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맞는 세 번째 봄
봄이다.
영국에 와서 가끔 듣게 되는 질문 중에 하나는, '한국은 지금 무슨 계절이니?'이다. 그러면 난, 한국도 이곳과 같이 사계절이 있고 영국과 비슷한 위도의 북반구에 위치해 있으니, 이곳의 계절이 그곳의 계절이 된다고 대답한다. 그래서 난 사계절, 늘 한국이 그립다고......
오늘 오전에 며칠 전 집을 비운 사이에 도착한, 내 서명이 필요한 우편물을 찾으러 동네 우체국을 다녀왔다. 우체국은 우리 집에서는 걸어서 40분 정도가 걸리는 거리에 있어, 집을 나서기 전에 버스를 탈까 걸어갈까 잠깐 고민을 했다. 정원에 빨래를 널 만큼 햇볕이 좋았기에 느긋하게 봄볕을 즐기며 걷기로 하고 편한 슬리퍼를 신고 길을 나섰다.
아직도 바람이 차가웠다. 봄볕에 속아 외투도 걸치지 않고 나왔는데, 순간 괘씸한 마음이 들었다. 그것도 잠시, 눈 앞에 펼쳐지는 봄의 향연에 마음을 빼앗겼고 이른 봄바람의 쌀쌀함은 오히려 개운하게 내 정신을 씻어내고 있었다.
이 동네에 산 지도 이제 3년. 봄이 되면 어느 집에 목련이 피고 어느 집엔 겹벚꽃이 피는지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가까운 길을 두고 멀리 돌아간다. 봄꽃들을 눈에 담고 마음에 담아 올 한 해 살아가는 힘으로 쓰려고 바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얼마 전, 중고물품을 파는 옥션 사이트에서 싸게 구입한 작은 디지털카메라를 손에 쥐고 걸었다. 다시 오지 않을 2017년의 봄을 기록하느라, 우체국까지 걷는 일이 수고가 아니라 기쁨이 되었다. 남의 집 담장을 흘끗거리며 봄꽃이 보이면 카메라를 연신 들이대는 작은 동양 여자가 이곳 사람들 눈에는 얼마나 이상하게 보였을까. 옆을 지나가는 차들도 내가 뭘 하는지 궁금했는지 내 옆에서는 속도를 줄이곤 했으니, 말 다했다.
봄은 세상 어디에서나 아름답다. 수선화와 개나리의 쨍한 노란빛과 매화꽃과 벚꽃의 섬세한 분홍빛은, 한국에서도 이곳에서도 변함없이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기쁨과 생동감으로 가득 채운다. 이곳엔 없고 한국에만 있어, 고향을 더 그립게 만드는 것들도 있다. 하지만 봄은 아니다. 봄은 내가 나고 자란 내 고향 한국에도 이런 모습으로 존재하고, 나의 제2의 고향이 영국에서도 똑같은 가벼움으로 설렘으로 고양이 코털 같은 간지러움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난 봄을 사랑하고, 그래도 한국의 봄을 그리워하고, 다행히도 이곳의 봄으로 위로받으며, 행복하다.
#life_in_england #micky_ordinary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