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5월 29일자 농민신문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원문보기 링크: https://www.nongmin.com/article/20240529500713
[맛있는 이야기] 통통한 살에 수박향 가득 ‘은어’…예부터 ‘별미’ 꼽아
1급수 살며 7~8월 단맛 강해
회·구이로…솥밥위에 올리기도
조리할 때 내장 제거하지 않아
양식 가능 소비자 접근 쉬워져
상반기 화제작이었던 영화 ‘파묘’에는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아내는 장치가 여럿 등장한다. 특히 일본 귀신 ‘오니’가 찾는 ‘은어와 참외’의 의미를 궁금해하는 이가 많았는데, 실제로 임진왜란의 원흉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은어를 좋아했다고 한다.
영화 속 오니는 섬뜩한 얼굴로 날 은어를 씹어 먹지만, 사실 은어는 고급 요릿집에서 여름 한철만 나오는 ‘귀한 몸’이다. 민물생선이지만 회로 먹는 것도 가능하며, 꼬치에 꿰 소금으로 덮어 은근한 불에 구운 요리가 대표적이다. 다만 굽고, 튀기고, 밥을 짓는 등 은어를 활용한 레시피가 다양한 일본에 비해 우리나라에서 은어는 ‘아는 사람만 먹는’ 생선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우리 조상들에게도 은어는 여름 별미로 사랑받는 고급 어종이었다. 고려말 문인 목은 이색은 경상도 지방관으로 일하는 지인이 은어를 보내주자 “정성스러운 편지로 깊은 마음을 전하니 은어의 눈이 밝게 빛나는구나”라는 시를 지었다. 그런가 하면 영남지역에 살던 한 선비는 임종 직전 은어를 두고 “죽어서 더이상 못 먹는 것은 상관없지만, 상놈 입에 들어갈까 슬프다”는 말을 남겼다고도 한다. 양반의 고장 경북 안동에서 ‘안동 국시’ 육수를 낼 때 은어는 최고의 재료로 꼽혔다.
‘은 은(銀)’에 ‘물고기 어(漁)’를 쓰는 그 이름값답게 이 작은 민물고기는 깨끗한 1급수에서만 살 수 있으며 은은한 수박향이 난다. 조리할 때 내장을 제거하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은규 시인은 이런 은어의 특징에 착안해 ‘수박향, 은어’라는 시를 썼다.
은어는 7∼8월이면 살이 오르고 단맛이 강해진다. 은어 서식지로는 섬진강 유역이 가장 유명하며, 깨끗한 하천을 끼고 있는 경북 일부 지역과 강원 삼척·양양 등지도 있다. 요즘은 완전 양식이 가능해져 경북 봉화에서는 매년 봄 은어를 방류했다가 제철을 맞는 한여름에 축제를 개최한다. 또 여름철 화개장터를 방문하면 은어튀김과 은어밥 등 별미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양식 은어는 특유의 수박향이 약하다고 하지만 회로 먹을 경우 디스토마 우려가 적어 오히려 안전하다.
수도권에서도 은어 요리를 취급하는 전문점이 있다. 경기 성남 공군기지 인근에 위치한 ‘송이와 은어향기’는 봉화에서 올라온 송이버섯과 은어로 만든 색다른 메뉴들을 판매한다.
은어조림이 통째로 올라간 은어솥밥은 봉화군 수산물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한 이 식당의 대표작이다. 간간하면서 단맛이 나는 은어를 한입 베어 물면 통통한 살에 꽉 찬 알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귀한 은어조림과 우엉·고구마·은행·마씨(주아) 등이 어우러진 영양밥은 그야말로 감칠맛의 결정체같다. 은어솥밥 외에 칼칼한 매운탕과 칼국수, 생선 자체의 풍미가 살아 있는 조림과 소금구이·튀김도 맛볼 수 있다. 여러가지 은어 요리를 한번에 맛보고 싶다면 정식도 추천한다.
정세진 맛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