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問喪)
죽음이 무엇인지
제대로 묻지도 못한 채,
타인의 죽음 앞에서
숙이는 법을 먼저 배웠다.
신발장에 겹겹이 놓인 신발들,
떠난 이가 남긴 인연들이다.
바쁜 발걸음들이
뒤집어 놓고 들어와
꺾어 신은 채
바쁘게 떠나간다.
망자의 슬픔을 묻는 자리에서
정작 나의 죽음은
제대로 묻지도 못했다.
살아 있는 삶이 무겁다면서
쓴잔을 들이키고,
죽음을 여러 번 겪어본 사람처럼
태연해 한다.
죽음을 향해
한 걸음씩 걸어가는 사람들,
몇 걸음 남았는지도 모른 채
아슬아슬하게 살고 있다.
이곳에선
삶은 무겁고,
죽음이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