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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쥬디 Jan 15. 2022

아기가 탄 차에 사고가 났다

운전면허 시험에서 매너는 안 보나요

순식간이었다. 1차선에 있던 차가 깜빡이도 안 킨 채 2차선에 들어섰고 피할 곳이 없었던 우리 차는 왼쪽 문부터 뒷바퀴까지 주욱 긁히고 말았다.


왼쪽 뒷자리에 앉은 나는 반사적으로 아기가 앉은 카시트를 끌어안았다.


7개월 아기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앉아있었고 놀란 내가 눈물을 글썽이며 쳐다보자 고개를 갸우뚱했다. 두 눈으로 보기엔 외상이 없는 듯했지만 나는 불안한 마음에 아기의 이곳저곳을 바쁘게 살폈다.



길 위에 대환장 파티


상대방 차량은 소형 SUV, 우리 차량은 중형 세단이다. SUV는 오른쪽 앞 범퍼에 흠집이 난 반면 우리 차는 왼쪽 앞뒤 문, 트렁크 옆면에 굴절과 흠집이 생겼고 뒷바퀴에 스크레치가 났다.

18  무사고 운전병 출신인 남편은 처음 경험하는 고에 얼떨떨한 표정으로 아기와 나를 살폈고 사고를  차주가 내리길 기다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사람은 내리질 않았고 남편이 먼저 차에서 내려 상대방 차량 창문을 두드렸다.


저기요, 차 사고가 났는데 안 내리세요?

아 지금 내리고 있잖아요!


퉁명스러운 말을 쏘아붙인 어린 여자와 옆 자리에 앉은 여자는 느릿느릿 차에서 내려 보험사에 전화를 걸었다.


상대방 차와 우리 차의 보험사 직원이 도착했고 나는 아기를 카시트에서 꺼내 무릎에 앉혔다. 몸을 휙 돌려 카시트를 안은 터라 허리와 어깨가 바짝 긴장한 것이 느껴졌다. 카시트를 얼마나 꽉 잡았는지 양손도 얼얼했다.


아기는 자동차 안이 답답한 듯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어디가 안 좋아서 그런가? 많이 놀랐나? 하는 찰나에 구수한 냄새가 차 안에 진동했다.


쥬쥬야 이 상황에 똥은 아니잖아... 아기는 대변을 지린 듯했고 나는 부랴부랴 기저귀를 갈며 눈물을 떨궜다.


주말 오후에 이게 무슨 일이야!


부모는 약자, 인과응보 사필귀정이야


우리 차 보험사 직원은 아기가 너무 어려서 차 안을 살펴보기가 부담스럽다고 했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을 우려한 조치다.


남편은 블랙박스 영상을 보험사에 보내기로 했고 자동차 센터에 전화를 걸어 차 수리를 문의했다. 그리고 자리를 이동하려는 순간.

근데 너무 이상하지 않아?

뭐가? 우는 애 달래느라 진 빠졌어. 얼른 가자.

아니, 차 사고는 저 쪽에서 냈는데 왜 사과를 안 해?


상대편 운전자는 보험사 직원이 차를 살피는 사이에 차 안에 들어가 다시 나오지 않았다. 옆자리에 앉아있던 여자가 보험사 직원의 질문을 대신 답 했고 그 역시 우리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차를 산지 일 년도 안 된 우리는 속상한 마음이 컸지만 잘못을 따지다가 아기가 탄 차에 해코지를 할까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다음날 나는 온몸이 쑤시듯 아팠고 주먹을 쥐는 게 고통스러울 만큼 손이 욱신 거렸다. 아기는 밤에 울기를 반복하고 새벽에 소리 지르며 깨는 일이 많아졌다. 50일부터 통잠 자던 아기에게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상대편 보험사가 제시한 과실 비율은 100:0. 대인, 즉 우리가 병원을 가지 않고 차를 수리하는데 합의하는 조건이다.


남편은 아내가 아프고 아기가 많이 놀라 병원 진료를 받겠다고 말했고 보험사는 90:10을 제안했다. 처음엔 과실을 전부 인정하더니 대인을 하니까 90%만 인정하는 건 무슨 경우인가.


남편은 사고를 낸 어린 여자도 똑같은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고 입에 담지 못할 말을 내뱉었다.


여보, 우리 이제 어른이니까 그런 험한 말은 하지말자.

근데 그 차에 아기가 탔을 때 누가 빵빵 크락션을 세게  울려서 모두가 크게 놀랐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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