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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라우드나인 Mar 06. 2024

발리의 음식

한식파도 살아남을 수 있는 발리의 식문화

여행을 계획하면서 또 하나 설레는 점은 현지 음식을 실컷,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다. 물론 한국에서도 충분히 다양한 국적의 음식을 쉽게 볼 수 있지만 현지인이 직접 만들고, 현지의 분위기 속에서 먹는 현지식과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항상 돌아다니지 않으면 답답함을 참을 수 없는 방랑벽 탓에)해외에서 거주하는 옵션에 대해 가끔 생각할 때면 나의 발목을 아주 강하게 잡는 것 중에 하나가 '한식'이다. 6개월 이상 해외에 거주했을 때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점이 한식을 못 먹는다는 것이었다. 원래도 양식을 좋아하지 않는데다가 밥, 반찬, 고기, 국 등의 한식을 고집하던 내게 여행지에서의 식사는 여행이 길어질수록 힘들어졌다. 


발리에서는 물론 아주 장기로 머문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다른 여행지와 정확한 비교는 불가하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리에서는 한식에 대한 갈증과 스트레스가 극심한 정도는 아니었다. 그 이유에는 몇 가지가 있다.




1) 배달의 민족: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배달의 민족이요" 라는 문구가 우스갯소리처럼 유행했던 것처럼 한국에서는 배달이 일상화되어 있다. 일상화라는 단어도 부족하고 그냥 일상이다. 나만 해도 가끔 일부러 시간을 내서 동네 시장을 가거나 구경하는 재미와 데이트를 위해 이케아, 코스트코 같은 대형마트를 갈 때가 아니면 90% 이상의 장을 배달로 이용한다. 쿠팡, 마켓컬리, 오아시스, 올웨이즈 등 배달 전용 온라인 플랫폼도 너무나 잘 되어있고 배달의 민족, 요기요, 쿠팡이츠 등의 음식점 및 카페 배달도 가능하니 내가 원한다면 집 밖을 벗어나지 않아도 된다. 보통 배달에 걸리는 기간도 한국은 짧지만 더 빨리 받고 싶으면 익스프레스 등의 추가적인 방법도 많다. 이런 배달로 점철된 삶에 길들여진 이후로는 여행지에서 더 자주 답답함을 느끼게 된 것 같다. 요즘에야 조금씩 배달이 가능하긴 하지만 한국처럼 보편적으로 모든 사람이 쓰지 않을 뿐더러 배달에 소요되는 시간을 참아내는 인내심도 한국인보다 훨씬 뛰어나다. 그래서 항상 국외 여행을 가면 배달은 거의 생각도 안 하며, 숙소 근처에 마트가 있는지 구글맵에 깃발 표시를 꽃아둔다. 


그런데 발리는 체감상 인구의 50%가 배달업에 종사하는 게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로 배달업이 발달했다. 우리 나라처럼 대부분의 음식점과 카페에서 배달을 제공한다. 코로나 이후에 한국에서는 배달료 인상 등으로 인한 문제들이 뉴스에 많이 나오고 있는데, 발리에서는 배달료도 상당히 저렴한 편이다. 우리도 햇볕이 너무 뜨겁거나 지쳐서 더 이상 걷고 싶지 않을 때 배달을 여러 번 이용했다. 비가 오면 배달이 취소되거나 지연될 때도 있었지만 그건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니, 그런 소소한 불편함만 빼면 발리에서는 배달이 매우 편하다. 외국 여행을 하면서 가장 많이 배달을 이용한 국가가 발리여서 그런지, 이들도 "배달의 민족"에 한국인과 함께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2) 면과 밥의 조화: 장기간 여행을 하면서 한식에 대한 갈증이 그나마 적었던 나라들을 떠올려 보면 주식에 밥이 포함되는지가 중요한 기준이었다. 그래서 일본과 중국, 말레이시아, 태국, 대만 등의 동남아 국가들과 발리에서는 식사 관련 문제가 크지 않았다. 물론 완전 한식처럼 흰 쌀밥에 여러 가지 반찬과 국을 함께 먹는 형태는 아니지만 그래도 밥과 쌀, 그리고 이질감이 들지 않는 적당한 소스와 향신료가 있으니 어느 정도는 한식에 대한 욕구가 해소되었다. 특히 면 굵기나 식감에 따라 종류도 다양하고 밥도 찰기가 없는 것 말고는 볶음밥 형태로 먹거나 사이드로 제공되는 경우도 있어서 좋았다. 


3) 신선한 과일과 야채: 나에게 과일(과 야채)은 정말 정말 중요하다. 평소에 밥 먹는 양 이상으로 과일을 많이 먹는 나로서는 제철과일, 다양한 과일을 양껏 섭취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유럽에 거주할 때도 식사류는 너무 비싸서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지만 그 와중에도 과일은 저렴하게 다양하게 먹을 수 있다는 점이 위안이 되어주었다. 과일은 바라만 봐도 좋다. 그 싱그럽고 제각각 윤기가 흐르며, 다양한 색을 발산하며 가득 쌓여 진열되어 있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충만해지는 기분이 든다. 특히 새콤하고 아삭한 과일보다는 물이 많고 달달해 미칠 것 같은 그런 과일들을 사랑하는 나는 과일을 거의 옷 쇼핑하듯이 둘러보며 행복해 하는 편이다. 발리도 날씨가 좋아 망고, 파타야, 수박, 파인애플 등의 열대과일 등이 종류별로 다양하게 있었고 특히 한국에서 비싸게 팔리는 과일들을 맘 놓고 먹을 수 있어 즐거웠다.  


4) 한식의 비교적 저렴한 가격: 다양한 이유들 덕분에 발리에서는 나의 한식에 대한 욕구가 그리 크지 않았지만 가끔 먹는 한식은 나에게 주는 보상 같은 느낌이다. 이미 여행 중이면서 뭘 또 보상이 필요하다고 느끼는지는 모르겠지만.. 발리에 한달살기 또는 워케이션 붐이 일면서 한국 여행객들이 많아지고 최근 몇년간 정말 케이팝의 위상이 전세계에 전파(?)되면서, 발리에도 한식당이 많다. 런던, 파리에는 한식당이 있어도 고급 레스토랑 느낌이거나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기본 단가 자체가 높아서 일상적으로 먹기가 힘들다. 그런데 발리의 한식당은 (물론 발리의 정말 현지 길거리 식당보다는 비싸지만) 물가를 고려했을 때 그렇게 높은 가격대가 아니라서 정말 맘놓고 먹고 싶은 메뉴를 다 먹을 수 있었다. 오히려 스무디볼이나 브런치 가게의 메뉴들이 더 비쌌던 것으로 기억한다. 발리에서 하루종일 몸 이리 틀고 저리 틀며 일하고, 남편과 저녁으로 먹었던 삼겹살은 한국에서 먹는 외식과 비교해도 엄지 척이었다. 게다가 발리면서 왜 한국 인심까지 벤치마킹한 건지.. 함께 나오는 김치찌개, 각종 찬들과 쌈 등은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했다. 역시 고기는 불판에 바로 구워서 쌈장 맛으로 먹어야 제맛이라는 걸 여실히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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