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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화초 Aug 31. 2020

의외로 모르는 어른들이 레고를 사야하는 이유

 코로나 19로 라이프 스타일이 점차 바뀌고 있다.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 보며 함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임을 이제야 깨달았다. 회사도 재택근무 기간이 길어지며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예전보다 훨씬 많아졌다. 이제는 좋든 싫든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에 익숙해져야만 했다. 처음에는 시간이 없어서 볼 수 없었던 드라마, 영화, 유튜브도 실컷 보면서 행복을 만끽했다. 그러나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평소 나는 집에 하루 이상 머물면 찾아오는 두통 때문에 일을 만들어서라도 무조건 외출을 했다. 그러나 코로나 19로 인해 강제로 집에 머물다 보니 또 달갑지 않은 두통이라는 손님이 찾아왔다. 스마트폰을 보고 있으면 두통이 더 심해지는 것 같아 집에서 할 수 있는 집중할 새로운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레고를 샀다. 뜬금없이 레고를 산 이유는 다름 아닌 선풍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무언가를 찾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발견한 것은 선풍기였다. 유독 올해는 무더운 여름이 아닌 습한 여름에 가까워 더욱이 집에만 들어오면 선풍기와 나는 하나가 되었다. 늘 내 발 반경 30cm 밖을 벗어나지 않았다. 선풍기 날개에는 그동안 쉬지 않고 일해온 흔적들이 까맣게 묻어 있었다. 이 먼지를 씻어내기 위해 드라이버로 나사를 풀며 분해했다. 다이소에서 싸게 산 드라이버임에도 불구하고 앞부분에 자석이 달려있어 나사에 착하고 달라붙었다. 생각보다 나사가 쉽게 빠졌고 분해도 굉장히 쉬웠다. 그때부터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분해한 부품들을 전부 깨끗하게 씻고 다시 조립을 해서 선풍기를 새 것처럼 만들었다..

 그러나 선풍기 청소만으로는 오랜만에 몰입의 즐거움에 한층 심취한 나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그때 떠오른 것이 레고였다. 초등학생 때 갖고 논 후 한 번도 사 본 적 없는 레고가 갑자기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레고를 조립하며 잠시나마 스마트폰과 멀리하고 오롯이 무언가에 집중해보고 싶었다. 다시 침대에 누워 근처 레고 스토어가 어디 있는지 검색했다. 다행히 집 근처 걸어갈 만한 거리에 레고 스토어가 있었다. 당장 옷을 갈아입고 모자를 눌러쓴 후 신발을 신고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에서 1층을 누른 후 거울을 보며 무언가 찜찜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제야 마스크를 안 갖고 내려온 것을 깨닫고 다시 후다닥 올라가 마스크를 챙겼다. 코로나 19가 발생한 지 거의 1년이 다되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마스크를 챙기는 것을 깜빡한다.


 한적한 거리를 걸어 레고 스토어에 도착했다. 내부에도 역시나 사람이 없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물건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비싸다'였다. 이상하게 내가 고르는 것마다 가격이 상당했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고서라도 레고 가격은 어릴 때 순수하게 갖고 놀던 가격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물론 레고가 기존 어린이 타겟 뿐만 아니라 어른을 위한 레고 시리즈를 개발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얘기는 들었고 나도 보는 눈이 높아지다 보니 비싼 모델을 찾을 것이라는 예상은 짐작했으나 이렇게 비쌀 줄을 몰랐다. 이젠 만약 내가 결혼을 해서 자식이 레고를 사달라고 하면 심사숙고하여 사줘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0이 하나 더 붙여진 가격표를 보며 역시 레고가 바보는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들의 주머니를 열게 하려면 이 정도의 디테일과 살 떨리는 가격 정돈 있어야지' 라며 속으로 생각했다. 레고 박스 왼쪽 하단에는 이를 조립하기 위한 적정 연령대가 쓰여있었다. 나에겐 적정 연령대가 아무 쓸모가 없었다. 내 주머니 형편에 맞춰 레고를 사야 했기 때문이다. 사실은 레고 스토어를 처음 온 것이 아니었다. 길을 걷다 레고 스토어가 보이면 한 번씩 들어가 보곤 했다. 어렸을 때의 추억을 회상하며 어떤 물건이 있는지 눈으로 구경은 수도 없이 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살 생각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가격은 제대로 보지도 않았다.


 오늘은 본격적으로 사겠다는 마음을 먹고 온 거라 하나하나 구성품과 가격을 비교했다. 내 돈으로 사는 첫 레고라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 입문 단계인 만큼 가격이 너무 부담되지도 않으면서 조립도 난이도 있는 선에서 구매했다.

 각박한 사회생활 속에서 창의력이 없어진 탓인지 무조건 설명서대로만 조립을 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어릴 때는 레고를 사면 설명서는 저 멀리 던져두고 아예 새로운 것들을 창조해냈다. 이제는 그런 것들이 머릿속에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설명서가 시키는 대로 조립을 했다. 레고 블록 하나하나가 조립해야 할 위치에 딱 맞을 때 나도 모르게 안도감이 들었다. 모든 게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 이렇게나마 안도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블록들을 조립하며 레고 박스에 나와있는 완성품의 형태가 점차 완성되어 간다. 모든 걸 완성하고 나서 스마트폰 카메라를 켜서 사진을 마구마구 찍는다. 이런 것은 또 인스타그램에 새로운 취미라면서 올려줘야 하니 구도를 잡아가며 열심히 찍는다.

 가벼운 주머니 탓에 30분 정도면 조립할 수 있었던 레고였지만 레고를 조립하는 그 과정에서 얻은 평온함은 그 돈을 지불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결과물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계속 보다 보면 질리기 마련이고 어딘가 한 구석에 처박혀 있을 것이다. 요즘은 레고와 재테크를 합쳐 <레테크>라고 레고 한정판을 사서 단종 후에 판매하여 수익을 내는 재테크도 있다고 한다. 재테크의 한 방식으로 어른들이 레고를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 직접 레고를 만들면서 결과물만큼 과정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 무언가에 집중하여 잠시나마 평온함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에게 레고 조립을 꼭 추천하고 싶다. 아직도 블록에 블록을 끼우는 손맛이 잊히지지 않는다. 다음번엔 어떤 레고를 조립할까 또 검색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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