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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jin Jeung Jan 21. 2017

소설 '빙점' 속 먹방과 훗카이도 음식

농작물부터 유제품까지, 먹거리의 천국 훗카이도

한동안 일본어 공부 한다고 스카이프 채팅을 한 적이 있었다. 

어느날, 훗카이도에 산다는 남자분과 대화를 하게 됐는데 "훗카이도 유제품이 맛있다죠"라고 물었더니

"먹는건 뭐든 맛있어요"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설마 그정도까지...했는데 설마가 진짜였다.


실제로 훗카이도는 일본 내에서 식량 자급도가 200%가 넘는 유일한 지역이라고 한다. 

서늘한 기후 덕에 낙농업은 물론이고 바다에서 잡히는 온갖 한류성 어종들, 그리고 

감자나 호박, 옥수수 등 농작물들이 풍성한...말 그대로 음식에 있어서는 축복받은 고장이라 할 만하다.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에서도 노다메의 최면 덕에 비행기를 탈 수 있게 된 치아키가

온갖 선물들을(사실은 노다메가 최면 속에서 주문한) 사오는데 게, 성게, 훗카이도 특산 과자인

시로이 고이비토(드라마 속에선 '시로이 아이진(愛人)'이라고 말장난을) 등등 종류가 엄청나다.


쬐끔 옛날 일본 소설 중에 훗카이도의 먹거리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 있다.

바로 미우라 아야코 원작의 '빙점'이다. 일본문화 개방 전에도 드물게 인기작이어서

우리나라에서만 세 차례나 드라마화된 이 소설은 원죄와 구원이라는 기독교적 가치관을 다루고 있다.


줄거리는 다들 알다시피 딸의 죽음이 아내의 불륜 때문이라고 생각한 주인공 게이조가

딸을 죽인 살인범의 아기인 요코를 입양해 기르고, 뒤늦게 아내 나쓰에가 사실을 알면서

벌어지는 갈등이 주된 내용이다.  


작품의 배경이 먹거리로 유명한 훗카이도이다 보니 행간을 통해 스지구치 일가가

쳐묵쳐묵하는 장면이 심심찮게 나온다. 부유한 의사 집안이라 버터나 마요네즈 같은,

당시에는 귀했을 식재료들도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1940년대에 

마요네즈며 푸딩을 집에서 만들어 먹었다니 꽤 하이칼라 집안이었던 것 같다. 


초반부, 루리코가 죽은 지 얼마 안됐을 때 게이조의 친구인 산부인과 의사 다카기는 

조니 워커 위스키에 버터, 초콜릿 등을 잔뜩 가져오는데, 알고보니 그에게서 중절수술을

받은 양색시가 선물로 가져온 것이라고. 그날밤 두 사람은 직접 기른 옥수수에

버터를 발라 조니 워커를 기울인다. 그리고 게이조는 범인의 딸이 다카기가 촉탁으로 있는

고아원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성장하면서 점점 나쓰에의 냉대를 받는 요코. 어느날 두 사람은 단둘이 식사를 한다.

두툼한 스테이크에 마요네즈를 친 아스파라거스, 스튜와 식후의 사과...

고급 레스토랑에 가야 먹을 수 있었을 메뉴를 집에서 해먹는 걸 보니 스지구치 집안의

유복함과 당시 훗카이도의 풍족한 식량 사정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요코를 좋아하는 아들 도루의 친구 기다하라가 집에 머무는 마지막 날, 

일가는 게이조만 남겨두고 레스트하우스에서 외식을 하는데 그 메뉴가 바로 징기스칸이다.

징기스칸은 당시 양털을 깎을 목적으로 기르던 늙은 양을 처리하기 위해 

마늘, 양파 등 강한 양념으로 간을 해 야채와 함께 구워 먹던 데서 유래했다. 


일본인 친구 말로는 "고기가 엄청 신선하지 않으면 냄새 땜에 못먹는다"고 하는데

그건 나이든 양인 머튼 얘기고, 요즘은 대부분 냄새가 적은 램으로 만든다고.

하지만 중장년층 중에는 그래도 머튼으로 해야 제맛이 난다고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양념 맛은 짭짤달콤한 것이 불고기와 비슷하며 보통 숙주에 피망, 양파 등을 곁들여

가운데가 불룩 솟은 철판에 구워 먹는다. 상수동 '라무진'에서 딱 한번 먹어본 적이 

있는데 의외로 냄새가 적어서 양고기 하면 낯설어하는 사람들도 무난히 먹을 수 있을 정도다.


참고로 미우라 아야코가 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재미있다.

남편과 함께 식료품 상점을 했는데 장사가 너무 잘 되자 다른 가게들한테 미안해서,

영업시간을 줄이고 그 시간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 

어찌 보면 '가진 자의 여유'가 이 작품을 태어나게 한 셈이다. 

그 당시에 아직도 굶주림이 드물지 않았던 우리나라 입장에서 보면 왠지

화딱지나기도 하지만...어쨌든 훗카이도의 풍성한 식탁은 '빙점'을 읽는 재미를

한층 더해주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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