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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ctuary Oct 18. 2024

#027(D-74)그래, 나 예민한 사람이야

청각과민증, 남들보다 민감한 사람들

극도의 민감성은 인격을 풍요롭게 만든다. 단지 비정상적이고 어려운 상황에서만 이러한 장점이 매우 심각한 단점으로 바뀐다. 그것은 민감한 사람들의 침착하고 신중한 성향이 갑작스러운 상황으로 인해 혼란을 겪기 때문이다.

그러나 극도의 민감성을 본질적으로 병적인 성격의 구성 요소로 간주하는 것은 심각한 오류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류의 4분의 1을 병적인 사람으로 규정해야 할 지도 모른다
 --- 카를 구스타프 융


나는 상대방이 큰 소리를 내면 일단 얼어붙는다. 그래서 말싸움을 못한다. 하다가 상대방이 소리가 커지면 내가 유리한 상황이고 그 사람의 주장이 말이 안되도 그냥 멘탈이 붕괴되서 아무 대응도 못하고 물러나고 도망간다. 나에겐 어린 시절 큰소리 트라우마가 있다. 워낙 목소리가 우렁찬 아버지가 엄마에게 소리를 지르면 너무나 무서웠다. 특히 술을 마시고 들어온 밤에 자다가 그 소리 때문에 깬 적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공포스러웠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래서 지금도 남편이 소리를 조금만 높여도 못견뎌한다. 단지 큰소리를 내는 것에 대한 공포만 있는 게 아니라 소리 자체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소리는 손톱깎는 소리다. 그래서 가족 중에 누가 손톱 발톱을 깎는 소리가 들리면 다른 방으로 문을 닫고 피한다. 남편은 최근에야 그걸 알고 일부러 다른 방에 가서 혼자 문을 닫고 손톱을 다 깎은 후에 나오기도 한다. 딱 딱 __...그 소리가 굉장히 귀에 자극적으로 들린다. 머리가 쾅쾅 울리는 것 같다. 


미용실이나 카페 스피커에서 불륨이 높아지면 불안해진다. 미용실 원장에게 갈 때마다 소리를 몇 번 줄여달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더니 이제는 알아서 조금 볼륨을 낮춰준다. 역류성 식도염에 걸려서 몇 달 동안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은 적이 있었는데, 치료실 옆에 약탕기 끓이는 방이 있었다. 그 방에서 딱딱 소리가 계속 나면서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 적이 있어서 참다참다가 그 한의원에 더이상 가지 못했다.  도대체 왜 이럴까. 이런 내 자신에 대해서 짜증이 나서, 언젠가 검색을 한번 해보았다. 이런 증상이 대체 뭘까 그리고 난 왜 이럴까. 그런데 의외로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는 사람이 꽤 많고 이런 증상에 대한 이름도 있다. Misophonia. 미소포니아. 청각과민증. 특정한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증상이다. 이런 증상과 직접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피해받는 것에 민감해서 그런지, 나의 어떤 행동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에 대한 강박증도 있다. 특히 요즘처럼 어떤 큰 일을 앞두고 있을 때 평소보다 더 예민해지는 걸 느낀다. 같은 말, 같은 톤일텐데도 상대방의 거절이나 부정적인 언사가 더욱 크게 다가온다. 

  

그러다가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나같은 사람들을 분석해놓은 책이다. 사회에서는 민감한 사람들을 불편하게 여긴다. 그래서 예민한 사람들은 항상 자신의 이런 성향을 수치스러워하고 숨기고 싶어한다. 그로 인해 고통받는다. 저자는 이런 성향 자체가 부정적으로 평가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해결방법도 제시한다.  이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남들보다 민감한 사람들은 그래서 상담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이 상담을 통해 분석한 이 사람들의 대한 내용이다. 


1. 남들보다 민감한 사람들은 예민한 신경시스템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더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2. 남들보다 민감한 사람들은 강한 정신력과 외향적인 성격을 높이 평가하는 사회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3. 남들보다 민감한 사람들은 어려움을 겪을 때 남들에게 숨기고 이야기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한가지 이유는 그들의 고통 한계점이 남들보다 낮기 때문이고, 또 다른 이유는 그들이 자신의 문제를 더 깊이 받아들이고 자신의 삶을 숙고하는 셩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p.221)


자기 자신 받아들이기
거절할 수 있는 용기

책의 내용을 다 요약할 수는 없지만, 결국 자기 자신의 성향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숨기지 않고 가족이나 친구, 동료에게 표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로 인해 피해를 받고 상처를 받을 수 있지만 숨기는 고통보다는 그게 더 낫다는 점에 나도 동의한다. 살면서...내가 이상한 사람, 유별난 사람, 까다로운 사람이라는 말을 종종 듣고 있다. 그러나 어쩌랴..내가 그런 사람인걸. 이런 성향도 나의 일부분이라는 점을 차분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이 책 후반부에 테스트 문항이 있다. 제법 긴 문항들을 다 체크한 후에 자신의 점수를 더해서 80이 넘으면 매우 민감한 사람으로 판정된다. 나는? 118점이다. 그러니 남들보다 민감한 사람임이 분명하다.  


나의 '민감함'이 고쳐야할 문제거리가 아니라 개발해야할 대상이라는 점, 우리 사회가 높이 평가하는 창의력, 통찰력, 열정 등이 '민감함'이라는 재능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 무엇보다 대부분의 민감한 사람이 자신의 성향이 놀라운 능력이라는 점을 모른다는 점.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금 나는 나자신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남들처럼' 살려고 노력할 게 아니라, 나답게 사는 게 중요하다는 새삼스런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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