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중반에 생각지 않게 음식 칼럼니스트 일을 하게 됐다. 그러고 이런저런 이력을 쌓다가 어쨌든 다시 음식 에세이를 공식 출간했다. 지금 내 포지션은 프리랜서 기자+음식 작가(공식적으로는 백수..ㅠㅠ)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음식 관련 글을 청탁받거나 마음먹고 써보려 했을 때 지금까지도 제일 어려운 주제가 바로 '엄마의 맛'이다. 뭔가 모두를 감동시킬 만한 치트키이기는 하지만 뻔한 전개를 피해갈 수 없고, 또 쓰다 보면 역시 희생하는 K-여인의 아름다움...이딴 결론으로 빠지는 일이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은 내 엄마의 음식 이야기를 조심스레 풀어보려 한다. 1940년생인 엄마의 친정집은 그 동네에서 꽤 유복했다고 한다.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외할아버지의 젊은시절 사진을 보면 말 그대로 일제강점기 하이칼라 지식인 느낌이 든다. 외할아버지도, 외할머니도 식도락에 꽤 일가견이 있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각설하고, 조부모님의 영향인지 외가에 가면 항상 맛있는 음식이 넘쳐났다. 그리고 축하할 만한 일이 있으면 꼭 나오는 음식이 신선한 생선회와 문어, 성게 등 해산물이었다. 과한 양념 대신 재료 그대로의 맛을 즐기는 것이 일종의 가풍...?이었던 셈이다. 엄마의 음식도 레시피 자체로만 보면 꽤나 간단했다.
한겨울이 오면 항상 우리집 식탁에 올랐던 메뉴가 바로 알이 꽉 찬 도치와 김치만으로 끓인 탕이었다. 그닥 복잡한 양념이란 건 없고 미원을 약간 넣는 정도다. 봄이면 산속에서 뜯어온 쑥과 찹쌀가루만 넣은 쑥버무리, 여름엔 싱싱한 전복 내장을 기름소금에 무친 것, 가을에는 귀한 송이버섯을 조금씩만...이런 느낌이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말 그대로 재료발!!..... 즉, 엄마는 기교를 부려 보잘것 없는 식재료를 맛있게 만드는 마법사가 아니었다. 돈주고도 쉽게 사먹기 힘든 귀한 식재료를 채집해 오는 수집가였던 것이다.......생각해 보니 엄마는 젊은 시절부터 분재, 수석, 그림 등 보통이 아닌 수집벽의 소유자였다.
엄마의 맛이라는 것은 결국 주관적인 개념이다. 누군가에게는 자투리 재료로 솜씨 있게 차려내는 한상이 엄마의 맛일 수 있고,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본인은 굶더라도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만드는 음식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기준에서의 엄마의 맛은 그 의미가 조금 다르다.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는 열정적 에너지, 낯설고 새로운 것을 항상 탐색하는 심미안이 엄마의 맛있는 식탁을 완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