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자 Y와 수다02
앞에 놓인 떡볶이 탓인지,
다시 만난 Y의 표정은 조금 나아 보였다.
슬쩍 물었다.
퇴직금은 입금됐어? 후련하겠어.
Y가 답했다.
"그저께 누워서 멍 때리고 있는데 알림이 띡 하고 울리는 거야. 전 애인의 무엇인 것 마냥 느낌이 싸하길래, 확인해보니까 퇴직금 입금 알림이더라고."
이별 톡처럼 허무했다 한다. 5년간 저당 잡힌 생활을 환산한 값처럼 느껴졌다고.
"그나저나 갑자기 시한부가 된 것 같아. 이 잔고가 갱생하기까지 남은 기한처럼 느껴져. 이걸 다 쓰기 전까지 갱생되지 못하면...!"
Y는 손으로 목을 조르는 흉내를 내보이더니 키득키득 웃었다.
'갱생'. 그 단어에서 Y의 퇴사 후 결의가 느껴져 좋았다.
"근데 있잖아, 퇴사하고 나니까 제일 좋은 게 뭐게"
Y는 웃음을 머금은 채 말했다.
"웃을 일이 줄었다는 거야."
아마 Y의 눈에 의아한 나의 표정이 비췄을 거다.
"회사에서의 웃음은 머리로 웃는 웃음이라 힘들어. 뭐랄까, 투명하지 못한 웃음. 하루에도 수십 번씩 그러고 나면 진이 빠진다. 회사에서의 대화는.. 그냥 말이 아니라 소리야. 겉이, 껍데기끼리 부딪히는 소리. 벙벙한 소리지만 나도 답은 해야 할 거 아니니. 근데 오후쯤 되면 내가 다 소진돼서 내 껍질을 움직일 힘도 없어. 물이 다 빠져나간 뻘 가운데서 죽기를 기다리는 거북이 같이."
"그럼 일단 웃는 거야. 내 과한 웃음소리가 빵! 하고 내 귀로 꽂히게. 뇌로 쏘는 방아쇠랄까. 일종의 위기 신호, 빨간불. '야 Y, 시간 없어. 집중해, 할 말 생각해, 이 웃음소리가 끝나기 전에'"
Y는 머리로 웃는 웃음의 쓸모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그러나, 그러나! 이 병적이고 고된 웃음의 최대 쓸모는 다른 데 있지. 관계를 맺는 게 잠수 같다고 생각할 때가 있거든. 숨까지 참아야 할 만큼 집중해야 하는 거잖아 잠수는. 그래야 바닷속을 깊이,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으니까. 그러면 진짜 바다를 볼 수 있으니까. 사람 사이가 깊어질 땐 그런 집중, 숨통이 닫히는 잠수, 뭐 그런 게 필요한 것 같아서."
Y는 포크에 떡볶이 두 개를 연달아 꽂았다.
"... 상대가 그렇게 깊이 들어와서, 바닥의 나를 볼 것만 같으면 그러면, 웃음을 터트린다. 그 집중과 닫힌 숨통을 깨트려, 상대를 퐁! 하고 수면 위로 띄워 올려. 못 들어오게. 그렇게 매일 수백 번."
Y가 떡볶이 세 개를 한 번에 꽂은 포크를 자랑스레 내보이곤 왁하고 먹었다.
물 바깥에서 숨을 터트리듯,
Y는 시끄러운 웃음으로 자신 안으로 잠수하는 사람들을 끌어올리느라 열심이었다고 했다.
잠수하면 뭐 있는데?
별 게 아닌 것처럼 물었다.
"나겠지, 나를 보잘것없다고 생각하는 나."
Y는 소리 없이 미소를 지었다.
나도 미소가 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