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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례 Jan 11. 2024

우연 나뒹구는 소리

우연 아닌 필연 찬양기

“은우야. 있잖아. 우연은 우연이 아닌 것 같아. 어쩌다가 일어났다기엔 너무 강력하잖아. 절묘하잖아. 기가 막히잖아. 아무래도 우연이라는 건 없어.”


오랜만에 만난 은우에게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이었나 보다. 우연은 우연이 아니라고. 내가 그 시작과 끝을 모른다고 해서 그 모든 걸 몰랐던 일처럼 포장할 순 없다고.


실컷 떠들고 났는데 난 왜 또 눈물이 나냐. 국민 찔찔이도 아니고 똥폼도 아니고. 알딸딸한 김에 마땅한 근거나 뒷받침할 사례도 못 찾고 할 말도 잃었는데 은우가 맞장구를 쳤다. 나보다 더 열렬히. 필연에 대해.


필연이란 두 글자에 무수한 것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을 가만 느낀다. 내가 선택한 것들. 그래서 얻거나 잃은 것들. 지나간 인연들 등등 취기가 돌수록 또렷해졌다.


“너, 후회 있어?”

“아니 없어”


술잔을 마주치는데 잔을 쥔 손이 하도 옹골차서, 그 속은 뒤돌아볼 것도 없이 가뿐하고 후련해서 잔 부딪치는 소리까지 청아했다.


우연. 바닥에 떨어진 동전 같은 것. 주우면 나의 것, 지나가면 나의 풍경 중 일부일 뿐인 것. 그냥 딱 그 정도의 것. 매달릴 필요가 없는 것. 이유가 될 수 없는 것. 그래서 뒤죽박죽 엉킨 것을 해결하지 못할 때 기댈만한 것이 될 수 없는 것.


우연이라기엔 이미 너무 많은 선택을 해왔다. 각자 전력을 다하여 미워할 것을 미워하고 사랑할 것을 사랑하며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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