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uybrush Jul 13. 2021

프렌즈의 전환점

시트콤 <프렌즈> 출연자들이 모두 모인 토크쇼 <프렌즈 리유니언>을 보는데 흥미로운 얘기가 나왔다. 당시 <프렌즈>는 스튜디오에서 관객을 모아놓고 마치 연극처럼 '라이브' 촬영을 했다. <프렌즈>를 볼 때 나오는 웃음소리는 나중에 합성한 가짜 웃음이 아니라 현장에서 관객들이 터뜨리는 진짜 웃음이다. SNS가 없었던 시절이니까.


아무리 작가들이 매회 머리를 싸매 황당한 사건과 웃긴 농담을 가득 채워 넣지만 매번 빵빵 터질 수는 없는 일. 제작진은 라이브 촬영을 하는 현장에서 관객들의 반응을 보고 즉석에서 대사 등을 고치곤 했다.


그리고 시즌 4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프렌즈>는 대전환을 맞는다. 로스의 결혼식날, 모니카와 챈들러가 하룻밤을 보낸 것이다. 원래 제작진의 계획은 둘이 하룻밤의 미친 짓이었다며 그날 일을 털어내고 다시 친구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전혀 심각한 장면이 아니었다.


그런데 현장에서 관객의 반응은 달랐다. 프렌즈 제작진은 챈들러의 침대에서 모니카가 얼굴을 내미는 순간, 관객들의 미친 듯한 환호성과 호응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이 지금까지 보지 못했고, 프렌즈가 끝날 때까지를 포함해도 최고의 리액션이었다. 사람들은 잠깐 소리를 지르고 마는 게 아니라, 긴 시간 동안 어쩔 줄 몰라했다.


관객의 반응을 본 제작진은 직감했다. 모니카와 챈들러의 결합은 1회성이어서는 안 된다. 이 둘의 케미는 시리즈 전체를 뒤바꿀 관계의 재구성이었다. 제작진에게는 커다란 도전이었다. 이미 시즌 5 대본 작업도 상당히 진행되어 있었는데, 그걸 모두 갈아엎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객들은 이야기가 다른 방향으로 흘러야 한다고 소리 높여 외치고 있었다.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제작진과 배우지만, 흥행을 결정하는 것은 언제나 관객이다. 프렌즈 제작진은 써놓은 대본을 대대적으로 수정하는 작업에 돌입한다. 그렇게 <프렌즈>는 시즌 10까지 이어졌고, 시트콤의 클래식으로 영원히 남았다. 만약 <프렌즈>가 관객을 들이지 않고 촬영했다면 이야기는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고, 그렇다면 시트콤의 미래도 어쩌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프렌즈>가 그저 황당한 개그와 웃긴 오락 거리뿐 아니라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 드라마로 남을 수 있는 것은 챈들러와 모니카의 관계 덕분이다. 그리고 이 관계는 제작에 전혀 참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관객으로부터 나왔다. 물론 제작진이 관객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대본을 수정할 용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매거진의 이전글 서브 플롯과웹소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