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미닉 Dec 05. 2017

연애상담일기 - 사랑해라는 말




그녀는 파리로 간다고 했다. 몽마르트르에 가야 한다고. 그곳에서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 있냐고 묻자 한 마디로 답했다.


"사랑의 벽. 그 벽을 보고 싶어요."


'사랑의 벽'은 사랑해란 말이 311개의 언어로 쓰여 있는 벽이라고 했다. 사랑해,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 너 사랑해라는 한국어도 적혀 있다고 그녀가 말했다. 벽에 적힌 사랑해라는 말을 전부 합치면 무려 천 개가 넘는다고 했다.


"그 벽을 보고 싶은 이유가 있어?"


그녀는 희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사랑이 넘치잖아요."  


사랑이 넘치잖아요, 라는 말을 남기고 그녀는 파리로 떠났다. '사랑의 벽'이라니... 창조적인 관광소재의 개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기심에 찾아보니 '사랑의 벽'은 창조적인 관광상품과는 결이 달랐다. 


'사랑의 벽'은 프레데릭 바롱이란 작곡가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그는 사랑노래를 작곡하는 뮤지션이었다. 그는 '사랑의 벽'을 채울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수집하며 상처받은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1992년부터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수집했고, 2001년 밸런타인데이날 '사랑해 벽'을 세상에 공개됐다. 


파리로 떠났던 그녀를 다시 만난 건 한 달 뒤였다.



"사랑의 벽은 봤니?"


"봤어요."


"실제로 보니까 어땠어?"


"앞에서 사진 찍는 사람들 때문에 정신없었죠."


"사랑만 넘치는 게 아니라 사람도 넘치는구나."


"그러게요. 뭐든 실제로 맞닥뜨리게 되면 생각했던 것보다 못한 것 같아요. 연애도 마찬가지고요."


"왜 남자친구하고 무슨 문제 있어?"


"문제가 많았죠."


"과거형이네. 지금은 아무 문제도 없는 거야?"


"정리했어요."


"헤어졌다고?"


"그 정도 인연이었나 봐요."


"왜 무슨 이유로?"


"저를 사랑하지 않으니까요."


"구체적으로 말해봐."


"어느 순간부터 사랑해라고 말해도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어요. 그 사람."


"네가 사랑해라고 말했는데 그 남자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고?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거야? 아무 말도?"


"알았다고 했어요. 사랑해라고 하면 알았다고..."


"알았다?"


"이상하죠? 사랑한다고 말하면 나도 사랑한다고 말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난대 없이 알았다니... 차라리 이젠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했으면 이렇게 힘들 일도 없었을 거예요."


"평소에 사랑해란 말을 자주 했었니?"


"자주 했죠.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네가 많이 했니? 그 사람이 많이 했니?"


"대부분 제가 했어요. 그 사람은 제 말에 응답하는 쪽이었고요."


"넌 그 말을 얼마나 자주 했어?"


"그걸 어떻게 알아요. 하고 싶을 때마다 했죠."


"그럼 남자 친구는 처음부터 그렇게 말했어? 아님 처음엔 사랑한다고 말했던 거야?"


"처음엔 사랑한다고 했어요. 자연스럽게... 사랑이 많이 느껴질 만큼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달라졌어요."


"그럼 알았다고 한 말... 혹시 많이 해서 잘 알고 있다는 뜻 아니었을까?"


"그건 말도 안 돼요!"


"남자 친구가 그전부터 많이 말해서 잘 알았다고 말하는 건 아닐까 해서 한 말이야."


"그럼 사랑해라는 말이 질리기라도 한다는 뜻이에요?"


"뭐든 질리게 마련이니까."


"그건 사랑하는 게 아니죠."


"사랑을 항상 표현하는 건 어떤 사람에겐 피곤한 일 이기도 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사랑한다는 말이 피곤하다니요?"


"매 순간 사랑을 확인하는 게 너에겐 너무도 자연스러울 수도 있지만 어떤 사람에겐 불필요한 일이라고 느낄 수 있다는 뜻이야."


"표현하지 않으면 모르는 거잖아요. 말하지 않으면 그걸 어떻게 알겠어요?"


"표현하는 게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사랑을 끊임없이 확인하는 게 누군가에겐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뜻이야."


"사랑한다는 말이 그렇게 부담스러울 수 있나요?"


"넌 그 사람이 많이 좋았니?"


"많이 좋았어요. 사랑했고요."


"그럼 그 사람이 사랑한다는 말을 안 할 때면, 너만큼 사랑하고 있지 않다고 느꼈니?"


"네. 그럴 때도 있었어요."


"그래서 더 확인받고 싶었겠구나."


"말을 하지 않으니까요."


"말로 다 표현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도 있잖아. 표정이나 말투, 행동에서 드러날 때도 있으니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가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잖아요." 


"너도 사랑한다는 말을 할 때마다 원하는 답변을 듣지 못하면 맘이 안 좋았지?"


"당연하죠."


"그 사람도 너처럼 맘이 안 좋았을 거야. 네가 어떤 답변을 원하는 줄 알았을 테니까."


"제가 잘못한 건가요?"


"아니. 아무도 잘못한 건 없어. 다만 사랑을 너무 확인하려 들진 않았으면 좋겠어. 사랑은 말보다 행동이 먼저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앞으로 더 좋은 사랑을 하기 위해선 내가 좋다고 여기는 것만을 강요해서는 안돼. 사랑은 이해와 배려를 동반하는 거니까."


"전 단지 사랑해란 말을 듣고 싶었던 거였어요." 


"네가 잘못한 게 아니야. 잘 몰랐던 거뿐이야. 원래 사랑은 사랑하면서 배우는 거니까. 괜찮아."


"상처도 남았는 걸요..."


"그래서 사랑의 벽이 있는 거잖아.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로해 주려고. 넌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니까 더 좋은 사랑을 하게 될 거야."


사랑하는 것이 인생이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매거진의 이전글 연애상담일기 - 연애하기 늦은 나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