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23일 오후에 씁니다.
지금보다 몇살 더 어렸을 때, 저는 “ENTJ”가 되고 싶었습니다. 직관과 이성을 결합한, 타고난 기업가 체질의 그런 사람요. 그 시절에 MBTI 검사를 하면 실제로 ENTJ 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우습지만, 저는 제가 되고싶은 모습이 마치 지금의 내 모습이라고 믿었던 것 같아요.
나이를 한두살 먹으면서 깨달은 것은 "인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현실의 나를 부정하고 되고 싶은 나만을 바라보는게 아니라 내 진짜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요. 서른 중반이 넘어서야 "감정적인 나"를 올바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감정형의 내가 나쁜게 아니구나, 그냥 다른것 뿐이구나 하고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저 자신을 인정하고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이성을 동원하여 착착 대응하는 것은 아니지만, 연관된 사람들의 마음을 직감적으로 이해하고 사람들에게 인간적 소통을 할 수 있었습니다. 억지로 나 자신을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몰아넣을 때는 나타나지 않던 강점들이 제 안에 자리잡았습니다.
그렇게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저는 MBTI 의 개념을 조금씩 제 안에서 지우게 되었습니다. T라고 해서 인간미가 0인것도 아니고, F라고 해서 감성 덩어리인 것도 아니더군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사람에 대해 이해하며 깨달은 것은 사람이 가진 모습을 몇 가지의 차원으로 무자르듯 나누는 것이 위험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ENFP 입니다. 주변에서도 엔프피인 것 같다고 해요. 하지만 이런저런 짤들에서 보이듯 골든리트리버마냥 사람들을 막 좋아하진 않구요. 아무 계획없이 삶을 살아가지도 않아요. (오늘은 모처럼 연차를 내고 쉬는데, 어제부터 '내일 뭐할지'의 계획을 세우기도 했어요.) MBTI 는 아직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 공통의 이야깃거리로 충분히 재밌는 것이지만, 저에게 직접적으로 적용하면 마음의 까끌거림이 생기는 개념입니다. 저라는 사람이 항상 동일한 특성으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4가지 차원으로 다 설명되는 것도 아니니까요.
사람을 구분하는데 MBTI 만 있는 것은 아니죠. 이제는 많이 없어졌지만, 한때는 혈액형도 유행이었고 DISC 유형, 애니어그램이라는 것도 보는 분들이 있었어요. 저는 이런 구분을 '프레임워크'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성격이라는 이해하기 힘든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만든 개념이죠. 프레임워크가 있으면 처음보는 개념도 이해하기 쉽습니다. 난생 처음보는 사람도, "아 너 INTJ 야? 그럼 000 하겠다"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무작정 "넌 이런사람"이라고 평가하는 것도, 선입견을 갖는 것도 자칫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위에 말했던 것처럼 특정 MBTI 형태가 그 사람의 성격 전체를 대변할 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우리의 프레임워크는 한번 "저 사람은 INTJ"라고 판단하면, 그 사람의 모든 행동을 내가 아는 INTJ 의 프레임워크에 맞춰서 재해석합니다. 그때부턴 상대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INTJ스러운 행동을 하는 누군가"만 남아있죠.
MBTI 많이 보시나요? 저는 주변 사람들이 MBTI 이야기를 하면 곧잘 받아서 이야기 합니다. 즐거운 대홧거리로요. 하지만 누군가를 이해할 때, 이 효율적인 도구를 활용하지는 않으려 합니다. 상대가 살아왔던 인생사, 지금 하고 있는 고민, 순간순간 반응하는 모습 등을 보며 상대의 현재를 오롯이 느끼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