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ckyinBath Sep 18. 2017

been awhile

떠남과 돌아옴의 삶

센느강의 오후

정신을 차려보니 오늘은 2017년 9월 18일. 어느새 가을이 내 발끝으로 성큼 와있다. 따뜻한 차를 끓여두고 냉동실에 얼려둔 아이스큐브 트래이들을 꺼내 얼음들은 싱크대에 쏟아 버리고 깨끗하게 씻어 엎어두었다. 흐르는 물을 잠그고 눈을 들어 뒷마당을 보니 연초록 잎들로 싱그러웠던 에이스 나무들이 이미 깊은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다. 올 한 해도 이렇게 지나가는구나. 


올해는 유독 집을 떠나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았고, 아직 그 여정이 끝나지 않았다. 

1월 남편과 2주 간의 케리비안 크루즈 여행

2월 친구 2명과 2주 간의 베를린 & 런던 여행

5월 남편과 2주 간의 유럽 자동차 여행

6월 남편 출장으로 3주 간의 한국 방문

9월 친정식구들과 2주 간의 파리 & 런던 여행

...... 을 했고, 11월 남편 출장으로 3주 간의 한국 방문이 예정되어 있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어른들의 말도 일리가 있지만,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올 한 해가 꿈만 같다. 목적지를 정하고 교통편들과 숙소를 예약하고 구글 지도에 가고 싶었던 장소들을 저장하고 있으면, 세상의 존재하는 모든 설렘들로 내 몸 세포 하나하나가 차오르는 것 같은 황홀경을 경험한다. 


물론 집을 자주 떠나 있었던 올 한 해가 설렘만으로 채워진 건 아니다. 떠날 때는 늘 좋지만, 여행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그동안 끊어졌던 일상의 연속성을 잇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예정되어 있는 여행들 때문에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할 수도 없고 배울 수도 없다. 몇 없는 친구들이지만 집을 떠나 있는 동안 그들과의 끈을 놓치지 않기 위해 신경을 써야 한다. 돌아갈 곳이 있기 때문에 떠나 있는 동안에도 돌아갈 것을 걱정하는 것이다. 바보같이 들리겠지만, 현실이다. 


여행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나의 삶은, 몇 주동안이나 문을 꽁꽁 닫아두었던 집안은 여기저기에서 쾌쾌한 냄새가 나고 집을 떠나기 전에 비워둔 냉장고 안에는 차 한잔 만들 신선한 우유가 없다. 여행가방 안에서 쏟아져 나오는 빨랫감들은 계절에 관계없이 늘 축축한 영국의 날씨를 미워하게 만들고 어쩌다 해가 쨍한 날에는 어쩔 수 없이 세탁기 앞 붙박이가 되어 밀린 빨래를 하며 몇 주를 보낸다.


집에 돌아와 좋다.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할 수는 없는 한 해였지만, 사랑하는 사람들과 익사이팅한 어드벤처들을 해낸 내가 자랑스럽고 우리의 시간들이 값지다. 아직 끝나지 않은 나의 2017년. 행복했던 그동안의 시간들을 잊지 않기 위해 조금씩 나의 2017년을 기록해야 한다. 


떠남과 돌아옴의 balance 


작가의 이전글 Grand Tour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