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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ctuary Oct 22. 2024

#031(D-70)와인 또는 쌍화탕

비오는 화요일에...

비오는 날의 풍경은 인간을 더 연약하게 보이게 하는 것 같다. 그저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져내릴 뿐인데 사람들은 차가운 빗물에 젖지 않기 위해 우산을 펼쳐들고 그 아래에서 몸을 움츠린다. 어딘가로 향하는 발걸음도 평소보다 빠르다. 물론 빗 속에서 간혹 더 천천히 걷는 사람도 있기는 하다.

오늘은 하루종일 비가 내렸다. 날은 서둘러 캄캄해졌고 이제 이 비가 내일 새벽에 그치고 나면 가을도 언제 왔나싶게 겨울에게 자리를 내어줘야할 지도 모른다. 


새벽부터 아이를 입시장 실기실에 보내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몇 가지 미션을 강제로 행하도록 -그래서 생각을 하지 않고 몸만 힘들게 만드려고 - 어제 미리 오늘의 To Do  리스트를 만들어두었다. 그런데 비가 이렇게 종일 내릴 줄은 미처 예측을 못해서 그 미션 중 하나를 수행하는데 시간이 더 걸렸다. 운전을 해서 어딘가에 다녀오는 일이었는데, 길이 많이 막혔다. 


학교 문 앞에서 기다리지 말라고 친구들과 다시 학원에 가야한다고 단호하게 말했건만 집이 학교와 가까운 관계로 발걸음이 저절로 시험 종료시간에 맞춰 교문 근처로 움직이고 있었다. 옆에서 우는 친구를 다독이며 아이가 나오고 있었다. 얼굴 표정은 편안했다. 그럭저럭 괜찮게 본 모양이다. 


길고 힘든 여정의 끝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잘' 마무리한다고 할 수 있을까? 
비록 내일 하루 시험이 더 남아있긴 해도 이제 절반이 지나갔으니 끝을 향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루만 지나면 여태껏 지내왔던 시간보다 좀더 홀가분하게 지낼 수 있을까?

마리톤 선수가 결승 테이프를 저만치 앞두고 갑자기 다리가 풀리듯이 오후부터 나도 몸이 갑자기 으슬으슬해지고 머리도 아픈 것 같다. 돌이켜보면,  내가 삶에서 겪었던 어떤 여정의 끝은 대체로 환호성이나 안도감이 아니라 극심한 피로감과 허탈감인 경우가 더 많았다. 몇 년 간 낯선 땅에서 혼자 논문을 쓰고 나서도 그랬고 아이를 출산하고도 그랬던 것 같다. 파티보다는 잠과 휴식이 필요했다. 그래서 와인을 마시고 축하하기보다 끙끙 앓으며 쓴 쌍화탕을 들이킨 적이 더 많았다. 

 지금은 어떠한가? 와인인가 아니면 쌍화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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