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일상을 지탱해주는 무엇들
2024년 8월 16일 아침에 씁니다.
39살이라서, 아홉수라서 그런지 “나이”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나는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아갈 것이고, 어떻게 죽게 될까. 저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요. 비슷한 생각을 29살 때도 했던것 같습니다. 그 고민의 결과가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의 이직이었죠. 안정된 대기업에서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더 불안정하겠다는 생각. 10년을 돌아보자니 29살의 생각이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것 같습니다. IT스타트업으로 뛰어들어서 대기업에 있었더라면 배우지 못했을, 경험하지 못했을 수많은 경험들을 얻었지만 - 반대로 저에게는 그 경험들을 겪어내며 쌓인 자잘한 상처들이 남았습니다. 패기와 열정이 넘치던 29살의 청년은, 사람과 회사에 회의적인 39살의 아저씨가 되었습니다.
40이라는 나이를 코앞에 두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 를 고민합니다. 여러가지 키워드가 있겠지만, 가장 제게 간절한 것은 ‘일상’ 인 것 같아요. 2022년 겨울, 저는 layoff (구조조정이라는 한국어가 있지만, layoff가 더 감정적으로 멀게 느껴져요)라는 것을 당했었습니다. 다니던 스타트업의 재무상황이 악화되어 경험하게 된 것인데요. 이 구조조정의 경험은 저의 일상을 무너뜨렸습니다. 저에게 회사는 일상의 어떤 것이었어요. 월요일 아침이면 당연하게 출근하고, 금요일이면 기쁘게 퇴근해서 주말을 맞이하고. 그런 삶이 당연하다고 느꼈죠. 회사의 재무악화가 제 탓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저는 6개월간 끊임없이 고민하고 고통스러웠습니다. 회사생활이 제게는 정말 중요한 무엇이더군요.
지금은 다시 회사생활로 복귀했습니다. 하지만 예전같지는 않은 것 같아요. 회사가 편안하기 보다는, 다소 불안하고 긴장됩니다. 또 ‘편안하고 행복한 회사가 있겠지’ 따위의 환상도 갖지 않습니다. 그래도 회사에서 돈을 벌어본 경험이 전부인 ‘회사인’인 제게 회사생활은 곧 생업입니다. 회사생활의 긴장감과 적절한 공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 방법을 ‘일상’ 으로 찾았습니다.
회사에 출근했다가, 친한 동료와 밥먹고, 일을 잘 끝내고 나서 동료들과 술한잔하고, 주말이면 늦잠자고. 이게 제게는 당연한 일상이었습니다. 하지만 layoff 를 겪고나서 제게 ‘회사가 아닌 일상’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제게는 그게 달리기, 크로스핏, 글쓰기 인것 같아요. 평일 저녁에 퇴근후 아내와 함께 크로스핏에 가고, 주말 오전이면 길게 달리기를 하고, 아침에 일어나면 글을 쓰는 것. 이런 작은 일상을 쌓아나가고 있습니다.
과거, 회사가 일상의 전부였던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으면서도, 많이 다릅니다. 회사가 전부였을 때는 일에 날서고, 예민했던 것 같아요. 더 독하게 일에 매진하고, 인정받고자 노력했습니다. 인정받지 못하면 제 삶이 흔들리기도 했죠. 하지만 글쓰고, 달리고, 크로스핏을 가는 저는 조금 단단해진 것 같아요. 회사에서의 인정과 별도로 저 자신을 스스로 인정할 줄 알게 되었고, 프로젝트의 성공 못지않게 와드의 기록향상이 기뻐졌습니다.
스물아홉의 저는 거창하게 ‘대기업을 떠나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회사가 일상이니, 그 일상을 바꾸려면 회사를 바꾸는 것이 선택의 전부였으니까요. 서른아홉의 저는 ‘일상을 지켜내야지’ 라고 스스로 다짐합니다. 이것만으로 될까 하면 잘 모르겠습니다. 작가가 되기 위해서 글을 쓰는것도 아니고, 운동선수가 되기 위해 크로스핏을 하거나 달리기를 하느게 아니니까요. 여전히 제 글은 주제에서 자주 벗어나고, 크로스핏 기록은 뒤에서 세는게 빠르고, 달리기도 5킬로미터만 달리면 퍼져서 걸어서 집에와야 합니다. 그래도 이 일상들이 모여 저 자신이 단단해지고, 중심을 찾는게 느껴집니다. 공자님은 마흔에 ‘미혹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고 했어요. 저도 그렇게 미혹되지 않게 살아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