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혼자 보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씁니다."
회사에서 회장님께서 선물을 챙겨주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마음을 담아 감사 문자를 드리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문자가 마음에 들었다며
여러 번 다시 읽었다고,
오히려 고맙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아마도 그 문자 속에 스며 있던
나의 작은 다짐이
회장님의 마음을 건드렸던 모양입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뒤부터
이상한 부담이 생겼습니다.
나는 그저
감사한 마음을 진심으로 표현하고 싶었을 뿐인데,
그 문장이 누군가에게
몇 번이고 다시 읽히는 순간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음 메시지를 쓸 때마다
문장보다 먼저 질문이 따라붙었습니다.
“정말 이것이
너의 진짜 마음이 맞니?”
참마음이 아니라면
차라리 쓰지 않는 것이 낫겠다—
그런 생각이 들 만큼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주 단순한 생각이 스쳤습니다.
“이 글이 정말 내 마음인지
그렇게 고민된다면…
그냥 문자처럼 노력하고,
그렇게 살면 되잖아.”
그 순간
불필요한 고민이 사라졌습니다.
마음이 움직이면 그대로 쓰고 말하고,
그리고 그 말에 부끄럽지 않게 살기 위해
조용히 노력하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는
단순한 깨달음이 자리했습니다.
일기는 자주 쓰던 습관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한동안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혼자 보는 일기장임에도
언젠가 누가 보게 된다면
조금 더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문장을 멋지게 꾸미는 나 자신이 싫었고,
정작 내 마음을 적지 못하는
그 모습이 밉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우연히
드라마 안나의 한 장면을 보았습니다.
“사람은
혼자 보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씁니다.”
그 대사가
내가 마주하기 싫어하던 마음을
정면으로 끌어올려
내 앞에 놓아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람은 누구나 크든 작든
거짓을 달고 살아갑니다.
결백하다는 말,
나는 너보다 낫다는 말—
이런 말들 역시
어쩌면 작은 거짓의 그림자일지 모릅니다.
높고 낮음,
크고 작음,
무겁고 가벼움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결국은 우리는
비슷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손가락질하거나
정죄하기란 어렵습니다.
나 역시 같은 얼굴을 지니고 있고,
그렇게 할 수도,
이미 그랬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포용하자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인간이라는 존재가 본래
포장하고 싶고,
잘 보이고 싶고,
거짓을 섞어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그저 인정하고 싶을 뿐입니다.
그러면서도
정말 ‘나다운 사람’으로
올바름을 향해 걸어가고 싶다면—
흠과 한계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다는
그 욕심 하나만큼은
놓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루하루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고,
조용히 약속하고,
다시 걸어가는 것,
그렇게 살아간다면
언젠가 누군가
“너도 똑같아.”
라고 말할 때,
“아니야,
나는 다르게 살고 있어.”
라고,
비록 작은 목소리일지라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루하루의 삶은
참 깊고 오묘합니다.
그러면서도 끝없이 반복되어
지치고,
때로는 지루하기도 합니다.
그런 반복 속에서
온 힘을 다해 살다가
지쳐 쓰러지듯 드는 잠—
그 단순한 순간이
문득,
가장 큰 행복처럼 느껴지는 밤이 있습니다.
“사람은
혼자 보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씁니다.
하지만
진실은 간단하고,
거짓은 복잡합니다.”
— 드라마 안나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