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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쥬디 Jan 18. 2022

770만 원 산후조리원의 악몽

내돈내산 개고생

출산 후에 경험한 일 중에 최악을 꼽으라면 단연 산후조리원에서 보낸 며칠이다.


강남 한복판에 자리한 조리원은 단독 건물로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해 산모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경락과 가슴 마사지도 유명했다. 진짜 몸조리가 필요했던 나는  마음을 먹고 비싼 조리원을 덜컥 예약했다.


조리원의 2주 비용은 500만 원. 여기에 마사지, 테라피 등을 추가해 총 770만 원을 결제했다.


그래, 아기랑 집에 가면 좀비가 된다는 데 2주간 호사를 누려보자!




산모들의 천국, 불편한 방


미숙아 쥬쥬를 안고 조리원에 도착했을 당시 난 몸과 마음이 많이 지친 상태였다. 막달까지 일을 하느라 몸을 돌보지 못했고 아기를 조산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조리원에서 관리받으면 기분이 좋아질 거란 기대와 달리 우리가 머문 방은 최악이었다.


첫날 에어컨이 고장 났다. 듣기 싫은 기계 소음에 찬바람이 나오다 말다를 반복했고 결국 수리를 요청했다. 그날 오후에 에이콘 기사님 두 분이 방문했고 사다리를 딛고 천장 에어컨을 수리했다. 젖몸살에 시달린 나는 먼지 구덩이 속 침대에 누워있어야 했다.


저녁에는 인터넷이 먹통 됐다. 출산휴가 중에도 일을 하고 있던 남편은 데스크에 인터넷을 확인해줄 것을 요청했고 다음날 또 다른 기사님이 방에 찾아와 침대 옆 전선과 텔레비전, 모뎀을 수리했다.


그런데 다음날 내선전화가 고장 났다. 모자동실이나 모유수유 호출은 내선전화로 받아야 하는데 큰일이다. 조리원은 통신사 기사님이 방문할 것이라고 말했고 결국 유리멘탈 산모는 짜증과 울음이 터져버렸다.


코로나 때문에 외부인이 방에 오는 거 너무 걱정되는데, 자꾸 고칠게 생기는 방에 있어야 해?

 

결국 우리는 방을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다음날 출근을 해야 하는 남편이 집에 가고 나와 아기만 남은 날이다.


하지만 그 방에선 텔레비전이 안 나왔다. 아 모르겠다. 텔레비전을 안 보면 그만이지. 나는 한숨을 쉬고 방에 머물렀다.


환경 탓일까 호르몬 탓일까


문제는 그 다음날이다. 아침에 모유수유를 하러 온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사이에 눈앞에 시커먼 무언가 빠르게 지나갔다. 에이, 잘 못 봤겠지. 설마 벌레일까.

엄지 손가락 만한 바퀴벌레는 식탁의자 사이를 빠르게 지나가 침대 밑으로 들어갔다. 나는 우는 아이를 번쩍 안고 문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며 엉엉 울었다.


나 조리원에 더 이상 못 있겠어. 나갈래!!!


팅팅 부은 산모가 조리원 원피스를 입고 낯선 기사님을 만나는 것도 모자라 바퀴벌레라니. 조리원 원장님은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왜 산모님에게 이런 일이 생기냐고 위로 같은 변명을 했다.


쥬쥬 외할머니는 아기가 아직 3kg도 안 됐으니 더 머무는 게 어떠냐고 설득했고 남편은 당장 데리러 갈 테니 울지 말라고 다독였다.


산모는 임신기간에 생식선 자극 호르몬, 프로게스테론, 에스트로겐, 릴렉신 등 각종 호르몬 분비가 늘어나 호르몬의 노예가 된다. 갑자기 짜증이 나다가 우울감에 빠지는 등 감정 선이 널뛰기도 한다.


혼란 속에 울다가 지친 나는 결국 남은기간의 돈을 환불받고 5일 만에 조리원을 나왔다.


마음 편한 게 최고야


나는 몸조리에 실패한 채 아기를 집에 데려왔고 몇 날 며칠 밤을 새우며 육아 신고식을 톡톡히 치렀다. 하지만 조리원을 빨리 나온 걸 후회하지 않는다.


나와 내 아기가 머물 곳은 나에게 가장 안전한 집이고 내 가족의 옆이기 때문이다. 출산 후 조리원 결정을 고민하는 지인들에게 꼭 하는 말이 있다.


비싸다고 다 좋은 게 아니더라. 몸 보다 마음이 편한 게 최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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