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감성 육아

타란툴라를 본 적이 있나요?

아이와 함께 산다는 건

by 임은


집 앞에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아대며 딱. 딱. 딱. 소리를 내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가끔 공기 좋은 산골에서 캠핑을 할 때 딱딱구리가 나무를 쪼아대는 자연의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공기 좋은 산골도 아닌. 아파트 단지 안의 딱따구리가 있을 수 있나 싶었다. 하지만 아이의 상세한 설명에 수긍을 할 뿐이었다.



산책을 나간 공원 풀 속에서 아이는 이번엔. 다람쥐 같은 줄무늬에 날개가 달린 작은 새가 둥지를 틀고 아기새와 함께 있다고 했다. 혹시 메추라기가 맞냐고 물으니 맞다고 했다. 반찬으로 간장과 조려진 메추리가 생각이 났다. 메추리는 보통 먹는 것으로 만나기에 새의 생김새를 본다는 건 자주 있는 일이 아니지 않나. 제법 상세한 설명이지만 이번엔 내 눈으로 직접 목격을 하고 싶었다. 그런 반찬으로 나오는 그것의 메추리가 정말 동네 공원에 있을 수 있나 싶어 검색을 해보니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간혹 볼 수도 있다고 했다. 아이와 함께 혹시 모습이 보일지 몰라 두리번거렸지만 이번에도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아이가 말한 것들은 한 번도 눈으로 본 적이 없었다.



작년 숲유치원을 다닐 때 산을 오르다가 거미 같은 생김새의 털이 달린 큰 곤충을 보았다고 했다. 그땐 타란툴라라는 정확한 이름까지 이야기를 해주었다. 정글의 법칙의 깊은 야생의 산 속에서 보았던 그 타란툴라를 말하는 것인가. 검색을 통해서 보니 애완용으로 집안에서 키우는 건 가능하지만 열대지방에서 서식하기에 우리나라 산속에는 살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했다. 아이의 아빠는 타란툴라는 우리나라에 살 수없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하지만 아이는 눈물을 글썽이며 자신은 그것을 보았다고 했다. 그럼 비슷한 것이지 않을까 물어도 자신이 본 것은 분명 타란툴라라고 했다.



그 외에도 아이는 세상에 정말 있을까 싶은 것을 ‘혼자서’ 보았다. 누구와 같이 보았으면 좋았을 텐데. ‘정말?’이라고 되묻고 싶은 것엔 꼭 혼자서만 본다. 아이도 답답하지만 우리도 답답하다. 그래도 늘 아이의 말이 맞다고 해준다. 타란툴라는 아빠가 없을 것이라고 단정 지어줬지만. 아이는 아직도 자신이 본 것이 타란툴라가 맞다고 이야기한다. 금요일 저녁에 다 같이 모여 ‘정글의 법칙’을 시청할 땐 자신의 본 것의 타란툴라가 등장하면 늘 자신도 유치원 뒷산에서 보았다는 이야기를 어김없이 한다.



이젠 무엇을 볼지 궁금해진다. 아마도 그다음은 외계인이 되지 않을까? 점점 아이만 보는 그 세상이 무섭다. 같이 보았으면 좋겠다. 정말 외계인을 볼 것이면 나도 아님, 누구와 꼭 같이 보았으면 좋겠다. 나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믿어줘야 할지 모르겠다. 아이가 크니 ‘믿는 척’의 대충의 수긍은 자신의 말을 다 믿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나도 최대한 정확한 리액션을 해보고 싶다. 아이와 함께 산다는 건, 아이와 연결된 모든 세계와 함께해야 해야 한다는 이야기 일 것이다. 나도 너의 세계에 초대받고 싶어.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넘어지는 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