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만 영국이 아니다.
며칠 전, 한국에 있을 때 잠깐 같이 일을 했던 동료에게 갑작스러운 연락이 왔다. 동생과 함께 영국에 온다며 시간이 되면 얼굴이나 보자는 요지였다. 반가운 마음에 영국에는 언제 도착하는지, 얼마나 머무는지, 무엇을 할 건인지 등등 끊임없는 질문을 해댔다. 대화의 끝에 시간을 비워둘 테니, 언제 바스(Bath)에 오는지를 물었다. 그녀는 '영국은 런던만 보면 되는 게 아니겠냐'며 '네가 사는 작은 도시인 바스에는 갈 계획이 없으니 네가 런던으로 오는 게 좋겠다'라며 순식간에 날 우스운 질문을 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정말 그런 걸까?
그녀와의 대화를 끝내고 한참을 책상 앞에 앉아 혼자 생각을 이어갔다. 정말 런던만 보면 영국 여행은 끝이고 영국을 다 봤다 말할 수 있는 걸까.
잉글랜드(England)의 수도인 런던이 전 세계적으로 중요한 정치, 경제 그리고 문화의 중심지 중에 하나임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런던은 대영제국의 수도로서 오랜 시간 동안 전 세계 역사의 중심지였고, 그로 인해 만들어진 수많은 랜드마크들이 여행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아직도 왕실이 존재하고, 도시 한복판에 여왕이 살고 있고 있는 궁전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런던은 충분히 매력적인 곳이다. 큰 시계탑이 솟아있는 국회의사당과 버킹엄 궁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는 내셔널 갤러리, 세계 각국에서 가져온 유물들이 빼곡하게 전시되어 있는 대영박물관 등등. 런던의 랜드마크들을 다 둘러보려면 일주일도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이렇게 볼 것과 가볼 곳이 많이 런던을 두고 이 작은 도시 바스에 오라고 했으니 어쩌면 그녀가 나에게 보인 반응이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그녀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영국은 분명히 런던만은 아니다.
나에게 진정한 영국은 푸른 잔디가 동서남북 사방으로 펼쳐지고, 기찻길 옆으로 옹기종기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있는 테라스 하우스(terrace house)들이 있고, 귀여운 롤링 힐(rolling hill)들이 동화 속에 나올만한 뭉게구름 가득한 파스텔색 푸른 하늘로 끝없이 이어지는 곳이다.
쌩쌩 달리는 자동차들 옆으로 유유히 풀을 뜯는 양 떼들이 있고, 사람 키보다 높은 헤지(hedge)들이 로마시대 닦여진 오래되고 좁은 1차선 도로 양옆으로 솟아 마치 자동차 경주를 하는 듯한 스릴감을 주고,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몇 백 년 전에 만들어진 다리 앞에서는 맞은편 운전자와 서로 양보하느라 어색한 몇 분을 보내야 하는 곳이다.
날씨와 상관없이 아침저녁으로 동네 사람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비슷한 시간에 자신들의 애완견을 앞세워 필드(field)에 나와 풀밭 한가운데에 서서 반상회를 하듯이 짝을 바꿔가며 족히 30분씩은 담소를 나누고, 주말이 되면 너 나할 것 없이 동네 사람들 대부분이 로컬 펍(local pub)에 모여 이런저런 소식을 전하고, 가족끼리 친구끼리 지도를 챙겨 조금 긴 산책(walk)을 하며 계절에 따라 변하는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경험하고 만끽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이런 아름다움이 존재하는 곳이 바로 잉글리시 컨드리사이드(English countryside)이고, 내가 그녀에게 보여주고 싶어 했던 영국의 모습이다. 진정한 영국 여행은 웅장하고 위엄 있는 건물들로 둘러싸여 여행객들에겐 곁을 내어주지 않고, 손이 닿지 않는 거리에 멀리 떨어져 앉아 고고함만을 뽐내고 있는 거대 도시 하나의 방문으로 끝이 날 게 아니라, 보통의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하루하루가 쌓여 만들어지는 영국 소도시들의 아기자기한 역사 속으로도 들어가 보는 노력이 필요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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