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는 차 마시며 쉬는 거 아니였냐고요
서울 식물원에서 일하는 정원사 한 분을 알게 되면서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정원사 K는 현재 서울 식물원 호수원 현장에서 일한다. 식물원은 온실, 주제 정원, 호수원 구역으로 나눠져 있다. 온실과 주제 정원은 유료 관람이고 매표소 바깥에 호수원이 있는데 이곳은 무료로 이용이 가능하다. 인터뷰를 할 당시 서울 식물원은 가을 끝자락에 닿아서 사초들이 갈색 옷을 입은 겨울 정원이 되어 가고 있었다.
J(Jungla) : 서울 식물원이 제법 크던데 정원사님은 어느 곳에 소속되어 계신가요?
K : 서울식물원 식물연구과 소속으로 호수원 담당이고 현장 일을 맡고 있어요. 호수원에 속한 녹지대와 호수 안에 있는 식물들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호수원은 공원의 성격을 띄고 있어요. 식물의 디테일을 살리는
것보다는 관람객이 편하게 관람할 수 있는 업무를 우선으로 둬요. 관람객 동선에 따라서 집중 관리하는 구
역이 있어서 위험 수목을 제거하는 업무가 중요하거든요.
J : 호수원은 서울 식물원에서도 가장 넓은 곳이잖아요. 그러면 같이 일하시는 팀원은 몇 명이 되나요?
K: 저희 팀원은 평균 12명 정도이고요, 3팀으로 나눠 일하고 있습니다.
J: 생각보다 적은 인원이네요. 하루 일과가 빈틈이 없겠어요.
K: 좀 빠듯하다는 생각이 자주 들기도 해요.
J: 최근에 식물원에 들러보니까 갈색 정원이 되었던데 요즘 어떤 작업을 하고 계신가요?
K: 제일 큰 작업은 구근 식재죠. 요즘 구근을 심고 있어요. 약 10만 개 정도 식재 예정이고 튤립을 많이 심고,
수선화, 알리움, 히아신스도 식재했습니다.
J: 10만 개요? 팀원 12명이 다 하시나요?
K: 네. 그래서 드릴 공구로 땅을 살짝 파 가면서 분업으로 식재해요. 손으로 일일이 작업하면 다 못해요. 그리고 수목 월동 준비도 좀 해요. 배롱나무 같은 경우는 남부 수종이기 때문에 이제 수피를 보호해 주려고 녹화마대로 감싸는 작업을 하죠. 그리고 저희 호수원은 물을 항상 많이 쓰는데 동파 예방 차원에서 바닥에 있는 물을 미리 다 빼는 작업도 해요. 배관이 얼면 터져버리니까 물을 다 빼고 잠급니다. 겨울에 꼭 해야 하는 필수 작업이죠.
J: 그러고 보니까 호수에 직접 들어가시던데 이렇게 추울 때는 안 들어가죠?
K: 며칠 전까지 들어갔는데 이제 거의 안 들어갈 거예요.
J: 일의 강도가 정말 세네요. 정원사는 우아한 일만 하는 게 아니네요.
K: 그렇죠. 사진 하나 보여드릴게요. 이거 인스타에 올리려다가 안 올렸거든요. 11월 말인데 이때 너무 재밌
어서 사진을 찍어뒀어요.
(사진에서 K는 잠수복 같은 옷을 입고 허벅지 높이 정도의 호수에 들어가 있다. 물 표면이 얼어버려서 얼음을 깨며 들어가는 중이다.)
K: 빅토리아 수련잎이 지저분해져서 정리하려고 들어갔어요. 이런 것도 현장이고 제 일이라 생각해요. 전 재밌는 작업이라 느껴요. 겨울에는 거의 안 들어가긴 해요. 너무 춥거든요.
J: 진짜 체력 관리 잘하셔야겠어요.
K: 네, 그래서 일과 후에는 클라이밍을 다니고 있어요. 암벽 등반에 대한 로망도 있어서 시작하게 됐어요.
J: 요즘 날이 추워서 노동 강도가 더 셀 것 같아요. 제가 최근에 갔을 때 그날 최저가 영하 10도였는데 그런 날
도 외부 작업을 하세요?
K: 네, 합니다. 여름에는 너무 더우면 실내 휴게실에 들어와서 쉬기도 해요. 일 최고 체감온도가 33도 이상(주의보), 35도 이상(경보)인 상태가 2일 이상 지속될 때는 야외 노동이 금지거든요. 실내에 들어와서 다른 교육을 받거나 하는데 겨울철에는 발령된 경우가 없어서 계속 일을 해요.
K: 그래서 방한에 신경을 많이 쓰고 외부로 나옵니다. 거의 스키 복장으로 나와요. 내의 다 입고 핫팩도 착용하고 너무 추우면 이동하는 트럭에서 잠깐 쉬기도 해요. 대비책이 좀 부족하죠. 연세가 있으신 동료분들도 계셔서 안전 점검을 꼼꼼하게 합니다. 너무 추워질 때가 되면 공공근로자분들 계약이 종료가 돼서 다행인 것 같기도 해요. 겨울에는 직원분 몇 분만 일하는 기간이라 너무 추울 때는 트럭에 들어가서 잠시 쉴 수 있어요. 12명이 있을 때는 트럭에 다 탈 수가 없거든요.
겨울 정원은 조용해서 정원사들이 실내에서 좀 편안히 쉴 수 있을 줄 알았다. 쉬기는 커녕 스키복 복장으로 칼바람을 맞으며 여전히 식물을 심고 강도 높은 노동을 하고, 가끔은 잠수복을 입고 살얼음 판을 깨부수어야 한다. 이것이 겨울 정원사의 삶이다. 자연을 어느만큼 즐기고 좋아하고 있는지 그 마음의 크기를 재어보고 싶어졌다.
정원사 K의 인터뷰는 이제 시작이다. 끝나지 않은 겨울 정원 이야기와 앞으로 맞이할 세 계절까지 정원사의 시선을 빌어 서울 식물원 곳곳의 소식을 들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