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비 내리는 거리,
빗물 속 나무들은 앙상한 손을 뻗어
마지막 잎새를 내려놓는다.
낙엽은 빗물처럼 흘러 떠돌고,
나는 그 사이 신호등 앞에 서 있다.
붉은 불이 앞을 막아선 채,
고요히 내리는 빗방울은
내 망설임 속으로 스며들어 속삭인다.
빨강은 기다림이라, 묵묵히 날 붙잡고
초록은 희망이라, 내게 길을 열어 준다.
내 발걸음은 아직 나아가지 못해
잎을 떨구는 나무들처럼
차마 놓지 못하는 마음의 무게를 안고 있다.
이내 초록이 오면,
나는 그 빛을 따라 걸어갈 수 있을까?
뒤늦은 후회를 낙엽처럼 남길 것인가,
아니면 빗물처럼 흘러가며 이 순간을 맞이할 것인가.
붉음과 초록이 교차하는 빛의 망설임 속에서,
내 마음도 잎을 떨구듯
한 겹씩 내려놓아
겨울나무처럼 가벼워지기를.
언젠가 초록의 부름이 다시 올 때,
비에 씻긴 망설임을 두고
부드럽게 빛을 향해 걸어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