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nctuary Oct 10. 2024

#019(D-82)가을밤 그 노래

당신의 '그 집 앞'은 어디인가요?

며칠 전 서울시립대학교 클래식 공연에서 남성교수중창단이 부른 두 편의 가곡, <향수>와 <내 영혼, 바람되어>가 자꾸만 귓가에 맴돌더니(https://brunch.co.kr/@cinemacampus/177 ) 오늘 저녁에 산책을 하다가 예전에 좋아해서 자주 불렀던 가곡 한곡이 나도 모르게 입에서 흘러나왔다.


단조로운 멜로디와 쉬운 가사이지만 한번쯤 누군가를 마음에 두고 짝사랑했다면 공감할만한 아련한 쓸쓸함과 애잔함을 느낄 수 있는 곡, '그 집 앞'(이은상 시/현제명 곡)이다.



오가며 그 집앞을 지나노라면

그리워 나도몰래 발이 머물고

오히려 눈에띌까 다시 걸어도

되오면 그자리에 서졌습니다


오늘도 비내리는 가을 저녁을

외로이 이 집앞을 지나는 마음

잊으려 옛날일을 잊어버리려

불빛에 빗줄기를 세며갑니다


오히려 눈에 띌까 다시 걸어도

되오면 그자리에 서졌습니다


나는 대학부설 여자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그 때문에 담을 하나 두고 이웃한 그 대학교 음악과에서 성악을 전공한 대학생이 해마다 우리 학교에 교생으로 오곤 했다. 우리 반에는 남자선생님, 그것도 바리톤 성부였던 분이 교생으로 오셨는데 당시 그 교생선생님의 세련된 매너와 귀여운 외모, 약간 차가운 도회적인 분위기에 우리들은 완전히 압도당했다. 그 해에는 마침 학교 합창경연대회에 열려서 각 반에 배정된 음악 전공 교생 선생님들이 열정적으로 우리들을 지도했고, 대회 당일에 대학교 커다란 강당에 가서 반별로 나와서 합창을 했었다. 우리 반은 그 때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OST 곡을 불렀는데, 연습 때는 곧잘 했는데 막상 대회날이 되자 무대와 많은 청중 앞에서 긴장을 해서 실수를 했고 지휘를 했던 친구가 앞에서 진땀을 흘렸다.

아직도 생각이 나는 사건 하나는, 그 대회에서 우리 반이 합창을 끝내고 내려오는 와중에 내가 무대 뒤에서 제일 늦게 걸어내려오게 되었다. 그때 내 옆에 서있던 어떤 머리가 희끗희끗한 나이든 교수님이 우리 반 교생선생님에게 약간 비웃는 말투로 '그게(합창지도가) 생각만큼 잘 안되지?' 하고 말을 했는데 그때 교생 선생님을 보니 교수님 앞에서 얼굴이 벌개져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내 가슴이 쿵 내려앉았었다. 우리가 실수해서 상을 못받았고 그거 떄문에 선생님이 교수님에게 혼나나보다.. 그렇게 생각하니 너무나 미안하고 속이 상했었다. (아주아주 나중에 찾아보니 그 교수는 우리나라 성악계의 몇 안되는 유명한 분이셨다).


그때 합창경연대회를 준비하면서 지휘자 자리를 두고 치열한 경합이 벌어졌었는데 나와 SY라는 친구가 끝까지 남았었다. 결국 지휘자 자리는 SY가 차지했고 나는 비상상황에서 지휘를 하는 대타 역할을 맡았었다. 내성적이고 나서기 싫어하는 내가 어떻게 끝까지 그런 경쟁을 하려고 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다. SY는 엄마가 학부모회 회장이고 엄청나게 적극적인 성격이어서 우리반 아이들도 당연히 SY가 하려니 생각했었는데 지금 추측컨대, 아마 지휘자 뽑기 전 교생선생님이 공정성을 기한다고 무슨 task를 후보에게 부여했던 거 같고 내가 SY와 동점대였던 것 같다. 자세한 정황은 잘 기억이 안나지만 내가 졌고 난 그걸 무척 억울하게 생각했었던 것 같다.

교생선생님은 나를 좋게 보셨던 것 같고 그래서 종종 선생님이 그 지휘자 친구와 몇몇 친구를 불러서 그 선생님댁 근처 어딘가에서 빵을 먹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그 선생님은 집으로 가셨고 우리도 집에 가는 척 하다가.....몰래 그 선생님댁을 살금살금 쫓아갔다. 그래서 마침내 집을 알아냈고 우리는 신이 나서 서로 킥킥대고 웃었다. 도대체 집을 알아내서 뭘 어쩌려고 그랬는지.



이듬해 고3이 되어서 그 선생님댁 주변을 혼자 괜히 빙빙 돌았던 기억이 있다.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았고 그 동네 자체가 깔끔한 주택가여서 걷기에 좋았던 것 같다. 딱히 그 선생님을 아주 좋아했던 것 같지도 않은데...지금 생각하면 그저 이성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 때문에 그랬었던 것 같기도 하고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다.


이 노래를 들으면 나에게는 그 선생님 집이 '그 집 앞'의 이미지가 되어 떠오른다.

 
누구에게나 '그 집 앞'에 대한 어떤 추억이 있지 않을까? 요즘처럼 SNS가 소통의 주요 수단이 되면 집에 찾아갈 일이 없으려나?


당신에겐  '그 집'이 있나요? 당신의 '그 집 앞'은 어디인가요?

 



나는 이 노래를 바리톤이나 베이스로 부르는 게 좋던데 김동규 영상은 유투브에서 링크가 바로 안걸어져서 링크주소만 걸었고 김민석의 영상은 올려진다. 그 아래는 테너 엄정행의 노래인데, 노래보다 '그 집 앞' 영상이 재밌고 인상적이다. 정말 여러 '그 집'들이 나온다.

https://www.youtube.com/watch?v=KQyQblSmCtU



https://www.youtube.com/watch?v=LqUPjiHjn5U

(바리톤 김동규의 노래)


https://www.youtube.com/watch?v=Hxp7AIc6QA0

여러 그 집 앞을 보는 재미가 있는 테너 엄정행의 그 집 앞





 




매거진의 이전글 #018(D-83) 독박과 독점 사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