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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jin Jeung Jul 26. 2023

수행과 일상을 아우르는 ‘차’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하루하루를 가리키는 ‘일상다반사’라는 말이 있다. 불교에서 유래된 이 말은 깨달음이란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것 같은 평범한 행동에 있다는 뜻이다. 오늘날에도 차 한잔은 사람들에게 하루의 시작이면서 사교의 장이기도 하며, 마음을 다스린다는 영적이고 종교적인 의미까지 아우르고 있다. 


차 문화는 불교와 연관돼 오랫동안 발전해 왔지만 막상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와는 무관하다. 고대 인도에서는 차 문화가 싹트지 않았고 오늘날 아삼, 다즐링 같은 인도 홍차는 식민지배 당시 영국인들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태어났다. 불교와 차의 연결고리는 본고장인 중국에서 찾을 수 있다.  


인류가 차를 마시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200~300년 전 중국 전한 시대로 추정된다. 중국 설화 속 신농씨가 물을 끓이다 우연히 날아든 이파리 한 장이 차의 시작이라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역사적으로는 진시황이 대륙을 통일한 후 중국 각지로 차가 전파됐다고 한다. 당시 차를 즐겼던 이들은 귀족 등 특권층에 국한됐으며, 서역에서 불교를 전파하러 온 승려들도 잠을 쫓기 위해 차를 마셨다고 전해진다.  


당시의 차는 농도가 매우 진해서 쓴맛이 강했고, 여러 가지 약초를 넣거나 곡물, 과일, 채소 등 다양한 재료를 섞었다. 이런 형태의 차는 후난성 일대의 뇌차 같은 형태로 오늘날까지 그 형태가 남아 있다. 


중국에 선종이 들어오면서 차는 불교와 본격적인 연관성을 갖게 됐다. 1500년 전 남천축(남인도) 출신의 달마는 송나라 말 북위 낙양에 터를 잡았다. 달마의 뜻을 계승한 선종은 원조인 인도와 동아시아 불교를 확실히 다른 줄기로 바꿔 놓았고, 중국 뿐 아니라 한국과 일본에까지 퍼지면서 정착됐다. 이후 당나라 대에 이르러 승려 육우가 ‘다경(茶經)’을 펴내면서 체계적인 다도가 집대성됐다. 


중국은 수질이 좋지 않아 물을 끓여 마셔야 했고, 이 때문에 차가 발달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실상은 다르다. 애초에 차문화는 차나무가 자라기 좋은 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발달했고, 이곳에는 깨끗한 물이 풍부했다. 식수가 부족한 북쪽 지방에서는 우유나 말젖을 선호했고 차가 보급된 것은 중국 대륙 통일 이후의 이야기다.  


사치품이었던 차는 농민에게 높은 부가가치를 가져다 주는 작물이었다. 푸젠, 광동성 등지에서 재배된 차는 당나라 시대 해운, 도로 발달에 힘입어 북쪽 지방으로 유입된다. 화려하고 사치스러웠던 당 제국 귀족들은 귀한 차를 기호품으로 즐겼고 남쪽의 차 농사는 더욱 발달해 대형 농장과 거상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한반도의 경우 삼국시대 후반, 당나라에서 소량의 차가 수입되다 통일신라 흥덕왕 때인 828년 당나라 사신이었던 대렴이라는 사람이 종자를 들여왔다. 경남 하동군 쌍계사 인근에는 차나무 시배지 유적이 남아 있다. 고려시대는 불교의 번성에 따라 차문화가 가장 화려하게 꽃핀 시기이다. 차밭은 사찰의 재원이었으며 다방과 다군사 같은 관청도 마련됐다. '차례'라는 단어도 조상을 기리는 자리에 차 한잔을 올린 데서 비롯됐다.  


불교를 억압하는 조선왕조가 들어서자 차 문화는 위축되기 시작했다. 영조 시대 이후에는 차례에 차 대신 술이나 숭늉을 올렸다고 한다. 다만 이조에 관청 다방(후일 사준원 승격)이 운영되며 차 마시는 자리를 마련하는 등 명맥은 이어졌다. 


오늘날 한국의 차문화가 마이너해진 것은 대다수의 백성들이 차를 즐기지 않은 영향이 크다. 차나무를 재배할 수 있는 지역은 한정돼 있었고, 수탈이 심한 진상품이었기에 기피 대상이었다. 더구나 한반도는 식수의 질이 좋아 비싼 차를 마시기보다 물이나 숭늉이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다만 차를 만드는 제다 기술은 국가무형문화재에 지정돼 전해지고 있다.


일본에서는 전국시대 승려 센노 리큐에서 유래한 엄격한 다도가 발달했다. 선종의 선사로부터 찻잎을 우려 마시는 전차도가 유행하는데 이는 저렴한 가격에 무소유 정신을 나눈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일본의 다도는 '일기일회', 즉 “당신과 만난 이 순간은 내 일생에서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을 중요한 순간이다”라는 정신을 바탕으로 한다. 


반면 본고장인 중국에서는 이런 엄격함 대신 일상생활 속에 차 문화가 녹아 있다. 중국을 여행하다 보면 기차나 호텔 같은 곳 반드시 뜨거운 물이 마련돼 있어 어디서든 차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종교적인 엄숙함과 경건함, 그리고 일상의 편안함과 자유로움이라는 상반된 이미지는 오늘날까지 ‘차’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지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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