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손흥민의 인기는 어마어마하다. 손흥민이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을 차지해 골든 부츠를 수상하던 21~22년 시즌에 그 인기는 절정에 달했다. 현 시점에서는 ‘어마어마 했었다’라고 표현하는 게 타당하다. 지난 6월 11일 서울에서 열린 북중미월드컵 2차 예선에서 한국이 승리한 후 손흥민에 대한 중국 축구팬들의 감정은 ‘증오’로 바뀌었다.
장면 1.
2026 FIFA(국제축구연맹)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예선 한중전을 치르기 위해 한국 대표팀이 지난 11월 중국 션젼 공항에 도착하자 수백 명의 중국 축구 팬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맞이했다. 이들은 ‘순씽민(손흥민 한자 이름의 중국어 발음)’, ‘아시아의 일인자 맏형’을 연신 외쳤다.
장면 2.
한중전 1차전 경기 결과는 한국의 3:0 승리였다. 손흥민이 페널티킥 포함 2골을 넣으며 한국 승리를 이끌었다. 손흥민이 선제골을 넣은 뒤 중국 공격수 우레이와 대화하는 모습이 화제를 모았다. 손흥민은 골 세리머니로 손가락을 입에 댔다. 야유를 그치라는 메시지로 보이는 행동이었다. 그러자 우레이가 다가와 격앙된 말투로 뭔가 따졌고, 황희찬이 두 선수를 떼어놓자 이번엔 말리는 주심에게도 항의를 이어갔다. 손흥민이 중국팬들의 야유에 대해 대응한 것으로 보이는 제스처지만, 중국팬들인 손흥민이 홈 팬들을 도발했다고 받아들였다. 이 경기 후 중국에서 손흥민의 인기는 싸늘하게 식었다.
장면 3.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관영 CCTV를 비롯한 중국 주류 언론들은 한국의 성과를 폄하하기 바빴다. ‘2류팀들이 선전하는 한일 월드컵은 진정한 월드컵이 아니다. 북경에서 이탈리아, 포르투갈, 아르헨티나, 프랑스 불러서 진정한 4강 토너먼트를 치르자’, ‘한국, 일본의 선전으로 월드컵이 평가절하되었다. 한국은 졸부의 나라여서 우리가 배울 바가 없다’라는 극단적이고 비논리적인 주장이 난무했다. 중국팀이 한국팀과 경기를 한 것도 아니고 패한 것도 아닌데, 제 3자인 중국이 나서서 한국에게 패한 이탈리아, 포르투갈을 위해 흥분하는 모양새였다.
손흥민이 중국인들에게 인기 있던 이유는 다양하다. 표면적으로는 손흥민의 축구에 대한 열정과 실력이지만, 중국에서 프리미어리그가 갖는 위상, 그리고 중국인들은 손흥민을 한국인이 아니라 ‘아시아의 자존심’으로 자신들과 동일시해 왔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그들이 선망하는 유럽 최고의 리그에서 아시아 선수가 빛을 발하고 있다는 사실에 중국인들은 강한 자부심을 느낀다. 일종의 BIRG 현상이다(Basking In Reflected Glory, 자신이 속한 집단이나 자신과 관련된 인물의 성공을 자신의 성공처럼 느끼고, 이를 통해 긍정적인 자아상을 강화하는 심리 상태).
하지만 손흥민은 중국과의 경기에서 철저하게 한국인으로서, 한국 대표 선수 중의 한 명으로 행동했다. ‘차이나 머니’를 의식해 중국 팬들에게 예의를 갖추고 중국 축구를 칭찬하는 립서비스를 했던 다른 나라의 스타급 선수들과는 분명 다른 행동을 보였다. 중국 팬들 입장에서는 상당한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중국인들이 손흥민에 대해 느꼈던 배신감의 기저에는 중국의 아시아 주변 국가에 대한 동질감과 서구에 대한 열등감이 동시에 공존하는 중국 특유의 모순된 사고 방식이 존재하고 있다.
중국의 동양에 대한 동질 의식은 한족의 문화와 정체성에 기반을 두고 있기에 중국의 국가 정체성이 한족의 정체성과 문화와 동일시되는 경향이 강하다. 중국의 통일된 왕조들은 집단 이동, 측량 및 측정의 표준화, 지적 다양성의 제거, 역사 쓰기의 독점 등을 포함하는 극단적인 동질화 체제를 통해 내부적으로 단일한 한 문화를 형성했고 대외적으로도 주변국에 동질화를 끊임없이 요구했다. 문제는 주변국에 대한 대외적인 동질화의 요구가 패권적인 중화주의의 형태로 발현되었다는 것이다.
중국의 서구에 대한 열등감은 19세기의 서방 침략부터 시작하여 ‘백년의 굴욕’이라는 현대사적 서사의 구축에 이르기까지 긴 역사적 과정을 통해 중국인이 서방/백인의 우월성을 내면화한 결과다.
중국인들의 서구에 대한 사대주의는 서구 문화와 가치를 우월하게 보는 태도를 나타내며, 이는 중국인들이 서구 축구 리그, 특히 손흥민이 활동하는 프리미어리그를 높이 평가하는 경향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관점에서, 손흥민은 서구 축구 리그에서 한국인이 아닌 성공적인 ‘아시아 선수’로서 중국인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것이다.
다른 아시아 국가가 유럽을 이기는 건 불편하다. 만일 유럽을 이긴다면 그 주체는 아시아의 대표인 중국이어야 한다. 중국의 선전은 아시아의 선전이며, 만일 중국을 뛰어넘는 한국인이나 일본인이 있다면 그는 반드시 ‘아시아인’인이어야 한다. 자국 중심의 중화사상과 서구 우월주의 사이에서 모순된 국민성을 갖게 된 중국인들이다. 손흥민 '사가'를 보며 다시 한 번 중국인들의 세계관을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