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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ctuary May 21. 2022

친절한 키오스크씨

무인점포와 친절함

기침이 심해졌다. 지하철을 탔는데 향수를 뿌린 사람이 가까이 오면, 그리고 그 향이 내 코 안으로 진입하는 순간, 미친듯이 기침이 시작되서 멈추기가 힘들다. 코 점막이 극도로 예민해진 거 같다. 집에선 음식을 조리할 때 특히 김치찌개 같이 매운 고추가루 냄새를 맡으면 또 사레걸린 듯 기침이 시작된다. 몇 년 전에 이 알러지성 기침 증상 때문에 일상이 정말 힘들었었다. 이 곳으로 이사온 후에 그 증상이 씻은 듯이 사라져서 신기해했었는데... 올해 봄 꽃가루와 함께 재발했다.


이 코로나 시국에 이런 폭발성 기침을 하면 주변에서 움찔하고 슬금슬금 뒤로 물러선다. 며칠 째 같이 사는 가족들은 물론이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불편해해서 오늘은 진료 마감 시간 직전, 근처 이비인후과에 갔다. 의사는 역류성 식도염도 원인 중에 하나일 거라도 추정하면서 약을 복용하는 기간 동안 커피를 마시지 말라고 했다. 병원은 건물 3층에 있는데 엘리베이터로 1층에 내리자마자 약국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나는 1층 그 약국에 들어가지 않고 굳이 길을 건너서 건너편 허름한 약국에 간다. 병원과 일체형인 그 대형 약국은 조명이 환하고 널찍하며 약의 종류도 많지만 이것저것 영양제를 권하고 뭘 물어봐도 짧고 사무적인 대답이 돌아와서 약국이라기보다는 수퍼마켓의 느낌이 강하다. 건너편에 있는 간판도 촌스러운 이 낡은 약국은 지난번 코로나 걸릴까봐 노심초사 힘들었을 때 자가진단키트를 사러 몇 번 갔었다. 재빨리 계산하고 나가려는 찰나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나이지긋한 약사가 키트 사용법을 자세히 천천히 설명해주었다. 코아래쪽에 아주 깊숙하게 넣어야 진단이 잘 나온다고 당부했다. 처음엔 그 친절함이 좀 부담스러웠었다. 요즘은 친절함을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진심으로 친절하면 속으로 깜짝 놀란다. 근데 여러번 가봐도 한결같이 친절했다. 어차피 약은 똑같은데…저절로 그 약국에 발길이 간다.



사실 아침부터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어제 낮에 딸에게 카톡을 보내다가 카톡프로필을 무심히 열어보았는데 그동안 올라왔던 사진들이 모두 싹 없어진 회색의 무미건조한 기본 화면만이 떴다. 초등 때 SNS 사이버 폭력 사건에 얽힌 일이 떠올라 하루종일 신경이 쓰였다. 중학교 올라가서 새로운 친구들하고 한창 채팅을 하던데 혹시 뭔가 문제가 생긴걸까? 집에 돌아온 아이에게 조심스럽게 무슨 일인지 물어보니 대답이 허무했다. 그냥 멀티프로필을 엄마한테 한번 테스트한 거라나. 어찌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고 아무 것도 아닌 일인양 대범하게 대처할 수도 있겠으나 난 그런 지혜롭고 통큰 엄마가 아니다. 이제 내 감정 근육의 탄력성은 형편없어졌다. 한번 찰진 공이 툭 던져지면 내 감정의 헤진 그물망은 그냥  바로 뚫려 버린다. 실밥 다 터진채로. 간신히 참고 소리지르지는 않았지만 서운한 마음은 무겁게 고스란히 전달되었을 것이다. 아이가 독립하려는 의지는 자연스러운 일이고 한편으론 응원해주고 싶지만 그 과정이 꼭 이렇게 엄마의 감정을 거칠게 스치면서 지나가야만 가능한건지... 여전히 나는 힘들다.


약사가 바로 조제실에 들어가지 않고 처방전을 들여다보며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동안 나는 약국건물 옆 분식집 음식이 괜찮냐고 물었다. 난 사실 이런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하는 편이 아닌데 나도 모르게 그 말이 툭 튀어나왔다. 이 뜬금없는 질문에 약국 약사의 부인으로 추정되는 분이 '아..뭐...'라고 말하려다가 다른 급한 손님이 들어오는 바람에 대답을 못했고 약사는 화면에서 눈을 들어 나를  보면서 '그 집 음식 자주 먹고 있는데 괜찮아요. 그게 어느새 십 육년이네 허허' 하고 대답한다.

사실 이사온 지 거의 2년이 다 되어 가는데 집 근처에서 편히 먹을만한 분식집을 찾지 못했다. 편의점 옆 동대문엽기떡볶이는 너무 매워서(이름도 무섭다) 도저히 못먹겠고(딸은 자주 포장해온다) 제대로된 밥집들은 고기집들이 대부분이라 부담스럽다. 그냥 가벼운 분식이 먹고 싶을 때 편하게 갈 곳이 없어서 늘 아쉬웠다. 그런데 이 약국 바로 옆에 딱 한 곳 분식점이 하나 있는데 겉으로 보기에 너무 낡아보였고 결정적으로 낮에도 조명이 너무 컴컴해서 웬지 들어가볼 엄두를 못냈다. 내 기준으로 그냥 자체 통과된 식당. 그런데 같은 주인이 한 자리에서 16년을 해왔나보다. 다음에 한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냥 한번 들어가서 먹어보면 될 것을, 꼭 누구에게 경험을 들어야 시도해보게 되는 비합리성.  


약 조제가 끝난 듯하여 카드를 꺼내는데 약사가 약봉지를 주면서 옆에 온장고에서 쌍화탕 한 병을 꺼내서 봉지에 쓱 넣어 준다. "따뜻할 때 약이랑 같이 드세요". 요즘 약국에선 좀처럼 이런 거 잘 안주는데.. 건너편 병원 1층에 약국이 있는데 일부러 길을 건너와서 그런건가? 모르겠다. 어떤 (친절한) 행위의 원인을 내가 다 알 필요는 없으니까. 그런데 기분이 괜찮았다. 느닷없는 친절, 다정한 대응에 뾰족한 기분이 누그러졌다. 손바닥으로 약봉지를 통해 전해지는뜨끈뜨끈한 쌍화탕의 온기가 느껴졌다. 쌍화탕이 식기 전에 얼른 집에 가서 약을 먹고 싶지만 아직 한군데 더 들러야 한다.


새로 생긴 반찬집에서 마른 반찬류를 두 세개  고른 후 계산대 앞에 줄서있는데 카운터 보는 분 표정이 심상치가 않다. 염색은 했지만 70대로 보이는 할머니가 크기가 커서 들어가지 않는 반찬팩 서너개를 억지로 자신의 매는 작은 가방에 집어 넣기 위해 시간이 지체되면서 옆으로 줄이 길게 늘어서있다. 멀리서 딱 봐도 그 작은 가방보다 반찬팩들이 커보인다. 그런데 어쩐지 나는 끝까지 50원 비닐종이를 사고 싶지 않은 할머니의 마음을 이해할 수는 있을 거 같았다. 쌍화탕 식으면 데워먹지 뭐. 그냥 느긋하게 기다렸다.  어쩌면 좀전 약국의 작은 친절이 나에게 준 여유로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스티로폼에 담고 투명랩을 두른 네모난 반찬팩들을 가방에 넣었다 뺐다 하면서 할머니가 한참을 애쓰는 동안에 계산대 캐셔 아줌마는 눈을 찡그리고 뭔가 한마디하려다가 다시 감정을 추스리고 가방 안에 반찬팩들을 꾹꾹 다 담아주더니 마침내 지퍼를 잠가주는 일에 성공했다. 나는 캐셔 아주머니가 끝까지 짜증내지 않기를 바라면서 조마조마하게 지켜봤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캐셔 아주머니가 내가 가져온 종이쇼핑백에 네모난 반찬팩들을 넣어주려고 하길래 내가  "아까 고생하셨는데 제 껀 제가 넣을게요"라고 말하니까 쑥쓰러운 듯 웃는다. "아, 그니까 50원 비닐 사면 되는데 매번 안사시고 억지로 넣으려고 하셔서". "네, 가능하면 비닐은 안사는 게 낫죠. 돈이 문제가 아니라 환경에도 안좋으니까요". 내가 웃으며 말하니 같이 호호 웃는다. 어찌보면 별 거 아닌데 그 짧은 시간에 생전 처음 본 두 사람이 느닷없이 웃으며 대화를 나눈다. 기다리며 짜증안낸  나의 대응도 스스로 기특했고 그 캐셔 아줌마도 내가 건넨 한마디에 아까 그 상황으로 인해 긴장한 마음이 풀린 듯하다.  이렇게 동네에서 서로 얼굴 보며 잠시동안 거래를 하는 것. 스쳐가는 듯 짧긴 해도 하나의 '만남'이다. 물건을 사고 돈을 주는 사무적인 행위에도 나와 상대방 사이에 말과 감정이 오간다.



며칠 전 부모님 댁에 가서 식사하다가 엄마에게 동네뉴스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한창 영어공부 중인 우리 엄마가 영어공책에 필요해서 오랜만에 나와 내 딸이 졸업한 모교인 초등학교 앞 오래된 문방구(우리 엄마에겐 문구점이 아니라 항상 문방구이다)에 기셨는데 그 문방구가 그 사이 없어지고 거기에 아주 모던한 새 문구점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런데 공책을 고르고 계산을 하기 위해 아무리 기다려도 주인이 안나왔다. 이상해서 문안팎을 두리번거리다가 한무리의 초등 남자아이들이 들어오길래 "여기 주인 아저씨 어디가셨는지 아니?"했더니 “여긴 주인없어요. 이 기계에 계산하셔야해요”라고 구석 키오스크를 가리켰다고 한다. 엄마가 너무 놀라 이거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묻자 아이들이 친절하게 하나하나 엄마 대신 카드를 넣고 도와줘서 무사히 계산을 끝낼 수 있었다고 하셨다.


나는 추억의 문구점이 없어진 것도 충격이거니와, 다른 아이템도 아닌 학교 앞 문구점에 사람대신 기계가 놓인 무인점포 문구점이 생겼다는 게 너무 비인간적으로 느껴졌다. 나에겐, 나의 세대에겐 학교 앞 문방구 아저씨 아줌마와의 인간적인 추억이 존재하는데(그게 좋은 것이든 안좋은 것이든) 이 아이들에겐 커서 무인문구점의 키오스크와의 기억이 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서글퍼졌다. 진짜 우리가 이런 시대에 도달했구나. 지우개 한 개, 공책 한 개, 사탕이나 껌 같은 작은 것들을 계산대에 놓고 아저씨와 시시한 인사를 나누고 핀잔도 듣고 잔돈도 거슬러받고 하는 여러 가지 만남의 행위는 더이상 없을 것이다. 기계에 바코드 찍고 카드 넣고 몇 개 스크린 터치하면 그 과정은 끝인 것이다.
나는 아직 온기가 남아있을 때 쌍화탕을 마시려고 집으로 가는 발길을 서둘렀다.연신 기침을 해대면서.  


P.S. 이 글의 초고를 읽은 지인이 나에게 대부분의 어른들은 서운해하지만 정작 사용자인 아이들은 일반 문구점보다 무인문구점을 더 좋아하더라고 귀띔했다. 요즘 웬만한 초등학교 앞 문구점은 다 무인점포로 바뀌는 추세라고. 아이들 입장에선 주인 눈치보지 않고 마음대로 이것저것 만지고 구경할 수 있어서 편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불친절한 (감정을 드러내는) 주인이 있는 가게보다 감정없는 키오스크가 더 나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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