예상보다 더 별게 없었다. 아무것도 없으리라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은연중에 조금의 기대는 했던 터라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방콕의 <룸피니 공원>은 나의 욕심인 거고 그래도 <짜뚜짝 공원> 정도는, 아니 적어도 오키나와의 이름 모를 공원 정도는 되지 않을까 했는데 그냥 풀밭이었다. 오키나와의 공원은 작더라도 분위기라도 있었는데 여긴 뭐.



사람들도 거의 없었다. 간간히 운동을 하거나 벤치에 앉아 쉬는 노인들을 보긴 했지만 딱 그 정도. 그래도 나름 규모가 있는 편이라 공원을 다 둘러보는데 더워서 혼났다. 조금 더 가면 뭐가 있을지도 몰라, 조금만 더 가면... 이란 마음으로 한 바퀴 돌아버렸다. 그런데도 아무것도 없네. 나는 원래 공원을 좋아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면 늘 여행했던 곳의 공원을 곱씹어보곤 했는데 중앙공원은 좋은 기억으로 떠올릴 일은 없을 듯.





근처 카페에서 조금 이른 점심 식사를 하기로 했다. 지금 점심을 먹고 호텔로 돌아가서 조금 미적거리다 공항에 가면 딱 맞을 것 같다. 공원 안 도서관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찾아본 카페 중 인테리어가 마음에 드는 한 곳을 골랐다. 공원의 끝에서 3-5분 정도만 걸어가면 된다고 나오는 걸 보니 위치도 좋고.



우리가 고른 카페는 <COFFEE WAKE UP>. 카페는 사진으로 본 것보다 훨씬 더 넓고 쾌적했다. 다만 내부 분위기와 다르게 마치 시장통처럼 시끌벅적했지만 나쁘지 않다. 브런치 메뉴도 다양하고 커피 외에 스무디도 있어 비교적 선택지가 넓어 좋았다. 내가 선택한 건 크랜베리 스무디와 마그마 치즈 샌드위치 세트. 샌드위치 이름 한번 어마어마하다.



그리고 꽤 오랜 기다림 끝에 받은 샌드위치 실물은 더 어마어마했다. 손바닥보다 큰 빵 두쪽과 그 사이에 낀 두꺼운 고기 패티 두 장. 무려 고기 패티가 두 장이다, 두 장. 여기에 치즈와 계란을 듬뿍 올려 구웠다. 이 사이에 피자 소스도 뿌려져 있어 맛도 좋았다. 곁들여진 요거트와 샐러드도 맛있었다. 다만 혼자 먹기엔 너무 부담스러운 양. 둘이 나눠 먹어도 충분할 정도로 모든 듬뿍이었는데 이 모든 게 한화로 6,000원도 안된다. 인심도 좋아.





호텔로 돌아와 헤아려보니 공동경비가 꽤 남았다. 그래서 공항까지 MRT가 아닌 택시를 타고 가기로 했다. 거리는 그리 멀지 않지만 멈춰있는 택시란 그리고 여행지의 택시란 바가지가 미덕인지라 300NTD 정도 나올 거라 예상했는데 딱 300NTD였다. 이쯤 되면 여행지의 택시 마스터라 불러다오.

호텔 앞에 택시가 줄지어 있어 우리가 잡아 타려고 했는데 벨보이가 택시 탈거냐 묻더니 본인이 잡아주었다. 호텔 정문 앞에 서서 "딱! 딱!" 박수를 두 번 치니 택시가 스르르 우리 앞으로 온다. 벨보이가 목적지까지 대신 말해주니 좋네.


공항의 한 건물. 타일의 색이 참 고왔다.


공항에 도착해 발권을 하고 출국 심사까지 다 받았음에도 출발하려면 두 시간이나 더 남았다. 면세점이나 둘러봐야지 했건만 면세점이 작아도 너무 작다. 제주공항보다 작은 것 같아. 그래도 짤 털이는 해야 하므로 부지런히 둘러보아 디올에서 립을 하나 샀다. 이렇게 이번 여행에서도 내게 립이 하나 생겼다. (나는 항상 면세점에서 립을 사며 짤 털이를 한다. 그래서 여행의 끝에는 사진, 추억과 함께 늘 립이 남는다.)





해가 떠있을 때 비행을 하면 구름의 모양이 잘 보여서 좋다. 시간만 잘 맞으면 이렇게 해지는 모습도 보고. 이렇게 비행기에서 하늘을 보아야 비로소 여행이 끝났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



한국에 도착하니 어둑한 하늘이 나를 반기네. 내가 다시 갈까 모르겠지만, 안녕, 가오슝.


2019년 5월 14일

캐논 EOS 6D




여행일기 #대만 가오슝 편 연재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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