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칸 히어로로서의 가치, 그리고 그안에 아직 잔존해있는 어두운 이면
마블의 영화를 사랑해 마지않는 나로서는, 모든 마블의 영화는 언제나 잔뜩 기대하게 되는 것 같다. 이번 영화는 특히나 '흑인 히어로 단독 무비'라는 점에서 더욱 큰 기대를 가졌다. '와칸다'라는 미지의 나라가 어떻게 그려질지, 블랙 팬서(채드윅 보스만)와 이번 영화의 빌런으로 나오는 킬 몽거(마이클 B. 조던)는 어떤 히어로와 빌런의 모습을 보여줄지가 이 영화를 볼 때 가장 집중했던 부분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재밌다. 마블이니까. 하지만 재미의 이면에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영화이고, 거기서 조금은 아쉬움도 가지는 영화다.
ALL 흑인 히어로 무비로서의 가치
우선 내가 이 영화에서 가장 기대한 부분은 올 흑인 히어로 단독 무비라는 점이었다. 그동안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안에서는 흑인 캐릭터가 더러 있어왔다. 가장 대표적으로 닉 퓨리 국장이 있고, 아이언맨 시리즈의 워 머신,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의 팔콘이 있다. 그동안 여러 명의 흑인 캐릭터가 마블에 등장했음에도, 이들에 대한 아쉬움이 남은 이유는 아무래도 그들이 '메인 캐릭터'라기보다는, 메인 캐릭터의 '조력자'로 많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구도는 마블에서만 나타나는 건 아니다. 바로 옆 동네의 DC에서도 배트맨의 조력자로 폭스라는 흑인 캐릭터가 나오지 않는가.
이렇게 백인-메인, 흑인-조력의 전형적인 구도가 만연한 현재의 영화계에서 메인이 흑인 캐릭터로, 반대로 조력자가 백인 캐릭터로 나오는 것부터가 참신하고 좋았다. 특히나 다루고 있는 내용이 노예제, 인권운동이 아님에도 이러한 구도가 나타난 영화는, 사실 내가 접한 영화 중에서는 거의 처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는 나에게 꽤나 좋은 영화로 다가왔다.
물론 내용이 완전하게 노예제, 유색인종의 인권에 대해서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빼놓고 가지도 않는다. 영화의 중반부부터 킬 몽거의 대사를 빌어 표현되는, 여전히 잔존해있는 흑인에 대한 차별적 세태는 이 영화의, 그리고 앞으로 블랙 팬서의 행보에 방향을 정해주는 핵심 키 역할을 한다. '와칸다'라는 아프리카에 있지만, 동시에 아프리카와 동떨어져 있는 국가가 '자신'이 아닌, '우리'를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가 되어준다. 히어로 무비라는 장르의 측면에서, '흑인 인권'이라는 어렵기도, 무거울 수도 있는 주제를 꽤나 개연성 있게, 그러면서 히어로적 감성을 잃지 않으면서 잘 설명하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굉장히 자연스럽게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끔 만든다. 이러한 부드러운 전개는, 아무래도 감독 본인이 흑인이기 때문에 가능한 게 아니었나 싶다.
와칸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이미지
영화를 보며 또 한 번 감탄한 부분은 단연 와칸다의 모습이었다. 아프리카 특유의 민속적 특징을 잃지 않으면서, 비브라늄을 활용한 세계 최고의 기술 강국적 면모도 잘 보여준다. 부족 사회라던가, 부족에서의 '왕'을 세우는 방법 등은 우리가 그동안 상상해왔고, 알고 있었던 아프리카의 문화와 맥락을 같이 해서 조금은 친숙하게 느껴진다. 특히나 티찰라(채드윅 보스만)와 킬 몽거가 왕위를 위해 서로 겨루는 장면은 [라이온 킹]을 생각나게 하면서 더욱 반갑게 다가온다. 아무래도 아프리카라는 동일한 배경, 왕위를 두고 싸우는 스토리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게 아닐까 싶다. 물론 킬 몽거를 스카에 대입하기엔, 그는 미워하기 아쉬울 만큼 매력적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렇게 그려진 와칸다의 모습, 그중에서도 아프리카 특유의 문화라고 생각되는 몇몇 요소들이 어쩌면 너무 서구 중심에서 그려진 이미지가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들기도 한다. 흔히 서구에서 동양인을 수학을 잘하고 계산적인 이미지로 보는 것이 세계 전번적으로 통용되는 것처럼, 우리가 아프리카의 문화라고 생각하는 모습들도 어쩌면 서구에서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다.
특히나 이러한 우려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 아이러니하게도 위에서 언급한, 왕위를 두고 겨루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흑인'의 지식, 혹은 기술을 다루는 능력보다 신체적, 육체적 능력을 강조하는 인식이 투영된 장면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어떻게 보면 와칸다는 세계 최고의 기술 문명국인데, 왜 왕은 여전히 몸싸움으로 정해야 하는 것일까? 이것이 그들의 전통임을 보여주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흑인의 신체적 능력의 초점을 맞춘 서구 중심적 사고에 의한 것일까에 대해서 우리는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매력적인 빌런에 가려진 슬픈 주인공
블랙 팬서라는 단독 주인공의 스타트 영화여서 그런지, 그동안 MCU에서 몇 번 봤던 인물들도 있지만, 대다수의 인물이 이번에 처음이거나 고작 해봐야 두 번째로 보는 캐릭터였다. 그중에서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가 마구마구 등장해, 향후의 MCU가 기대될 정도였다.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온 캐릭터는 빌런인 '킬 몽거'이다. 빌런답게 더티 섹시함을 장착한 것부터 시선을 강탈하였고, 그냥 나쁜 사람!으로 규정짓기엔 그기 빌런인 이유가 너무 타당하다. 액션 신도 나무랄 대가 없다. 이미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한번 보여준 블랙 팬서와 다르게 킬 몽거의 액션신은 이번 영화에서 처음이었는데, 블랙 팬서에 전혀 뒤처지지 않는(가끔은 뛰어넘는) 액션 신을 보여준다. 그가 슈트를 입을 때의 그 카리스마라던가, 섹시함은 단언컨대 완벽하다.
오코예, 슈리 등 여성 캐릭터들의 활약도 돋보였다. 오코예(다나이 구리라)는 와칸다의 호위대장으로, 걸 크러쉬 매력을 자랑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본인과 반대의 편에 섰을 때, 자신의 신념을 위해 그를 단숨에 죽일 수 있다고 한 부분이나, 여러 액션신은 그녀의 걸 크러쉬 매력을 너무나도 잘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슈리(레티티아 라이트)도 매력이 차고 넘치는 캐릭터이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도 MCU 최고의 공돌이 중 하나인 아이언맨을 쉽게 대적하는 과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영화에서 이 부분이 굉장히 잘 드러난다. 세계 최고 기술국인 와칸다의 기술국장? 같은 위치에 있으니 말 다한 거지 싶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렇게 매력적인 캐릭터가 많아서 그런지, 실상 주인공인 티찰라의 매력이 썩 돋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선 그는 너무 바른생활 사나이이다. 그의 신념과, 그의 그런 올곧음과 정직함도 히어로로서 바람직한 모습이지만,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만들어주지는 못했다. 그리고 뭐랄까.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에서 보였던 그의 매력이 이번 영화에서는 많이 보여주지 못한 것 같다. 와칸다의 왕이자 블랙 팬서로서의 모습이 다른 인물들에 의해 조금은 가려진 느낌이랄까. 기술 최강국의 왕으로서의 면모는 사실 여동생 슈리가 뛰어난 과학자라 그런지, 슈리에게 조금 못 미치는 느낌이었고, 와칸다 최고의 전사인 블랙 팬서로서의 모습은 킬 몽거에게 주춤한 듯했다. 그래서 좀 아쉬움이 남는다.
재미는 보장한다. 마블이니까. 군더더기 없는 스토리 흐름이 영화를 만족하며 볼 수 있게 해준다. 올 흑인 히어로 무비, 즉 히어로도 빌런도 모두 흑인이라는 점은 당연 이 영화의 강점이다. 조력자로 백인이 나온다는 것도 굉장히 마음에 든다. 아프리카의 문화와 기술 최강국이라는 이미지를 잘 결합한 와칸다의 모습을 보여줘서 매우 흡족스러웠지만, 부분 부분 어쩌면 이것이 서구 중심의 사고에 의한 아프리카의 이미지가 아닐까 염려되기도 한다. 또한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많이 나와서 즐거웠는데, 제일 매력적인 캐릭터는 킬 몽거, 오코예와 슈리도 좋았다. 다만 메인 캐릭터인 블랙 팬서 티찰라가 이들의 매력에 조금 묻힌듯하여 아쉬운 점이 남는다.
전반적으로 생각할 거리도, 볼거리도 많아서 좋은 영화였다.
나의 별점 : 3.5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