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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승주 작가 Apr 03. 2023

제주4.3은 사회적 토론을 만들어내는가

<4.3과 10.19의 새로운 해석> 학술대회 리뷰


학술대회에 다녀왔다



순천대학교 인문학술원과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원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4.3과 10.19의 새로운 해석>이었다. 탐라문화연구원과 인문학술원은 2018년 10월 12일 업무협약(MOU)를 맺은 이래 정기적으로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요즘은 생계의 압박 때문에 논문 리뷰를 거의 못하는데, 학술대회에 참석하려고 일정을 조율했다.


순천대학교에서 온 발표자들이 '여순사건'과 '10.19[십일구]'를 혼용하는 것이 궁금했는데 좌장(백영경 교수)이 이 부분에 대해서 질문했다. 여기에는 깊은 사연이 있었다. 여순사건이라고 하면 여수와 순천만 생각하기 쉽기 때문에 사건 전체를 담아내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이 담긴 표현이다. 구례 지역을 중심으로 사용하는 용어가 10.19라고 한다. 구례는 빨치산의 통로이기 때문에 여수 순천 못지 않게 학살 피해가 컸지만 '여순사건'에는 구례가 포함되지 않았다. 몇 달 전에 순천풀뿌리교육자치협력센터에서 워크숍을 할 때도 구례에서 오신 김 선생님이 비슷한 고민을 털어놓으신 적이 있다. 그리고 순천에는 10.19연구소가 있다. 10월 19일을 기점으로 해서 전남 지역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넓혀서 이해할 수 있는 용어가 바로 10.19다.


약간 아쉬운 것은 제목만큼 '새로운 해석'이 잘 드러나지는 않았다는 점이었다.  발표의 순서는 <계엄령과 군법회의>(조선대 노영기), <여순 10.19 이전 여순, 순천의 도시 변화 특징 - 일제 강점기 토지 이용을 중심으로>(순천대 우승완), <텍스트마이닝을 통해 본 4.3담론 분석>(제주대 강진구), 4.3해결 담론의 가족중심적 계승과 성별화된 상속의 권리(제주대 김상애) 순서였다. 내가 특히 관심이 갔던 주제는 강진구 교수의 4.3담론 분석이었다.



제주4.3과 여순 10.19는 사회적 토론을 만들어내는가?


강진구 교수는 2018년부터 2023년까지 수집한 13,964건의 댓글을 단어와 토픽 분석, 의미망의 빈도수를 살펴보았다. 일부 의견이 과대 포집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4.3특별법의 정의에 대해서 유보적인 입장과 반발이 눈에 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강진구 교수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제주4.3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토론의 공간을 더 넓히고 다양한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주장을 펼쳤다고 비난을 많이 받았다는 경험담도 들려 주었다.


제주4.3은 건국 이전에 벌어진 사건으로 어떤 대한민국을 만들 것인가 하는 토론으로 시작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념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무력 충돌을 일으키고 사실상 내전의 규모로 격화되면서 3만명이 살해된 것으로 추정되기에 "토론을 잃어버린 시간"으로 볼 수 있다. 토론이 아니라 총칼과 죽음으로 이야기를 채웠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 해결과정은 사회적 토론의 복원이어야 한다. 제주4.3과 관련된 사회적 토론의 공간은 얼마나 될까? 현주소를 가장 잘 보여주는 최근의 사건은 "태영호 발언"이었다.


태영호 발언은 국민의힘 최고위원 후보인 태영호가 제주도민에게 사과하는 형식으로 김일성 지시로 4.3이 발생했다는 우회 주장을 하면서 촉발되었다. 학술대회의 발표자와 토론자는 "태영호 망언"과 "태영호 발언"이라는 용어를 혼용했다. 나는 태영호 발언으로 볼 것이냐 태영호 망언으로 볼 것이냐에 따라서 제주4.3의 토론 공간과 토론 가능성이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좀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태영호 망언"으로 규정할 때 발생하는 손실이 매우 크다.


첫 번째 손실은 망언이라고 규정하는 순간 토론이 닫히게 된다. 토론이 닫히면 선동과 폭력이 주인 행세를 한다. 태영호는 자신의 주장이 망언이 아니라는 것을 역설하기 위해서 마이크를 다시 들 것이다. 망언이라고 규정한 사람을이 태영호에게 발언권을 준 것이나 다름 없다. 태영호의 마이크는 현수막으로 변신해 제주도 전역에 도배되었다.


두 번째 손실은 태영호 발언의 진짜 쟁점들이 묻힌다는 데 있다.



위의 갈무리에서 보는 것처럼 태영호가 김일성 지시설의 근거로 든 자료는 북한의 교과서다. 태영호는 북한에서 배운 교과서의 내용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했고, 그것을 근거로 사과를 한 것이다. 우리가 북한 교과서 내용을 받아들일 이유는 전혀 없는데, 이 부분이 비판이 되지 않다 보니 북한 교과서를 근거로 현수막이 게시되고 만 것이다.


근거도 없는 북한 교과서의 내용이 버젖이 유통되는 것에 대해서는 규탄이 아니라 농담 한마디면 될 것이다. 북한 교과서의 근거 없는 주장을 확산시킨다는 건 김정은을 이롭게 하는 일이니 국가보안법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이적행위 또는 고문찬양이 아니냐고? 검찰 공안수사부나 국정원은 왜 아무 말이 없냐고? 김정은을 이롭게 하는 태영호는 "홍익정은"이라는 앙증맞은 별명을 붙여주면 된다.


제주4.3의 토론 공간이 협소함으로 인해서 제주도민과 제주4.3희생자가 받는 상처가 더욱 커졌다. 소설책 《앵무새 죽이기》로 한 도시 한 책 읽기를 한 시카고에서는 인종차별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드라마 <더 글로리>에 열광한 중국인들은 인터넷 상에서 1만개의 토론을 생성했다. 답이 아니라 토론이 필요한 시대다. 어차피 세상은 복잡하고 입체적이며 상이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10.19는 사회적 토론을 만들어내는가? 구례의 강 선생님은 여순에 묻힌 구례의 슬픈 이야기를 말할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 10.19가 제주4.3의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좋겠다. 중요한 것은 그 사건과 관련 활동들은 사회적 토론을 만들어내는 데 역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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