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마흔여섯. 나와 내 남편의 나이다. 2022년 가을에 결혼한 1년차 신혼부부다. 어찌하다 보니 남들보다 늦게 결혼했다.
‘늙은 신혼부부’인 우리는 해야 할 일이 많다. 집도 사야 하고, 자녀 계획도 세워야 했다. 특히 자녀 계획은 고민거리였다. 9살, 5살, 3살 조카가 세 명이나 있는 나는 ‘결혼 후 아이가 있으면 좋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아이가 있으면 비로소 ‘가족’으로 완성된 느낌이 들 것 같아서다.
남편과 자녀 계획을 세우다가 이런 얘기를 한 적 있다. 만약에 내가 결혼하고 이듬해인 마흔에 임신, 마흔 하나에 건강하게 아이를 낳는다고 치면 아이가 서른살 때 난 71세, 남편은 77세라고. 마흔이라는 나이에 임신도 쉽지 않지만 육아는 체력이 필요한데 평균 나이 40대 중반에 육박한 우리가 해낼 수 있을까? 아이에게 뭐라도 남기고 가려면 죽도록 일해야 하는데 가능할까 싶다.
주변에선 닥치면 다 하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난 태어날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 늙은 부모를 마주할 아이에게 말이다. 아이는 부모를 선택할 수 없다. 부모는 다르다. 아이를 낳기로 본인들이 선택했다. 아이를 책임지는 게 디폴트이며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뱉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내 어릴 때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기에 태어날 때부터 어느 정도 좋은 환경과 여유로운 삶을 주고 싶은 건 모든 부모의 바람일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우린 자가 없이 전세살이를 하고 있고 대출금도 한 달에 100만 원 가까이 나간다. 남편의 차도 연식이 오래돼서 바꿀 때가 됐다. 여기에 아이 키우는 비용까지 생각하면 앞이 깜깜하다. 여전히 비싼 집값에 지금 당장 먹고살기 힘든데 아이까지 낳아야 할까 싶은 거다.
좋아 미쳐서 한 결혼인데 결혼은 현실이었다. 모든 게 돈이고 돈 때문에 남편과 나는 서로 예민해지기도 했다. 결혼 전엔 당연히 아이를 낳아야지 생각했는데 대출금, 이자, 집값, 체력, 노후 등 현실을 직면하니 망설여졌다.
'늙은 신혼부부'이기에 자연임신도 쉽지 않아서 병원에선 하루빨리 시험관 시술을 하라고 권유했다. 만약 시험관 시술을 하게 되면 많은 비용을 내야 한다. 무엇보다 여자가 감당해야 할 부담이 크다. 배에 자가 주사를 넣고 약도 꼬박꼬박 먹어야 하는 등 왜 나만 힘든 시술을 받아야 하는지 의문이었고, 이런 힘듦을 감당할 만큼 내가 아이를 원하는지에 대해서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둘만 사는 삶도 생각해 봤다. 나쁘지 않을 듯했다. 고민하던 중 애 셋을 키우는 워킹맘 선배를 만났다. 결혼한 지 17년 차인 이 선배는 애 셋을 키우며 육아휴직을 한 번도 안 쓴 '철의 여인'이다. "결혼하지 말아라" "혼자 살아라" "애 키우는 정말 힘들다"고 외치던 선배의 입에선 연륜이 묻어난, 의외의 말이 나왔다(난 선배가 '너넨 늙었으니 그냥 둘만 살아'라고 할 줄 알았다).
"시험관 시술을 하고 싶어도 못 하는 나이를 먹을 수 있어. 아이 낳을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뭐라도 해보고 결정하는 게 어떨까?"
그러면서 선배는 "육아는 죽도록 힘들지만 아이가 생기면 비로소 '우리 가족'이라는 느낌이 든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선배는 "애 키우는 거 정말 힘들고 육아 문제로 남편과 많이 싸워. 많은 걸 포기해야 하고 자신을 갈아 넣는 일이야. 그래도 아이와 있는 시간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해"라고 말했다.
결혼 10년차이자 10살짜리 아들을 키우는 20년 지기 내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참고로 이 친구는 매일 가슴속에 이혼 서류를 품고 산다).
"너무 깊게, 멀리, 많이 생각하지 하지 마. 뭘 그렇게 생각해. 복잡하게 생각하면 오래 못 살아. 그냥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안 되면 내려놓고 살면 되지. 시도라도 해봤으니 그걸로 된 거야."
인생 선배이자 육아의 최전선에 선 사람들의 말은 꽤나 도움이 됐다. 흔들리던 마음은 조금씩 갈피를 잡기 시작했다. 일단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