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로 활용할 수 있는 칸반보드를 만들어보자.
최근 팀 내부에 '업무 병목현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새로운 일은 계속해서 생겨나는데, 이전부터 진행하고 있는 업무들이 종결되지 않은 상태로 유보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던 차에 'Making Work Visible: 업무시각화' 라는 책을 발견했다.
칸반보드의 대가 도미니카 드그란디스가 쓴 책으로, 1부에서는 '팀이 시간을 빼앗기는 이유', 즉 비효율성이 초래되는 이유를 크게 다섯 가지로 분류한 뒤 각 원인이 발생하는 이유를 언급한다. 2부에서는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에 초점을 맞춰 업무를 시각화하는 실제적인 방법론을 소개한다.
책 전반에 걸쳐 사용되는 '칸반(kanban, 看板)보드'는 업무의 흐름을 추적하기 위해 '업무를 단계별로 나눠놓는 방식'을 뜻한다. 화이트보드에 To do - In Progress - Done을 나눠놓기만 해도 기초적인 형태는 갖춰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칸반보드를 만드는 것과 활용하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다. '애자일 너무 좋아! 애자일 사랑해!'를 외치는 많은 스타트업들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칸반보드를 도입했다가 방치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칸반보드를 왜 도입해야 하는지, 이를 팀에서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도입했기 때문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문제가 무엇인지부터 정확히 진단해야 한다. 저자는 비효율성이 발생하는 이유를 '시간을 훔쳐가는 다섯 도둑'으로 표현한다. 이들 중 어떤 도둑(들)이 우리 팀에 숨어있는지 생각해보자.
1. 너무 많은 진행 중 업무(Work In Progress)
저자에 따르면, '탁월한 사람들은 어디에서나 긴 할 일 목록을 받는다.'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거절하기를 두려워하는데, 이로 인해 진행 중 업무가 너무 많아지면서 제시간에 업무를 완료할 수 없게 되고, 품질관리가 어려워지며 사기도 저하된다. 자연스레 사이클 타임(업무가 시작하고 끝나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늘어난다.
여기서 칸반보드의 기본 규칙이 나오는데, 바로 '당김 시스템(Pulling System)을 통해 진행 중인 업무를 제한하는 것'이다. In Progress단계에 들어갈 수 있는 업무량에 적절한 제한을 걸면 비효율성을 예방하고 사이클 타임을 줄일 수 있다. '진행 중 업무량'에는 제한이 있기 때문에, 이용자들은 업무를 To do에서 In Progress 단계로 옮길 때 '무겁게 당겨온다'는 느낌을 받아야 한다. 경영진들은 더더욱.
전체 업무의 양을 줄이라는 게 아니다. 해야 할 업무들은 그대로 To-do 란에 적어두면 된다. 진행 중인 업무를 줄여서, 방치되는 업무를 줄이고 사이클 타임을 단축시키는 게 칸반보드의 핵심이다.
2. 알려지지 않은 의존성
"연관되어 있는 팀들이 중요한 정보를 서로 알지 못하면 매우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
책에서는 세 가지 의존성을 소개한다.
1. 하드웨어, 소프트웨어의 구조 의존성: 한 영역이 변경됐을 때 다른 영역에 영향이 갈 수 있다.
2. 전문 지식 의존성: 어떤 일을 하려면 특정 지식/노하우가 있는 사람의 조언이나 도움이 필요하다.
3. 활동 의존성: 특정 활동이 완료될 때까지 다른 일을 할 수 없다.
상사가 바빠서 특정 안건을 승인받지 못할 때, 데이터베이스를 수정하는 결정이 다른 팀에 부정적 영향을 줄 때, 프로덕트의 상세기능이 변경됐는데 영업팀은 이를 알지 못할 때 등 다양한 경우에서 '알려지지 않은 의존성'으로 인한 비효율성이 발생한다.
칸반보드로 의존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팀별로 업무유형을 구분한 뒤, 업무 유형에 따라 업무카드의 색상을 구분하고, row를 팀별로 구분해 각 팀별로 업무현황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시각화한다. 만약 특정 업무가 다른 부서와의 의존성이 있는 경우 업무카드에 각 팀을 나타내는 스티커/꼬리표를 달아놓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3. 계획에 없던 업무
"계획에 없던 업무는 계획된 업무를 지연시키며 불확실성을 증가시키고 예측성을 감소시킨다"
계획에 없던 업무가 많아질수록 비효율성이 증대된다. 계획에 없던 업무들은 주로 '긴급하다' 거나, '일단 다른 건 제쳐두고 이것부터 쳐내야 한다'는 식으로 시작되는데, 이로 인해 기존에 진행하던 업무들이 방치되는 경우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또 A 업무에서 B 업무로의 '문맥 전환'이 일어날 때마다 집중력은 떨어지고, 생산성은 저하된다.
모든 걸 계획할 수는 없으나 계획하지 못한 일들을 최소화할 수는 있다. 저자는 "칸반보드를 작성하는 것만으로도 우리 팀이 '어떤 일을 진행하고 있으며', '작업 상태는 어떠하고', '누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려주기 때문에 계획하지 못한 일들이 생기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보다 적극적으로 계획에 없던 업무를 줄이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방법도 도입할 수 있다. "계획에 없던 업무"라는 유형을 새로 만들고 눈에 띄는 색상으로 지정한 뒤 데이터를 취합하고, 이후에 "우리 팀이 주로 예측하지 못하는 업무/문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원인을 잡아낼 수도 있다.
4. 우선순위의 상충
"해야 할 모든 업무가 1순위라면 그 어떤 업무도 1순위가 아니다. 미국의 법률 전문가인 로스 가버는 “많은 것이 중요하지만, 오직 하나만이 중요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오늘날 비즈니스에서 최고의 가치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대신, 다른 누군가가 무언가를 끝내도록 돕는 것일 수 있다. "
저자는 우선순위가 명확하지 않을 때 방치된 업무가 늘어나면서, 너무 많은 진행 중 업무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진행 중 업무(In Progress) 단계에는 우선순위가 명확히 부여된 업무만 당겨올 수 있다. 여기서도 당김 시스템이 강하게 작용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백로그와 진행 중 업무 사이에 '우선순위' 열을 만들어 둔 PDCA보드를 활용할 수도 있다.
위와 같은 PDCA보드에서는 To-do-list와 In Progress 단계 사이에 '우선순위' 열이 존재하기 때문에, 진행 중 업무 단계에는 우선순위가 확정 지어진 업무들만 당겨올 수 있다. 그렇다고 우선순위를 정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된다.
5. 방치된 업무
"항상 ‘바쁘다’는 점을 강조하는 최근의 기업 문화는 어리석다. 업무는 사람들이 ‘바쁠 때’ 방치된다. 그러나 바쁜 사람들은 가치를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높은 생산성을 보여주지 못한다. "
"좀비 프로젝트란 겨우 살아 있는 가치가 낮은 프로젝트를 말한다. 좀비 프로젝트는 먹잇감을 찾기 위해 어슬렁거리지만 그 누구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하며 돈, 자원, 사람을 갈망한다. 관심에 굶주린 프로젝트가 높은 가치를 가진 프로젝트의 에너지와 시간을 빨아먹는데도 사람들은 좀비 프로젝트를 고집하고 유지한다. 좀비 프로젝트는 발견 즉시 제거해야 인터럽트를 줄이고 중요한 업무를 더 빠르게 제공할 수 있다."
저자는 이외에도 칸반보드를 사용하는데 필수적인 몇 가지 규칙들을 소개한다. 처리하는데 아주 짧은 시간이 걸리는 업무를 반드시 칸반보드에 추가해야 하는지, 팀의 task에 따라 업무유형을 분류하는 회의는 어떤 식으로 진행해야 효율적인지 등 보다 세부적인 내용들이 책에 담겨 있다. 저작권 이슈도 있을뿐더러 한 권의 책에 담겨있는 모든 내용을 짧은 포스팅으로 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만약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칸반보드 도입에 관심이 있다면, 책을 구입해 읽어보길 보길 추천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