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유프로젝트 구토 후기
꿈에서 첫 현대무용 선생님을 만났다. 고2 때로 돌아간 게 아니라 40대 중반을 달려가는 그의 일상을 듣는 게 전부인 짧은 꿈. 미나유프로젝트 ‘구토’를 보다가 ‘아, 이런 공연을 보려고 선생님이 꿈에 나왔구나’라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죽음을 마주하는 일은 잦지만, 장례식에 부의금을 내는 행위가 익숙해지는 것일 뿐 내 삶의 많은 부분을 깨뜨려 놓는다.
때문에 나는 “죽고 싶다”는 말은 고통 속 외침으로 여기나 “죽는다” 또는 비슷한 뉘앙스의 이야기를 혐오한다(사실은 상처받거나 염려한다).
그 사이를 잘 비집어 보자면 이 공연을 보는 초반, 이것이 나의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는 저승길에 천사가 이 무대를 그대로 구현하며 그간의 노고를 위로해 주길 바랐다.
구토하는 일상의 모양을 더 잘게 쪼개어 보다가 삶이란 시간 속에 던져진 채 무언가 붙들거나 애처롭거나 발버둥 쳐야만 하는 각자의 삶이 구슬펐다. 하지만 어떤 시간 속에선 그런 일상의 속내가 무지 역겨웠다. 그럼에도 손쓸 수 없는 누군가의 삶을 같이 외치며 버텨주는 몇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한때는 신물나던 일이 그저 일이 아니라 내가 되어 끝까지 최선을 다할 수도 있다는 메시지엔 펑펑 눈물을 쏟고야 말았다.
이런 공연을 내가 보다니. ‘다시 술 마시면 사람새끼가 아니지’라는 혼잣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대충 헤아려보며, 강제적인 것 같은 일상은 어지러움이라는 부작용을 종종 일으킨다는 걸 되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