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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지완 May 12. 2017

도시 속의 섬, 가리봉의 재발견

가다, 가리봉


골목의 재발견 첫번째 이야기 - "도시 속의 섬, 가리봉의 재발견"


“이번 역은 구로, 구로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늘 습관적으로 신도림에서 2호선 환승을 위해 많은 사람 속에서 빠른 걸음을 하다가,

여유 있게 개찰구를 나오니 익숙하지는 않지만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구로라는 지역에 대한 나의 경험과 생각이 반영되어 느껴지는 기분일 수도 있겠다.

아마도 내가 처음으로 구로를 접한 것은 중학생 때로 기억한다. 
(맞나? 맞을 거다 아마도…)

친구들끼리 세뱃돈을 꼬깃꼬깃 모아 찾아간 마리오 아울렛.


그때 당시에 나는 촌놈이라(지금도 촌놈 맞다), 지하철 타는 것도 무서웠고, 어디서 내려야 할지도 몰랐다. 

결국 가산디지털단지역(구 가리봉역)이 아닌 구로역에 내려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어렵게 찾아갔더랬다.

그때의 어리숙한 나의 모습 때문인지, 어쩐지 구로는 익숙하면서 낯선 느낌이 들었다.




다시 찾은 구로, 그리고 가리봉동의 골목길


‘도시재생과 원도심’에 대해 관심이 무르익어 가던 중, 우연히 서울시 도시재생 소식지를 접하게 되었다.

해방촌, 성수동 등 익숙한 지역명 사이에 귀여운 이름 ‘가리봉동’

그리고 불현듯 떠오르는 “비 오는 날엔 가리봉동에 가야 한다.”

중고등학교 시절 교과서로 접했던 양귀자 작가의 소설. 도시민의 삶의 애환을 담았던 작품이다.

가리봉… 가리봉봉… 가리봉봉봉… 과연 이곳은 어떠한 동네인가? 이름만큼 재미있을 동네일까?


봉봉, 먹는건가?



일단 나는 남들이 잘 찾지 않거나, 잘 모르는 장소에 방문을 할 때마다 카타르시스(?) 비슷한 감정을 느끼곤 한다.

그 때문인지 무작정 가리봉동을 찾게 되었다.

그렇게 옛 기억을 떠올리며 구로디지털단지 고층 빌딩 사이를 가로질러 가리봉동으로 향했다.





가리봉으로 가는 길






가리봉에 가는 길

하늘은 맑고, 바람은 시원했고, 나무는 높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조용했다.

정말 “고즈넉하다”라는 표현이 딱이다.


구로디지털단지 고층빌딩들과 상반된 분위기
붉은 벽돌과 오래된 돌담, 그리고 낮은 집들


가리봉동으로 들어가는 길에 서 있으면 '이 곳이 과연 서울이 맞나?'라는 생각이 든다.








어린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골목길


가리봉동 골목길

가리봉동에 들어서자 펼쳐진 여러 갈래의 골목길이 펼쳐진다.


시끄러운 도심 속 조용히 걸을 수 있는 길

함께 걷는 이에게 집중할 수 있는 길


가리봉동에는 오래된 담벼락 사이로 흐르는 길들이 존재한다. 


그 길을 걸고 있으면 어린 시절 친구들과 함께 뛰어놀던 골목길을 떠오른다.


마치 시간이 멈춘 느낌





가리봉동 골목길 사이사이 벽에 붙어있는 아기자기한 표지판


가리봉동의 벽 그리고 표지판

그렇게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벽면에 아기자기한 표지판들을 확인할 수 있다.


문단속
먼저 인사합시다 
금연
쓰레기는 내 집 앞 배출

그리고 중국어

이 곳에 왜 중국어 표지판이 있을까?






추억을 고스란히 담아

조용한 골목길을 돌아서 나오면 시간이 멈춘 듯한 동네의 관경을 볼 수 있다.


연탄을 보관하고 있는 창고, 그리고 동네 주민들의 평안과 안식을 담당하는 오래된 목욕탕

오래된 간판에 고스란히 적혀있는 '맛있는 집', 오래된 분식집.


이 밖에도 간판만 남고 사라진 오락실, 슈퍼마켓 등을 보고 있으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20년 전으로 돌아온 느낌마저 든다.




고층 건물들 사이에 있는 가리봉동

가리봉동은 어떻게 지금의 모습을 간직하게 되었을까?


사진 출처 : http://www.iusm.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0888
가리봉동

본래 가리봉동은 70~80년대 구로공단 공장에서 종사하던 여공들의 배후 주거지였다.

하지만, 90년대 산업 개편으로 인해 입주해있던 기업들이 하나둘씩 줄어갔고,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노동계층이 이주하며 쇠퇴의 길을 걸었고,

한중 수교를 통해 많은 중국 동포들이 가리봉동에 이주, 정착하였다.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위 사진 속 우리나라 산업 역군 여공들, 바로 이들의 배후 주거지가 가리봉동이었다.


중국동포들이 만들어온 상권 우마길과 전통시장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저렴한 탓에 이주, 정착한 중국동포들

우마길은 가리봉동의 메인 거리가 되었다.

보통 "중국동포"라 하면 사회적인 편견 속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본 광경은 너무나도 평화롭고 여유로움 그 자체였다.


이색적인 음식과 분위기

과연 여기가 서울이 맞나?



가리봉의 벌집

옛 여공들의 보금자리를 벌집이라고 부른다.

고된 노동 속에서 민주주의 쟁취를 위하여 목소리를 높였던 그들의 삶의 터전은 어떤 모습일까?


70 ~ 80년대 가리봉동 일대에 지어진 벌집

2~3평 정도의 방이 40개씩 모여 있는 건물

그 모습이 마치 벌집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는 계단들

1m 간격이 채 안 되는 건물과 건물 사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여공들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그러면서도 '현대식 고층건물에 익숙해져

옛 골목길, 건물에 정겨움과 포근함을 잊고 사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층건물 사이의 가리봉동 그리고 벌집

벌집 옥상에 올라와 주변을 살폈다.


“세월의 흐름”
70~80년대 미싱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을 이곳은 이제 고층 건물들에 둘러싸여 섬이 되었다.


어쩌면 가리봉동은 빠르게 정신없이 움직이는 서울의 삶에서 잠시 동안 
‘멈춤과 느림’을 제공받을 수 있는 동네이지 않을까?
가리봉동의 고즈넉한 골목길을 걸으며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 Epilogue 1 가다, 가리봉 마무리


Epilogue 2 만나다, 가리봉에서는 가리봉동 도시재생 활동과 사업단 인터뷰에 대한 내용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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