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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햄통 Jan 13. 2023

노트테이킹은 기억의 보조수단

…이라고 하지 말아주실래여 현기증 나니까여…

’노트테이킹은 기억의 보조수단이다‘ 라는 말은 태초에 누가 했을까. 통대에 들어가면 정말 많이 듣는 말이고, 뇌리에 박혀서 잊혀지지 않는 게 그만큼 인상적인 말이기 때문.


(#노트테이킹 : 화자의 발화 내용을 문자나 기호 등을 이용해서 기록하는 행위)


전설에 따르면 누구는 모기향 같은 원을 그리며 테이킹을 한다는 둥, 누구는 거의 적지 않는다는둥, 누구는 대체 어떻게 테이킹하는지 모르겠지만 빠짐없이 통역한다는 둥… 여러가지 ‘카더라’가 나도는 가운데 우리는 대체 어떻게 테이킹을 해야 통역을 잘할까를 궁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나의 생명줄과도 같은 이 테이킹이, 그 와중에 ‘기억의 보조수단’이라니. 그 말이 인상적인 이유는, 아무리 열심히 적어도 만족스러운 통역이 나오는 경우는 별로 없더라 이거다. 잠깐, 그럼 나의 기억을 탓해야 하나, 테이킹도 못하는데 ‘메모리’도 못하면 어쩌라는 거지…등등등


현장에서 좀 굴러보니, 내 경험에 미루어보았을 때, 개인적인 소견이지만, 테이킹이 기억의 보조수단이란 말은 맞고도 틀리다.


예문을 보자.


“미중 패권 경쟁 시대를 맞아 국가 안보의 개념이 전환 되고 있다. 기존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전통적인 ‘군사 안보’에서 무역과 기술 공급망 확보라는 경제 영역을 포괄하는 ‘공급망 안보’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 정도면 기호를 좀 써서 핵심어 위주로 테이킹, 어느 정도는 메모리에 의존할 수 있겠다.


“금융위원회는 오늘 30일 부터 ‘특례보금자리론’을 1년간 한시 운영 한다고 밝혔다. 기존 안심전환대출, 보금자리론, 적격대출 등으로 복잡하게 나뉘었던 정책 모기지에 장점을 통합했고, 일 년간 총 39조 6천억 원을 공급한다.”


이 경우에는 고유명사도 적고 머릿속으로 고유명사를 뭐라고 할지도 생각해야 해서 하느라 바쁘다. 어떤 고유명사는 딴생각하며 일단 받아적는다. 숫자도 안 틀리게 잘 받아적어야 한다. 고유명사는 보통 (이미 만들어놓은) 기호가 없기 때문에 빠짐없이 적어야 하고, 처음 듣는 용어라면 한두 글자를 틀릴 수도 있다. (적격대출? 전격대출?)


따라서 이해에는 배경지식이 필수다.


“국방부는 이날 업무 보고에서 북한 핵 미사일 위협에 대한 압도적인 대응을 강조했다. 이와 관련, 3축체계 즉, 킬체인,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 대량응징보복 중 킬체인의 하나인 ‘발사의 왼편’ 개념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서 만약 ‘3축체계’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면, 3축체계를 설명할 때 ‘킬~ /  한~ / 대~’ 정도로만 표기하면 시간도 벌고 에너지도 아끼고 손목도 한템포 쉬어간다.


‘3축체계’의 개념이나 대응하는 외국어를 알고 있을 가능성은 두 경우다. 1. 미리 공부를 해 간 경우 2. 예전에 접한 적이 있는 단어 3. 매번 통역하는 내용. 1번인 경우 앗싸고 2번인 경우 앗, 다행이다, 3번은 희열이다(나밖에 모르겠지롱)


매번 주제가 바뀌면 공부할 내용(1.사전 공부)이 항상 새로우니 힘들지만, 활발한 통역사라면 1번 경험들이 축적됨과 동시에 2번 단어(2.재등장 단어)의 양이 많아질 것이다. 3번(3.익숙한 단어)은 인하우스로 일하거나 단골 분야/고객일 때.


3번일 때, 최소한 2번일 때 테이킹은 기억의 보조수단이 될 수 있다. 한 회사나 분야에서 오래 일하면 점점 테이킹이 귀찮아지고 테이킹 양이 줄어드는 게 그 이유다. 이쯤되면 ‘내가 노련한가’ 하는 착각인지 진실인지 알 수 없는 그 경계 어딘가에서 나를 칭찬할지 채찍질할지 고민하게 된다.


새로운 상황에서 새로운 정보와 전문 용어가 만발할 때는 테이킹이고 메모리고 보조수단이고 주요수단이고 아무 것도 없다. 그냥 나도 같이 어떤 형태로든 폭발임ㅋㅋㅋㅋ 이런 상황을 최소화하기 위헤 최대한 평소에 준비되어 있어야 하고, 의뢰측이 최대한 자료를 제공해야 한다는 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듯 하다.


결국 테이킹이 기억의 보조수단이란 말은, 통할 때가 있고 아닐 때가 있다.


그러니 나를 포함한 동지 동포 여러분들이여.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말자. 통번역에 어디 예측가능성이라는 것이 있더냐(물론 예측능력도 중요한 스킬이고 하다보면 이것도 는다) 가끔 똥같은 말을 할 때도 있고 가끔 이 어려운 것들을 해내는 내가 자랑스러울 때도 있겠지.


언제 인간이 세상이 완벽한 적 있더냐. 그러니 쫄지 말고, 환경의 변화에도 나의 변화에도 두려워 말고, 일희일비 말고, 즐겁게 나아가자!!! 전진!!!


나 오늘 왜 60세 장군 컨셉??? #햄통 #햄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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