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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아 Jan 12. 2024

너희는 절대 이혼하지 마라 3

당신이 생각하는 낭만적인 이혼은 없다 part 3 

"네, 경찰입니다. 무슨 일이시죠"


  인생 처음으로 112를 눌러보았다. 112라는 번호를 눌러 신고를 해본 사람들은 어느 정도 공감할 부분인데 그 번호를 누르고 신호가 갈 때, 어마어마한 긴장감이 몰려온다. '이런 문제로 전화해도 되나?' '받으면 뭐라고 말하지?' 등등 머릿속이 복잡해지기도 전에 전화가 연결이 되고 다급하게 상황을 설명하고 주소를 알려주었다. (당시에는 주소를 직접 알려줘야 했음)   신고를 하는 동안에도 당시 남편이었던 그 사람은 당당했다. 이 모든 결과의 원인은 나에게 있다며 패악질을 정당화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모든 것들이 가스라이팅이었는데 왜 그 사실을 몰랐을까 싶다. 

  경찰 두 분이 정말로 도착하니 그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나에게는 그러한 후회의 감정이 이미 무의미해진 시점이었다.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았던 감정도 잠시일 뿐, 신고가 들어와서 출동은 했지만, 그들의 대처는 마치 문제를 덮어두려는 듯했다. "원래 부부는 싸우고 사는 거예요 " "솔직히 이건 우리 경찰이 관여할 문제가 아니에요"라는 말과 함께 아이도 있는데 싸우지 말라는 말만 남겨두고 떠나가는 모습이 나에게는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 상황을 끝내고 무언가 해결책을 기대했던 나는 또 철저히 무너졌다. 내 기억이 맞다면 당시는 2008년 정도일 것이다. 가정폭력 신고가 들어간다 하더라도 경찰이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었을뿐더러, 이 상황은 물리적인 가해가 인간이 아닌 물건에게만 일어났으니 경찰도 이렇다 할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2015년에 들어와서야 경찰청에 여청과(여성청소년범죄수사과)가 신설된 이후에서야 조금씩 바뀌었을 뿐 그 당시에는 일반적인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들의 상황은 이해하겠지만 남겨진 아이와 나는 허탈했을 뿐이다. 


  그들이 떠나간 뒤,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가정폭력이라는 심각한 문제에 대해 그냥 간과당하는 느낌이었다. 아니면 "다들 이렇게 살고 있는데 내가 유난스럽게 구는 것일까? 단순한 부부싸움에 경찰까지 부른 내가 너무 오버액션을 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정말 내가 잘못된 거라고 생각했다. 아.. 이런 일에 경찰을 부르는 건 아니구나. 결국 이 문제는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스스로 해결하는 것 밖에 없는 것이구나......





  최근 유행하는 예능을 보면 '돌싱'이라는 키워드가 많이 나온다. 이혼을 하고 돌아온 싱글이라는 뜻으로 사용되며, 부정적인 느낌이 아니라 당당하고 더 멋진 삶을 살기 위해 극복을 하고 있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다양한 예능에서 보듯 돌싱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들은 혼자일 때 느낄 수 있는 고독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혼자라서 누릴 수 있는 자유를 함께 보여주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혼이 나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부분은 맞는 말이다. 이혼은 나쁜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상황에 처해있는 것뿐이다. 

 하지만 이혼을 선택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자유로움을 부각하기 때문에 뭔가 이혼이 낭만적이라고 느낄 때가 있는 것이다. 서로 언쟁하지 않는 어른답게 협의하는 깔끔한 헤어짐. 헤어짐 이후에도 친구로 남을 있는 쿨한 마음가짐. 모든 것은 미디어에서만 보일 뿐, 글의 부제처럼 당신이 생각하는 낭만적인 이혼은 없다. 물론 1% 정도의 성숙한 이들에게는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나와 그는 그다지 성숙한 사람이 아니었고 정말 진흙탕 싸움을 하고 이후에서나 서류를 마무리 지을 있었다. 그것도 10년이 지난 이후에! 

  


  왜 그렇게 바보 같은 선택을 했냐고 고구마 100개 먹은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겠지만 그땐 그저 참고 싶었다. 이미 볼장 다 봤고 밑바닥까지 떨어졌는데 앞으론 올라갈 일만 있을 거라고 희망회로를 돌렸던 것이다. 악착같이 잘 살아보려고 노력했고, 큰애한테 커다란 상처를 준 것이 미안해서 더더욱 가정이란 틀을 유지시켜주고 싶었다. 어린 나이에 아빠의 얼굴도 모르고 자라게 하기 싫다는 나의 바보 같은 생각은 결국 나라는 존재를 좀먹게 했지만 아이들에게는 그래도 나름 아빠와의 어린 시절을 조금이나마 만들어주었다. 




이혼. 그것을 희망하는 자에게는 낭만적인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 그렇게 로맨틱한 것은 없다. "재산분할로 많은 돈을 받아서 유유자적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을 거야." 이혼 후 삶이 이럴 것이라고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나는 13년간의 결혼 생활을 끝내고 이혼을 했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혼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몸소 느꼈다. 결혼보다 힘든 것이 이혼이라더니 그 말은 사실이었던 것이다. 별거기간부터 계산해 보면 이혼한 지 햇수로 벌써 8년인데 가끔 친구들이 재혼생각 없냐고 물어보면 나는 농담 반, 진담 반 이야기한다 


"이혼하는 거 힘들어서 결혼 안 할래" 


 내 삶의 대부분을 함께한 사람과의 이별은 정말로 아프고 힘든 일이다. 이혼을 낭만적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혼이라는 것은 내 인생의 다음 스텝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결혼 생활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아픔을 겪고 극복하였기에 이제는 다른 사람과 함께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사실 그런 삶은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대학원생이 연구과제를 찾듯 스스로 찾아 나서야 하고, 0.3%의 확률의 슈퍼 레어 아이템 같은 것이다. 나는 그 울트라 초 슈퍼 레어 아이템을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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