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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의 감촉 Sep 18. 2023

지팡이 아이스크림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찰칵 찍어본다.

봄날의 밤입니다. 품으로 파고드는 두 남매와 잠들기 전 나누는 이런저런 이야기. “너희들, 슬로리스 아니?” 세상에서 가장 천천히 움직이는 동물, 안경 눈을 한 귀여운 외모의 조그만 동물을 서울대공원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동물원에 가고 싶다고 엄마에게 채근합니다. 주말 오후가 됐습니다.

“우리 뭐 할까?”

나의 한마디에 두 아이 모두 외칩니다.

“서울대공원”

나도 신나게 답합니다.

“그러자!”

그렇게, 슬로리스를 보러 달려간 우리. 동물원의 사정상 슬로리스를 보지 못했습니다. 대신 꼭꼭 숨은, 그래서 한참을 찾았던 표범. 한 폭의 동양화, 그 자체였던 호랑이와 선명한 반달 모양을 보이며 늠름하게 선 반달곰. 여러 마리가 휘돌아 흐르는 물 위를 유영하는 흑고니. 이 눈앞에서 목을 뻗어 물고기를 꿀꺽 삼키는 펠리컨과 두루미 같은 대형 조류들. 관람을 위한 동물원이 아니라 동물들을 위한 동물원에 안심했습니다. 슬로리스는 이젠 생각도 안 나는지, 조막손을 잡고 셋이 긴 거리를 걷고 또 걸어도 불평 한 번 없습니다. ‘이렇게 잘 커줘서 고마워.’ 한 번씩 앞서가는 아들의 뒷모습이 풋잠 속 환상처럼 어릿어릿 멋집니다.

스카이 리프트도 탑니다. 리프트가 오르고 내릴 때마다 우리의 웃음은 까르르 부서졌고,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함조차 셋은 간질이듯 즐겁습니다. 눈에 다 담지 못할 만큼 넓고, 시리도록 파란 호수 위를 나는 여섯 개의 발. 언젠가 딸이 유치원에서 손수건에 들여왔던 고운 치자 빛의 햇살을 받습니다.

리프트에서 내리자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아쉬움과 피곤함이 우리 사이에 끼어듭니다. 그 순간 아이들의 눈에 띈 건 지팡이 모양 과자 속에 넣어주는 아이스크림. 어렸을 적 노점 트럭에서 보던 과자였는데, 거기에 아이스크림을 넣어준다는 것이 저는 재밌고, 아이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흐뭇하게 하나씩 손에 쥐어 줍니다.

주차장까지 가는 길에는 해 질 녘 외로움 섞인 바람과 꼬치, 옥수수, 치킨 등 온갖 주전부리의 향이 섞인 공기가 출렁이고 있습니다. 까만 머리카락과 그 못잖은 까만 눈동자를 지닌 여덟 살 나의 딸. 머리카락을 휘날릴 때마다 늦은 오후 볕이 부서집니다. 송곳니가 보이도록 활짝 지은 미소 틈으로, 신난 약속. “아빠랑 와서 또 먹을래. 그때도 또 사줘.”

돌아가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 아이들을 재촉하는 어른들의 목소리, 수많은 차가 이제 집으로 떠나려는 시동 소리. 모두 이 순간을 위한 배경음악입니다. 아이스크림을 손에 쥐고 반달눈을 한, 두 아이의 모습이 제 동공 속, 제 가슴속, 소복이 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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