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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씨네 May 22. 2019

'김군' & '시민 노무현'

5월이 잔인한 5월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

 5월은 여러 가지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달입니다. 특히 5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많이 부르고 있지요. 하지만 5월을 생각할 때 잊지 말아야 할 사건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며 하나는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입니다.
묘하게도 이 두 사건의 발단이 되었던 인물들이 전직 대통령들이었고 권력과 음모로 인해 광주시민들이 희생되었고 모두가 사랑하고 존경하던 대통령 한 명을 잃기도 했지요.
조금 일찍 관람한 두 다큐를 통해 오늘은 5월의 두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영화 '김군'(Kim-Gun/2018)과 '시민 노무현'(Citizen Roh/2018)입니다.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암살... 즉 10. 26은 군사 반란의 시작으로 기록됩니다. 당시 보안사령관 전두환은 언론통제를 시작을 국민의 알 권리를 묵살해버리죠. 그것도 모자라 정치활동 금지, 휴교, 언론보도검열 강화 조치가 내려집니다. 김대중을 비롯한 정치인들의 자택 감금 및 구속 등이 이어졌고 대학생들의 시위도 늘어나게 됩니다. 강경진압만이 살길이라고 느꼈던 그들은 공수부대원들을 광주로 보내게 되고 학생 시민 닥치는 대로 폭력을 행사하며 그중 많은 이들이 부상을 당하거나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지금 그때 사진들을 보고 있던 상황에서 몇 장의 사진을 발견합니다. 이창성 전 중앙일보 사진기사의 사진들이었습니다. 힘들게 탈취한 군용 트럭 위에 한 사내가 얼굴을 찡그린 표정을 하고 있는 사진이었습니다. 당시 시민군에게 주먹밥을 배달하던 주옥 씨는 자세한 이름은 모르고 그를 '김군'이라고 기억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한편 보수단체의 지지를 받고 있는 군사평론가 지만원 씨는 이들 일부 시민군의 사진이 사실은 광주시민이 아닌 북한에서 급파된 일명 '광수'라고 결론짓게 됩니다. 사진 속 얼굴 윤곽이 북쪽 사람들과 일치한다는 주장을 내세운 것이죠. 수소문 끝에 사진들의 주인공이 나타나고 지만원 씨의 주장에 분노와 허탈감을 감추지 못합니다. 그 와중에 김군을 찾기 위한 여정은 지속되었고 뜻밖의 인물을 만나고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2008년 2월 25일 전직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청와대를 나섭니다. 그는 다른 전직 대통령들과 달리 서울이나 다른 근방에 거처를 마련하지 않고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합니다. 그가 향한 곳은 경남 김해의 봉하마을. 그렇게 전직 대통령 노무현은 시민이자 초보 농부로 돌아가게 됩니다.
짐을 풀고 휴식을 취하는 것도 잠시... 수많은 관광객들과 그를 지지했던 국민들이 이 곳을 찾아오게 됩니다. 단상도 없는 그냥 언덕배기에 오른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다가 노래를 불러달라는 짓궂은 요청에도 불평 없이 한 소절 노래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본격적인 국민과 전직 대통령과의 소통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그 사이 나라는 뒤숭숭해졌습니다. 새로운 대통령은 야심으로만 가득 차 있었고 사과를 하는 척, 소통을 하는 척하며 국민들의 소리를 외면합니다. 광우병 미국 소고기 수입 문제가 그 시발점이었지요. 그리고 서울 광화문 광장에 컨테이너 벽이 세워지기 시작합니다. 그 이름하여 '명박산성'이었습니다. 다시 국민들이 봉하마을에 찾아갔을 때 그는 국민들에게 하고픈 말은 많았지만 그가 단지 할 수 있는 말은 위로의 몇 마디가 전부였습니다.
음지의 토론 문화를 양지로 끌고 오고 싶었고 대통령 재임 시절의 자료들을 확인해 그것을 데이터화 하려는 계획을 세우기로 하지만 무단열람에 정치 복귀를 위한 하나의 쇼라며 정치인들과 언론들은 그를 비난하기 시작합니다. 거기에 그의 가족들이 조사를 받게 되었고 노무현 대통령 역시 말도 안 되는 음모에 휘말려 조사를 받으러 봉하마을을 떠나게 됩니다. 돌아온 그는 어떤 것도 할 수 없었고 결국 극단적인 결심을 하게 됩니다.





5월은 광주시민들과 전직 대통령을 잃은 가족들과 지인 등에게 잔인한 달이었습니다.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싸웠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심한 매질과 북에서 왔다는 오해와 편견들이었습니다. 전직 대통령 역시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자신과 가족의 걱정이 아닌 국민들에게 대한 걱정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사람들은 위선자라고 손가락질했습니다. 두 영화는 연관성이 없다고 봐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두 영화를 같이 이야기하는 이유는 두 사건으로 인해 민주화의 사망 선고가 현실화되었다는 점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영화 김군 유료시사 (2019. 5. 18) 무대인사

‘김군'은 5월 광주 민주화운동을 벌인 상황이란 점에서 '꽃잎', 택시운전사'와 일맥상통하고 있으며 5월의 아픈 기억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김태일 감독의 작품 '오월애'를 떠오르기도 합니다.



사진으로만 남아있던 상황에서 김군을 수소문하는 것이 이 다큐의 주된 내용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이 작품은 당시 광주를 지키던 수많은 이름 없는 김 군들에게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가족들과 지인들이 피해를 입을까봐 마스크를 써야 했던 사연과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 그리고 같은 뜻으로 만난 동지를 싸늘한 주검으로 마주할 때의 그 느낌은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묘하게도 그들이 찾고 싶어 하던 김군은 김 씨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청년이었던 그의 이름은 이강갑 씨로 고문과 말도 안 되는 진술들을 하고 겨우 지옥 같은 곳을 빠져나온 것으로 전해집니다. 여러 곳을 전전하던 그가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하고 있는 일은 과거 전남도청이 있던 자리인 국립아시아문화의 전당에서 경비일을 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과거에도 광주를 지키고 있었고 지금도 역사 속의 그 건물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아이러니하면서도 이건 그에게 운명 같은 일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심지어 1980년 5월 24일 광주 송암동에서는 계엄군끼리 오인 사격이 있었고 계엄군을 비롯 많은 민간인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중 사고로 매장한 유골이 나중에 사라지는 사건까지 벌어지게 됩니다. 최근 광주사건을 규명하는 증인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이 광주에 찾아왔지만 많은 이들의 야유 속에 등장했고 취재진의 질문에 적반하장으로 대답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이 영화의 감독인 강상우 감독은 1980년대 광주 출생이지만 광주 민주화운동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건을 배열하고 인터뷰하는데 있어 감성에 호소하지 않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전개하는게 인상적입니다.




영화 ‘시민 노무현’ VIP 시사 (2019. 5. 21) 무대인사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역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시민 노무현'에서 대부분을 차지하는 장면은 간이 단상에서 시민과 대화를 하는 모습인데 마치 아이돌의 팬클럽 모임을 연상시키는 모습이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게 틀린 것이 아닌 게 본격적으로 정치인을 지지하는 팬클럽을 활성화시킨 것이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었기 때문이죠. 이에 대한 이야기는 얼마 전 개봉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또 다른 다큐인 '노무현과 바보들'에 등장한 '노사모'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물론 그는 여기서 팬 관리를 하러 고향으로 돌아온 게 아닙니다. 하지만 그는 봉하마을로 내려와 오리를 이용한 친환경 농사 방식을 적극 활용해 알렸으며 환경정화를 비롯해 심지어는 무단으로 폐수를 버리던 공장을 적발하는 일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앞에 알려드린 대로 그는 집필활동과 토론 활동 등을 통해 국민들의 생각을 들어보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하였으나 그가 만든 토론 사이트인 '민주주의 2.0'은 논란으로 인해 몇 년 해보지도 못하고 문을 닫아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2009년 4월 로비 의혹으로 검찰에 출두하게 됩니다. 어쩌면 그것이 그를 힘들게 만들었던 가장 큰 요인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사건 이후 칩거에 들어간 노 전 대통령은 이 모든 것이 운명이라며  체념한듯한 유서를 남기고 정말 운명처럼 우리의 곁을 떠나게 됩니다.


이 작품을 만든 백재호 감독은 ‘그들이 죽었다’와 최근 ‘대관람차’ 등의 작품을 통해 독립 장편 영화계에서 주목받는 감독입니다. ‘무현, 두 도시 이야기’ 제작진과 함께한 첫 다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몇 년 후 다른 상황에 직면합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의 따위를 가볍게 여기며 비웃듯 정치인, 재벌 총수, 그리고 자신의 죄가 뭔지 모르는 범법자들의 심판들이 더디게 느껴진 것은 결코 기분 탓은 아닐 것입니다. 우린 다시 촛불을 들었고 노란 리본을 가슴에 매고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로했으며 책임지지 않는 정부를 비판했습니다. 전직 대통령 두 명이 줄줄이 구속되었고 한 명은 풀려났습니다.
물론 5.18 사건의 장본인이었던 두 대통령 역시 구속되었다가 사면되었고 한 명은 세상을 떠났으며 앞에 말씀드린 대로 한 명은 여전히 잘못을 뉘우치지 않으며 지금도 살고 있습니다.  

'김군'의 유골은 찾지 못했고 '시민 노무현'의 초선의원 당시 연설내용(1988년 7월 8일)은 지금 봐도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이루지 못한 것보다 이룬 게 더 많다는 것을 위안을 삼아봅니다.

우리가 5.18을 기억하고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역시 민주주의를 위한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우리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멉니다. 5월이 잔인한 달로 기억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과거는 잊지 말아야겠지요. 과거가 있기에 현재가 있고 다가올 미래를 준비할 수 있으니깐요. 묘하게 초선의원이 남기고 간 그 말을 대 뇌어 봅니다. 절망이지만 그곳에서 우리는 희망을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 때문입니다.






존경하는 의원 여러분 그리고 국무위원 여러분 부산 동구에서 처음으로 국회의원이 된 노무현입니다.
 
(중략)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더불어 사는 사람 모두가 먹는 것 입는 것 이런 걱정 좀 안 하고 더럽고 아니꼬운 꼬라지 좀 안 보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좀 신명 나게 이어지는 그런 세상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만일 이런 세상이 좀 지나친 욕심이라면 적어도 살기가 힘이 들어서 아니면 분하고 서러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그런 일은 좀 없는 세상 이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옛날에는 생활고로 일가족이 집단 자살하는 일이 많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런 일은 거의 없는 것 같은데 그런데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은 늘어만 갑니다.

제5공화국 이래 지금까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수는 얼마가 되는지 관계 장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5공화국 이래 지금까지 노동자가 기업주의 비인간적 대우에 항거하거나 기업 또는 공권력의 탄압에 항거해서 목숨을 끊은 사람은 모두 몇 명이나 됩니까?

정권의 도덕성을 규탄하거나 광주학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또는 민족의 자주와 통일을 부르짖으며 스스로의 목숨을 끊은 청년 학생들은 모두 몇 명이나 됩니까? 같은 기간 농촌에서 소값 피해를 보상하라고 주장하며 자살한 농민은 몇 명이나 됩니까?
산동네 달동네에서 철거에 항거하다가 무너지는 집더미에 깔려 죽거나 자살한 사람은 몇 명이나 됩니까? 경쟁에서 뒤떨어지거나 경쟁의 부담이 과중해서 자살한 학생의 수는 얼마나 됩니까?

(중략)
청년학생들이 죽어가는 것은 감옥에 가서 참회해야 될 사람들이 권력을 잡고 온갖 도둑질을 다해 먹으면서 바른 말하는 사람 데려다가 고문하고 죽이는 바람에 생긴 일이니까 그 사람들이 임명한 국무총리나 국무위원에게 무슨 대책이 있으리라고는 믿지를 않습니다.

(중략)
제가 바로 재벌 해체와 토지 분배 등을 경제정책으로 주장한 것은 임시정부의 정강정책으로 돌아가자는 뜻입니다. 그래서 민족 자립경제의 기반을 확고히 세우고 경제적 정의를 구현하자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한국의 절대빈곤층을 없애고 상대적 빈곤의 폭을 줄임으로써 앞으로 북한에 대한 개방에 대비하자는 뜻도 역시 있습니다.

(중략)
법무부 장관 ! 검찰은 증거가 없어서 수사를 할 필요가 없고 앞으로 국회가 고발을 해오면 수사를 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어느 정도의 증거가 나타나면 수사 개시의 단서가 될 수 있습니까? 전 국민이 보는 신문과 잡지가 혐의 사실을 연일 보도해도 수사의 단서로서 부족합니까? 검찰이 국회를 물 먹일 일이 있습니까? 검찰 말대로라면 국회가 검찰에 수사의 단서나 제공하는 검찰의 하위 수사 기관입니까?
국회가 수사기관에서 수사의 단서조차 안 되는 유언비어에 현혹되어서 조사특위까지 만들었으니 여야 국회의원들은 모두 정신병자들입니까? 장관의 견해를 분명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헌법상 대통령은 현행범이 아닌 한 재임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거꾸로 하면 전직 대통령이라도 수사와 소추의 대상이 되고 죄가 있으면 감옥에 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후 그는 몇 가지 주장을 하려고 했으나 시간제한으로 마이크는 끊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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