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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ctuary Oct 08. 2024

#017(D-84)가을밤 공연선물

서울시립대학교 클래식 음악회

오후에 갑자기 온 카톡.


언니, 이따 저녁에 시간있어?


집에 한번 돌아오면 좀처럼 다시 밤외출을 안하는 내 발걸음을 움직이게 한 번개 공연 초대.


서울시립대학교에서 근무하는 동생이 학교 이메일 확인을 뒤늦게 했는데 오늘 저녁에 대학내 박물관 개관 40주년 기념 음악회 초대장을 받았으니 얼른 오라고 연락이 왔다. 아니 갑자기? 서둘러 집에서 나와 해가 지는 예쁜 하늘을 뒤로한 채 아기자기한 캠퍼스에 도착했다.


높은 건물이 없고 낮고 오래된 건물들이 옹기종기 배치되어 있고 중간중간 작은 공원같은 휴식공간이 많이 눈에 띄는 아름다운 교정. 요즘 큰 대학교 캠퍼스는 기업의 협찬을 받아 지은 마천루 건물이 쭉쭉 들어와있는데 이 대학교는 마치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작은 대학교 같은 느낌을 받았다.   


연못 주위의 잘 조성된 식물들
조각학과 건물인듯

박물관에 들어가 한국 이탈리아 수교 100주년 기념 전시를 돌아본 후,

전시장 내부

조금 걸어올라가 음악관에 도착.


무료공연이고 좌석이 따로 있지 않아서 사람이 많을까 조금 염려했는데 예상보다 많지 않아 여유있게 입장할 수 있었다. 나중에 공연이 끝나고 보니 그래도 좌석이 거의 다 차있었다.

예술의 전당이나 롯데콘서트홀 등 서울의 공연장의 경우, 입장하면서부터 핸드폰 꺼야한다, 사진촬영도 안된다 등등 여러 안내 멘트가 공연 시작 직전까지 계속 나오고 객석 주위에 여러 직원들이 입장하는 관객을 관리하기에 좌석에 앉아서도 줄곧 긴장해야하는데 (나는 내 핸폰이 꺼져있는지 갑자기 불안한 생각이 들어 종종 다시 확인하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 이 공연은 학교 행사고 무료 공연이어서 그런지 아. 무. 런. 제재없이 편안하게 입장하게 하고(물론 음료수 같은 것을 가지고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등 기본적인 규칙은 있다) 소근소근 객석에서 이야기도 나누는 분위기였고, 무대 위 연주자들도 긴장한 것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지나치게 잘하려는 형식적 태도가 전혀 없어서 오히려 나는 편안하게 연주를 즐길 수 있었다.   


남자교수중창단

또한 시립대학교 오케스트라는 학생들로 구성되어서 그런지 학생다운 복장과 쑥쓰러워하는 표정, 열심히 하는 눈빛 등 아마추어의 풋풋함과 열정이 느껴져서 신선했다. 그러나 그 중에서 가장 감동적인 연주는 남자교수들로 구성된 중창단의 노래였다. 다양한 연령대의 남성 중창단의 진심어린 노래는 심금을 울렸다. 특히 은발의 노교수와 젊은 교수들이 김효근 작사/작곡 <내 영혼 바람되어>를 부를 때는 가사 한구절 한구절이 너무나 아름답고 슬퍼서 콧등이 시큰해졌다.


모처럼의 번개 나들이, 프로페셔널한 공연은 아니었지만 행사의 취지를 잘 살려주는 곡 선정과 관객과의 호흡, 연주자들의 열정이 마음에 남는 멋진 공연이었다.


공연은 좋았지만 갑작스런 평일 밤 외출에, 너무나 피곤함이 몰려와서 오늘은 글보다 사진으로 열 일곱번째 글을 마무리한다. 요즘 좋은 공연이 너무나 많지만 갈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포기하고 있었는데 뜻밖에 공연에 가을의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어서 기분좋게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가을이 좀더 천천히 지나가면 좋으련만 하루하루 아쉽게 시간은 빨리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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