펍(pub)에서 즐기는 영국의 대표적인 식사
영국에는 이런 농담이 있다.
It is so difficult not to eat well in France, it is more difficult to eat well in Britain.
영국에서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은 프랑스에서는 좋은 음식을 먹는 못하는 것보다 더 힘들다.
영국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슬프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사실 영국 음식은 맛이 없기로 세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럽다. 영국인들 조차도 가장 맛있는 영국 음식으로 커리(curry)를 꼽을 정도이니 말 다했다.
여행을 하면서 그 나라만의 독특한 전통음식을 맛보고 우리와는 다른 그들만의 식문화를 접해보는 것은 큰 기쁨이다. 요즘 한국의 젊은이들은 해외여행을 하는 동안에도 굳이 한국음식점을 찾아다니기보다는 현지의 음식들을 최대한 많이 접하고 즐기려고 노력하는 모습이다. 현지의 맛집을 구글맵에 찍어 해외에 있는 동안 아예 식도락 여행을 하는 친구들도 몇몇 보았다.
이런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국의 전통음식이 하나 있다. 굳이 하나만 꼽자면 모든 이들이 알고 있는 피시 앤 칩스(fish and chips)가 영국의 가장 유명한 음식이겠지만, 나에게는 선데이 로스트(sunday roast)가 영국 전통 식문화까지 보여주는 제대로 된 트래디셔널 브리티쉬 푸드(traditional british food)이다.
이름만 보아도 언제, 무엇을 먹는 식사인지 감이 온다. '일요일에 오븐에 구운 무엇인가를 먹는 것이구나.'하는 추측은 누구나 할 것이다. 그런데 왜 이것이 영국의 전통 식문화를 보여주는 식사인지는 모르는 이들도 많을 테다.
처음 영국에 왔을 때 나는 선데이 로스트가 무엇인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1%의 지식도 갖고 있지 않았다. 시부모님 댁에 처음으로 식사 초대를 받아 가게 된 날, 남편이 나에게 타이트한 하의는 피하라고 귀띔을 해줘 막연하게 '어머님이 굉장히 많은 음식을 하시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토요일 밤에 시댁에 도착해 하룻밤을 자고 다음 날 아침 다 같이 모여 아침식사를 했다. 오븐에 따뜻하게 데운 크루아상에 다양한 잼과 마멀레이드가 곁들여져 나오는 보통 영국 가정의 주말 아침식사였다. '한국 같았으면 사위와 함께하는 첫 식사에 닭백숙이며 온갖 진수성찬으로 상다리가 휘어졌을 텐데...'라고 생각하며 혼자 피식 웃었다.
워낙 빵을 좋아하지 않는 터라 과일 몇 조각으로 아침을 가볍게 먹고 시댁 식구들과 담소를 나누며 한참을 보냈다. 12시가 넘고 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인데도 아무도 점심을 먹자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한 나는 얼마나 배가 고픈지, 오후 2시쯤이 되니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천둥 치는 소리보다도 크게 나기 시작했다. 배고픈 며느리가 불쌍했는지 어머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저녁(sunday dinner)을 준비하신다며 부엌으로 나가셨고, 점심도 먹지 않았는데 저녁이 웬 말이냐며 남편에게 달려가 당장 점심을 내놓지 않으면 배고픔에 잔디라도 뜯어 전을 붙여 먹고야 말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제야 남편은 내 멘붕의 이유를 알게 되었고, 나는 어머님과 남편으로부터 선데이 로스트에 대해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선데이 로스트(sunday roast)는 선데이 디너(sunday dinner)라고도 불리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저녁식사의 의미가 아니다. 보통 온 가족이 큰 식탁에 함께 둘러앉아 오후 2시에서 4시 사이에 먹는 푸짐한 만찬을 말한다. 요즘엔 집에서 직접 요리하기보다는 가족끼리 또는 친구들과 함께 로컬 폅(local pub)에서 선데이 로스트를 즐기는 것이 더 일반적이다. 전통적으로 얇게 썬 분홍빛 로스티드 비프(roasted beef)에 홈메이드 요크셔푸딩(yorkshire pudding)과 다양한 스팀드 베져터블(steamed vegertable)을 곁들여 먹는다. 고기를 익힐 때 나온 육즙에 밀가루를 풀어 만든 소스인 그레이비(gravy)를 고기와 요크셔푸딩 위에 뿌리는데, 이 소스의 맛이 굉장히 중요하다. 요즘엔 돼지고기(roasted pork)나 닭고기(roasted chicken)를 소고기(roasted beef) 대신 선택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날씨가 좋으면 좋은 대로 동네 펍(pub)의 비어가든(beer garden)에 앉아 접시 가득 담긴 음식들을 먹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담소를 나누고, 비가 오는 추운 겨울에는 실내로 들어가 파이어(fire) 앞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레드와인을 곁들여 몇 시간이고 즐기는, 일요일의 피스트(feast)가 바로 영국의 전통음식 선데이 로스트(sunday roast)이다. 이것은 단순한 한 끼의 식사가 아니라, 가족과 함께 또는 친구들과 함께 맛있는 음식으로 일주일 동안 열심히 살아온 서로를 다독이고 상을 주는 잔치 밥이다.
만약 영국에서 누군가에게 선데이 디너(sunday dinner)에 초대받는다면, 초대한 이가 당신에게 친구를 넘어서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가 되자고 손을 내민 것으로 생각해도 무방하다. 그만큼 의미가 큰 식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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