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수위까지 해야 적절한 양육일까
아침에 일어나면서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집에 있을 땐 배경음악처럼 하루종일 클래식 FM을 틀어놓고 있다. 오늘 아침, 주방에서 아침식사를 준비하는데 한 프로그램에서 쌍둥이를 키우는 엄마가 사연을 보내왔다.
남들은 '독박육아'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자신은 '독박육아'가 아닌 '독점 육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와.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들었다.
무언가를 발견하는 진정한 여정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을 가지는 것이다라는 뜻. 마르셀 프루스트 외에 헨리 밀러도 이와 비슷한 말을 남긴 것으로 기억한다. 정확한 워딩은 아닌데, 아마 '여행은 어디를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있는 곳을 새롭게 바라보는 것이다' 였을 것이다.
그렇다. 아무리 멋지고 아름다운 곳들을 찾아다녀도 사물과 사람을 보는 시각이 항상 예전 그대로라면, 그 여정은 별 의미가 없을 지도 모른다.
어제 오후에 미국에 사는 친구 부부(정확히는 남편의 친구 부부)에게서 전화가 왔다.
코로나가 끝나고 몇 년 만에 한국에 다니러 간다고. 미국에서는 너무 비싼 치과치료도 하고 쇼핑도 하고 이것저것 하고싶어서 기대에 부풀어 있는듯했다. 요즘 나에게 어떻게 지내냐고 물어서, 그냥 아무 생각없이 잘 지내고 있고 여전히 이런저런 일로 분주하고 딸아이 입시가 2주 남아서 더욱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남편 친구의 부인의 반응이 이러했다.
"어머나, oo씨의 생활은 모든 게 다 딸 @@이에게 맞춰져있군요!"
아, 다는 아니구요. 입시 직전이니 요 몇 주는 특히 그런거에요.
이렇게 얼버무리고 말았는데, 전화를 끊고 하루 종일 자꾸 그녀가 한 말이 생각이 났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이고, 다소 직설적인 화법의 소유자라 그런가보다 하긴 하는데도 그 말이 마음에 걸리는 건 왜일까? 어쩌면 그 말이 정곡을 찌르는 맞는 말이어서 기분이 나빴던 걸까?
가만히 기억을 돌이켜보니, 내가 싱글일때 나 역시 주변에 자녀를 가진 선배들을 보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던 기억이 났다. 아니, 어린 자식에게 왜 저렇게 쩔쩔매지? 강하게 키워야지, 해달라는대로 너무 다해주는 거 아닌가? 너무 아이에게 끌려다니네.. 등등. 그런 판단을 너무도 쉽게 했었던 내 모습을 그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데, 부모가 되어보니 그때와 완전히 관점이 달라져있다. 자식에게 끌려가든, 자식을 끌고 가든, 그 둘 다 모두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직접 체험해봐서 알게 된다. 미국에 사는 남편 친구 부부의 경우, 자녀가 없이 둘만 사는 부부이니 나의 라이프스타일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얼마 전 검색을 하다가 블로그를 통해 딸과 아들을 미국에 유학보낸 엄마의 이야기를 읽게 되었는데 정말 깜짝 놀랐다. 부모가 자식에게 저렇게까지 잘 할 수 있구나. 그 엄마는 딸을 유학보내고 이사를 하거나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비행기를 타고 미국에 사는 딸의 아파트에 가서 같이 청소를 해주고 냉장고를 채워주고 그밖에 힘든 일들을 다 해주고 다시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돌아오는 일을 꽤 자주 하는 듯했다. 물론 이 경우엔 관심만 가지고 되는 일이 아니라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내가 구독하는 브런치 작가님의 딸은 앞에서 언급한 블로거의 딸과 나이대가 거의 같고 신기하게도 미국에서 비슷한 일을 한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 경제적으로, 그리고 정서적으로 독립적으로 키우셨기에 지금 성인이 되어서도 자기 진로를 찾고 일을 찾고 삶을 꾸려가는 모습이 야무지고 독립적이다. 오히려 이젠 엄마가 딸의 도움을 받을 정도이다.
나는 어떤 엄마일까. 블로거처럼 너무 아이와 가까운 엄마도, 브런치 작가님처럼 독립적으로 하게끔 놔두는 엄마도 아닌 거 같다. 그 중간쯤되면 참 좋겠다. 과연 어떤 엄마가 바람직한 엄마일까. 정답은 없을 것이다.
각자의 상황에 가장 잘 맞는 방식으로 살아야할 것이다. 중요한 건, 아이는 내 소유물이 아니라 선물이라는 것, 그리고 양육의 목적은 아이가 자립할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는 것. 알면서도 쉽지는 않다. 나는 십오년을 함께 살았어도 아직 잘 모르겠다. 아이를 키운다는 표현도 어떤 이는 적합하지 않다고도 말한다. 같이 성장한다는 의미에서.
아이가 원하기도 전에 미리 갖다바치는 오버를 하지 말것, 통제하려고도 하지 말 것, 무엇보다 아이와 함께 나의 삶도 잘 꾸려갈 것. 지금 막연하지만 아직 성인이 되기 까지 5년이 남은 아이와 살면서 내가 깨달은 점들이다. 아이를 낳고 지금까지도 중요한 고비마다 이런 자의식으로 고민에 빠지게 된다. 좀 단순하게 살면 좋으련만 그렇게 잘 안된다. 이런 내 모습조차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중요한 건, 내가 나자신만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비록 자식이긴해도) 나를 내어주고 헌신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는 다행스럽고 감사하다. 나처럼 이기적인 사람이 자식마저 없었으면 지금쯤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해 살다가 고독한 괴물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오늘 밤, 오랜만에 밝은 모습으로 아이가 집에 왔다. 하루종일 이젤 앞에서 전투를 하고 돌아왔겠지. 자기 방 침대 안으로 뛰어들어가며 소리지른다. '나 방에서 좀 누워서 쉬다가 씻을 거니까 30분 동안 들어오지마'
그래, 알았다 알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