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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디펜던트 Oct 07. 2024

새해 죽어도 바꾸고 싶은
나의 습관 하나

스누트 과제 아카이브 - 2

내가 여섯 살 적, 우리 엄마는 내 손을 잡고 종종 옆집에 갔다. 자식에게 토끼 인형 하나 사주기엔 구멍 난 양말도 바꾸지 못할 만큼 힘겨웠던 그녀의 최선이었다. 옆집엔 부엌 놀이 세트도 있었고, 토끼 인형 집도 있었다. 나와 한 살 터울 옆집 언니는 “우리 엄마는 내가 원하는 과자는 다 사준다”며 자랑하곤 했다. 얄미운 공주병 언니와 달리 옆집 아줌마는 다정했다.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슬기는 어쩜 이렇게 착하니”라고 말할 때마다, 옷에서 포근한 향이 났다. 그때마다 나는 ‘카드 캡터 체리’의 주인공처럼 헤- 하고 웃었다.


꼬마들의 천국과 다름없던 그 집에서, 나는 고작 구슬 하나가 탐났다. 남자 애들이 ‘구슬 따먹기’ 할 때나 쓰던 남색 구슬에는 노랑과 연두 무늬가 엉켜 오로라를 이뤘다. 옆집에서 놀다가 돌아온 날 밤이면, 구슬 행성들 위에서 미끄럼 타는 꿈을 꿨다. 


마침내 바지 주머니에 욕망을 넣은 날. 나는 어른 보폭으로 세 걸음인 우리 집 현관문을 열 때까지 땀에 젖은 손을 주머니에서 빼지 못했다. 내 방에 들어오고서야 축축한 손을 꺼냈다. 그리고 비로소 우주를 보았다. 찰나의 죄책감보다 짙으나 양심보다는 작은 우주. 하지만 어린이의 희열은 30분도 가지 않았다. 


똑 똑 똑. 

“옆집이에요.” 


엄마가 현관문을 열자 아줌마가 대뜸 말했다. 


“슬기가 우리 애 물건을 가져가서요.” 


한 치의 의문도 없는 확신. 아줌마의 눈동자는 내 얼굴을 스쳐 곧장 내 손을, 구슬을 가리켰다. 나는 배터리가 닳은 로봇처럼 말했다. “어, 어? 이게 왜 내 손에 있지?” 아줌마의 건조한 눈은 깜빡이지 않고 나를 내려봤다.

그러나 그렇게도 생생한 수치는 나를 조금도 성장시키지 못했다. 10대에도, 20대에도 도둑질은 계속됐으니까. 다른 이의 욕구, 꿈, 취향, 문장.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이들의 성공을 삶의 방향으로 정하며, 나는 조금의 가책도 느끼지 않았다. 나이 들며 얻은 것이라곤 부끄러움을 모르는 얼굴뿐이다. 


올해 30대가 됐다. 나는 드디어 도벽을 끝낼 수 있을까? 올해는 곧 죽어도 ‘네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는 신의 명령을 받들고 싶다. 꼴이야 어떻든 온전한 나를 갖고 싶다. 고작 구슬보다 작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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