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브랜딩인가HR인가 Jul 03. 2024

조하리의 창을 제대로 다루는 방법

안다고 생각하는 착각 

조하리의 창(Johari’s Windows) 이라는 모델이 있다. 


어느 교육 담당자가, 본인이 준비하고 있는 워크숍에서 '조하리의 창'을 활용할 예정이라고 동료에게 말했다. 서로에 대한 편견으로 갈등 상황에 놓여있는 어느 팀에 교육 요청을 받아 며칠간 고민하다가 아이디어를 떠올린 모양이다. 


그 담당자 보다 더 경력 연차가 오래된 동료는


"아, 조하리의 창이요? 너무 클래식한 접근 아니예요? 근데 뭐...나쁘지 않은 선택이네요."


라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다. 그의 표정에는 조하리의 창을 교육에서 다루는 것이 무슨 변화를 일으킬 수 있겠느냐는 시큰둥 함도 엿보인다. 아니, 어쩌면 아예 조하리의 창을 교육에서 다루는 것에 대해 특별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조하리의 창이라는 건 그냥... '싸이가 제 다음 앨범은 댄스 음악입니다, 성시경이 제가 앞으로 낼 음악은 발라드예요' 라고 이야기 하는 것처럼 관계를 다루는 교육에서는 너무나 일반적인 아이템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분명 동료는 조하리의 창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 것이다. 자기인식이나 피드백을 다루는 책에도 자주 등장하는 모델이기도 하고, 그가 지금까지 만난 여러 강사님들의 장표에도 심심찮게 나타나는 단골손님이니까. 


그런데 정말, 그는 조하리의 창을 잘 알고 있을까? 


무언가를 잘 안다는 것은, 그것을 효과적으로 다루는 방법을 잘 이해하고 사용할 줄 안다는 의미다. 지식을 개념적으로 알고 있는 것을 넘어 그 지식이 실제 삶에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지, 각 상황에 맞게 그 지식이 어떻게 활용되어야 하는지를 분별할 줄 안다는 의미이다. 


그는 과연, 조하리의 창을 제대로 다루는 방법을 알고 있을까? 


조하리의 창을 제대로 다루려면 이 개념을 현실에 녹여 실천으로 연결해 보고자 하는 시도가 있었어야 한다. 왜 조직 안에서 우리는 그토록 나를 숨기게 되는지, 나를 드러내기 어렵게 만드는 내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과 노력이 필요한지, 개방적으로 나를 노출할 때 예상될 수 있는 우려와 두려움은 무엇이 있는지... 이런 것들을 충분히 고민하고 대화하며 작은 실천으로 연결해 보는 시도를 경험했어야 한다. 누군가 상황과 분위기에 동조하며 무엇이 옳은지도 모르는 채 집단의 압력에 이끌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 역할과 책임을 앞세워 모든 정보를 차단하며 점점 더 관리적이고 통제적이 되는 내부 프로세스에 대한 갑갑함, 서로의 단편적인 부분에 집중하여 상대방을 왜곡하고 팀 전체의 동기가 저하되어 결국 모두 침묵하게 되는 현상에 분노를 충분히 겪고 느껴보았다면 조하리의 창은 대수롭지 않은 모델이 아니라 곱씹을수록 새로운 시사점과 교훈을 제공해 주는 거울이 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조하리의 창을 통해 내 삶을 먼저 변화시켜보려는 충분한 고민과 노력을 했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을 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조하리의 창을 잘 다룰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조하리의 창뿐만 아니라 어떠한 이론과 모델, 도구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내가 처해있는 제약과 어려움을 그저 환경 탓으로 돌리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당장 나는 어떤 실천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그것을 삶으로 연결해 보는 시도'를 꾸준히 해왔던 이라면 그가 가지고 있는 지식은 그저 이론적 지식이 아닌 '실제적'이고 '실천적인 지식'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 타인의 지식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혹시,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아는 것으로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어쩌면 사실 그건 나의 착각이 아닐까. 




세네카는 이런 말을 했다. 


흰머리와 주름살이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오래 살았다고 볼 까닭이 없습니다. 그는 오래 산 게 아니라 존재했을 뿐이에요. 어떤 사람이 항구를 떠나자마자 사나운 폭풍에 발목이 잡히고 사방팔방에서 불어오는 거센 돌풍 탓에 똑같은 항로를 빙빙 돌기만 했다면 과연 그가 항해를 오래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는 항해를 오래 한 게 아니라 한참을 이리저리 밀려다녔을 뿐입니다. 


인생 뿐 아니라 지식과 정보도 마찬가지 아닐까? 


어정쩡한 상태에서 똑같은 항로만을 빙빙 돌고 있는 밀려다니는 지식과 길든 짧든 바다에 나가 항해를 하며 풍성하고 다양한 시각과 관점으로 채워진 지식.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여러 지식은 지금 어떤 항해를 하고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팀 이니셔티브 101(원온원) 대화 가이드 만들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