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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Jun 14. 2023

‘사랑’이 사라진 시대의 사랑, <부지런한 사랑>

소소한 문학관 ②

픽사베이


<부지런한 사랑>은 이슬아 작가의 책이다. 2년 전 아무 생각 없이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웠을 때 읽었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대책 없이 회사를 관두고 머리를 식히고자 고향으로 내려갔고, 아빠는 그런 나를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이슬아 작가의 글이 좋다는 얘기는 예전부터 들었는데, 비로소 백수 때 접하게 됐다. 일단 제목이 끌렸다. ‘사랑’이 사라진 시대에, 작가가 말하는 ‘부지런한 사랑’이 뭘까 궁금했다.     


지금이야 이 작가가 꽤 유명해졌지만, 이전에 그는 수년간 글쓰기 교사로 일해오며 글을 통해 세상과 소통해 왔다. 처음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며 글쓰기를 가르치고 싶다는 전단지를 붙이는 것으로 시작한 '출장 글쓰기 교사 이슬아'는 KTX를 타고 내려가 여수 글방을 열었다. 어린 형제들을 위한 작은 글방, 망원동의 어른여자 글방, 청소년 글방 등에서도 글쓰기를 가르쳤다. 책에는 이슬아 글방에 온 제자들이 쓴 빛나는 문장들을 비롯해 이 문장을 통해 작가가 배운 글쓰기의 비밀도 담겨 있다. 글쓰기와 삶에 대한 영감과 사랑으로 가득한 에세이가 <부지런한 사랑>이다.     


나는 글에는 글 쓴 사람의 심성이 묻어난다고 믿는 편이다. 삶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어떤 가치관을 지녔는지,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어떤지 말이다.     


<부지런한 사랑>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이 작가를 '따뜻한 사람'이라고 단언했다.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는 태도, 아이들의 글쓰기를 존중하는 마음씨, 삶을 대하는 여유로운 자세 등이 이유다.     

 

이 책엔 기억하고 싶은 문장들이 참 많다. 어쩌면 이렇게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이건 노력으로 안 되는 일인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한 사람이 태어나고 자란 삶의 과정과 배움, 타고난 기질, 꾸준한 노력 등이 어우러져야 이런 필력이 나오지 않을까.     


열여덟 정혜원 양에게 쓴 편지는 두고두고 마음에 남는다.    

 

"너의 긍지와 치열함과 성숙함은 나를 그저 감탄하게 만들고 언니라고 부르면서 같이 일하고 싶어질 만큼 대단해 보일 때가 많아. 수년간 글방을 해오면서 너에게 다양한 종류로 감탄해 왔어. 정혜원은 그야말로 근명성실의 왕이니까. 나는 너를 오직 글방에서만 만나고 그건 네 삶의 아주 일부일 테지만, 글방에서만 보아도 네가 얼마나 밀도 높은 일상을 사는지 짐작할 수 있어. (중략) 스스로에게 훨씬 더 관대해지면 좋을 것 같아. 야무지고 부지런한 자신에 대해서 말이야. 사느라 수고가 많아. 혹시나 힘에 부치면 언제든 덜 열심히 살아도 된다는 걸 기억해 줘."

    

지금껏 살아오면서 나는 이런 류의 메시지를 어른에게서 받아본 적이 없다. 나 또한 후배들이나, 동생들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이 작가의 글엔 사람에 대한 존경과 배려, 깨끗하고 선한 심성이 스며들어 있다.      


아이들의 글 역시 명문장이다. "언니랑 동생이 옆에 있어도 그리운 마음이 든다."(열 살 최가희), "행복이란 네가 원하는 것을 하는 거야."(열 살 김지온), "우리는 함께 뒤섞여 놀다가 서로의 여름 냄새에 대해 다 알게 되었다."(열세 살 이형원)    

 

아이들의 글쓰기를 읽고 다듬어주는 과정을 통해 작가는 깨닫는다. 글쓰기는 사랑과 맞닿아 있음을. 결국 자기가 관심 있어하고, 하고 싶은 무언가를 글을 통해 보여주기에 '글쓰기'는 사랑이자 관심이다. 즉, 부지런한 사랑이었다. 누군가를 관찰하고, 또 사회 현상에 현미경을 들이대며 세세히 살펴보며, 사람을 넘어 삶을 들여다보는 과정이 글쓰기이리라.     


글을 10년 넘게 써온 나는 이 책을 읽고 적잖이 반성했다. 그동안 내가 쓴 글은 쓰레기였나?^^;; 글쓰기를 관두기도 했고, 글 잘 쓰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내 글은 '형편없다'고 판단했다. 이 작가는 더 이상 재능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꾸준함 없는 재능이 어떻게 힘을 잃는지, 재능 없는 꾸준함이 의외로 얼마나 막강한지 알게 돼서다. 그러면서 후천적인 노력에 더 집중한다. 재능은 선택할 수 없지만 후천적인 노력은 선택할 수 있기에.     


작가는 말한다. 써야 할 이야기와 쓸 수 있는 체력과 다시 쓸 수 있는 끈기에 희망을 느낀다고. 남에 대한 감탄과 나에 대한 절망은 끝없이 계속될 것이며, 이 반복 없이는 결코 나아지지 않는다고. 작가가 말하는 '부지런한 사랑'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무언가 계속하고, 나아가는 것. 변화의 폭이 좁을지라도 어찌 됐든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고 말이다. 내가 브런치를 통해 글쓰기를 시작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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