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현경 Sep 06. 2020

3 혼자라서 더 난처한 여행의 순간

혼자 떠난 여행의 묘미랄까?


좌석 벨트가 풀어지지 않는다

혼자 떠나는 첫 해외여행지는 홍콩. 국내 여행은 혼자서 간 적이 종종 있지만 해외는 출장을 제외하면 없다. 그래서 혼자서 감당하기 버거운 상황이 생길 것 같았다. 불길한 예감은 늘 틀린 적이 없다지? 비행기가 홍콩 쳅락콕 공항에 착륙했을 때였다. 좌석 벨트를 풀어도 된다는 안내가 들렸다. 그런데 이게 웬걸? 표시된 방향대로 버클을 당겼는데 벨트가 풀어지지 않는다. 180도에 가까울 정도로 확 젖혔는데도 요지부동이다. 힘을 줬다, 뺐다, 쉬었다 다시 또 여러 번 반복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벨트를 풀지 말고 몸만 쏙 빠져나와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눈치 없이 큰 체구가 이마저도 허락하지 않았다. 승무원에게 도움 요청을 할까? 그러기엔 너무 보잘것없어서 민망하다. 게다가 지금은 승무원들도 바빠 보인다. 다시 해보자! ‘벨트를 처음 푸는 거다’라며 마치 처음인 것처럼 침착하게 다시 시도했다. 그런데 정말로 안 된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씩씩 대다 ‘이러다간 비행기에서 못 내리겠다’ 싶어서 승무원을 불렀다. “죄송해요. 벨트 버클이 안 풀어져요.” 그는 내 말을 듣고 ‘알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손을 버클로 향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벨트가 너무 쉽게 ‘촥’ 풀렸다. 순간 고마움과 민망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에고고, 별거 아닌 걸로 귀찮게 했네요. 고맙습니다.” 나도 똑같이 했는데 왜 내가 할 땐 안 됐던 걸까? 짐을 챙기고 비행기에서 내리며 그 승무원에게 또 한 번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민망함을 감추기 위해 더울 예의 바르게.



제3 국의 언어가 튀어나온다

초등학생 때부터 대학생 때까지 영어를 배웠지만 최근에는 일하면서 자료를 읽을 때 아주 가끔 쓴다. 반면, 스페인어는 얼마 전부터 열을 올려 공부하고 있는 언어다. 읽기 위주의 영어와 달리 말하기, 쓰기, 듣기 등 다양한 영역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영어는 공부한 기간은 길지만 활용도는 떨어지고, 스페인어는 공부한 기간은 짧지만 활용도는 높은 편. 그래서인지 영어보다 스페인어가 더 친숙하다. 영어로 쓰인 단어를 읽을 때, 나도 모르게 스페인어 발음으로 읽고 사물을 볼 때도 영어보다 스페인어가 먼저 떠오른다. (떠오르지 않을 땐, 인터넷으로 찾아서 보기까지 한다.) 이러한 습관은 홍콩에서도 여전했다. 홍콩은 중국어와 영어가 쓰이는데 중국어를 못하는 나는 영어로 소통해야 한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자꾸 스페인어가 나온다. ‘Yes’라고 대답해야 하는데 같은 뜻의 스페인어, ‘Sí’가 튀어나온다. 이 밖에도 ‘Please’는 ‘Por favor’로, ‘Thank you’는 ‘Gracias’라고 한다. 심지어 ‘얼마예요?’와 같은 간단한 문장을 말해야 할 때도 먼저 떠오르는 스페인어 문장을 무시하고 영어 문장을 끄집어내느라 대화가 한 템포 늦게 시작된다. 이대로 가다간 너무 답답할 것 같아 이동하는 중간중간 인터넷으로 여행 영어 회화를 검색해 쭉 훑어봤다. 여행하면서 속성 영어 공부를 하게 될 줄이야. 혼자 떠난 여행이라 모든 의사 표현을 내가 해야 하니 이런 일도 있구나.



철저한 준비와 짐을 분배하는 감각은 필수!

여행 오면 현지 느낌이 물씬 나는 물건들을 많이 산다. 이번 홍콩 여행도 마찬가지다. 밀크티와 에그 누들을 비롯한 먹을 것부터 컵과 책 등 홍콩의 개성을 담은 소품까지… 이왕 온 김에 후회 없이 쇼핑했더니 그 양이 상당했다. 항공사의 수하물 규정을 초과할 것 같다. 티켓팅할 때 비용을 청구하면 비싸니 미리 신청해둬야겠다는 생각에 해당 항공사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다. 그런데 정보가 좀 부실하다. ‘그래서 이 무게는 무료로 위탁해도 된다는 소리야?’ 답답해서 항공사 후기를 찾았는데 사람마다 그 무게가 제각각이었다. 직접 항공사에 물어봐야겠다. 

그때 내가 있던 곳은 센트럴 IFC몰과 연결된 7번 부두 근처. 운 좋게 공중전화기가 있어 전화를 걸었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중국어 안내뿐이었기 때문이다. 지금껏 살면서 자동 응답기를 사용해 본 경험을 비춰봤을 때 ‘상담원 연결’일 확률이 높은 '*'과 '#'을 번갈아 눌러봤지만 소용없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었지만 이 근처에서 일하다가 잠시 짬을 내서 나온 바쁜 회사원들 같아 차마 그럴 수도 없었다. 더 알아보는 걸 포기했다. 혼자서 알아보겠다고 발을 동동 구르고 걱정하다간 남은 여행을 망치긴 싫었다. 숙소에 들어가서 가방 2개에 짐을 적절하게 분배해 담기로 했다. 혼자라 캐리어의 한구석을 내어줄 사람이 없으니 이게 좀 아쉽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