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승주 작가 Jan 12. 2024

한강의 4.3소설은 '채식주의자'가 된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 번역 개입 논란과 <작별하지 않는다>의 위화감

제주4.3을 다룬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의 표지와 참고문헌 목록. 목록을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드는가?


며칠 동안 나의 페이스북 피드에 계속 돌아다녔던 기사 하나가 있다. (원작가 ‘한강’ 개입, 한국문학 번역과 세계화에 도움이 될까)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의 일부분을 연구자가 번역해서 출간하려고 하자 편집자로부터 한강의 문제제기가 있었다고 연락이 왔다. 연구자는 수정본을 제출했지만 결국 한강이 문제제기한 부분이 잘려 나갔다. 문제가 된 번역 부분은 아래와 같다.


<원작가 '한강' 개입, 한국문학 번역과 세계화에 도움이 될까> 기사 일부 갈무리


제주인으로서 제주4.3을 소설화한 『작별하지 않는다』가 출간된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무척 설렜다. 광주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소년이 온다>를 감동적으로 읽었던 기억도 설렘을 키웠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서는 왠지 설명할 수 없는 위화감이 들었다. 한 번 읽어서 그랬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정독을 다시 하고 나서 위화감은 느낌적인 느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독서모임의 동료를 통해서 들었다.


나는 비행기에서 읽어서 정신이 몽롱해서 그런가보다 생각했어요.


나는 동료의 말을 듣고 정신이 명확해졌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채식주의자'가 된 '소년이 온다'이다. 채식주의자는 부커상을 받은 작품이고,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4.3의 세계화에 맞춰진 기획이다. 제주4.3의 지역성을 건너뛰고 글로벌하게 점프한 작품이다. 이것이 한강 본인의 기획인지 제주4.3과 관계된 사람들과의 공동 기획인지 자세한 사정은 알 수가 없지만, 중요한 것은 『작별하지 않는다』가 지역성을 희생한 상태에서 글로벌화되었다는 문제점을 그대로 남겨 놓았다는 데 있다. 제주4.3의 세계화가 가능한 꿈이 되려면 지역성과 글로벌을 모두 잡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작별하지 않는다』가 제주4.3의 세계화 기획의 실패 사례이면서, 동시에 제주4.3의 세계화라는 기획 자체의 문제점을 드러내 주었다고 판단한다. 글로컬리즘이 되지 못한 제주4.3의 글로벌리즘이라는 건 얼마나 허무한 일인가?


이 글은 『작별하지 않는다』에 대한 비평을 본격적으로 하지는 않겠지만, 이 작품이 제주4.3에 대한 나의 인식을 어떻게 확장하고 강화했는지 되돌아보면 박한 평가를 줄 수밖에 없다. 아름답지만 낡은 언어로 된 구조물 같다. 아름다운 문장들은 어떤 사상을 가지고 제주4.3을 바라보고 있는가? 제주4.3 또는 제주4.3 운동의 방향성에 어떤 자극을 주고 있는가? 제주4.3에 씌워진 낡은 이미지들을 되살리는 것 정도로 제주4.3의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것은 너무나도 안일한 태도다.


그래서

나는 오늘 아침 이 기사를 읽고

머리를 감다가

소설로서 한강을 비판하는 제주4.3 소설을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제주신화에서 나타나는 제주인의 수많은 고통들이 지나가는,

그렇다고 고통으로만 끝나지 않는 이야기를 꽃피우고

제주4.3의 인식을 확장하는,

어린이들도 맘껏 이야기하고,

그들이 어른이 되더라도 제주4.3 이야기가 마르지 않는 이야기의 샘물을 만들고 싶다.

만해 한용운처럼 복종할 대상이 항상 존재하며,

카스트로의 말처럼 리얼리스트가 되면서도 가슴속에 영원히 불가능한 꿈을 가지고 싶다.

그리하여 한강처럼 스스로 배후가 되는 게 아니라,

항상 배후를 섬기고 복종하고 의지하는 제자이자 심부름꾼이자 동생이자 아이로 남고 싶다.

이것이 바로 제주4.3이라는 이름으로 떠나간 양민과 제주인, 선각자, 선열에 대한 도리일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