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등에서 잘나가던 아이들이 고등에서 무너진다
지난해 우리 반 아이가 자퇴를 했다. 자퇴를 하겠다고 나를 찾아왔을 때 친구들 사이의 문제를 제일 먼저 의심했다. 하지만 00이가 자퇴를 선택한 이유는 입시 때문. 1학년과 2학년 1학기까지 받은 내신으로 자신이 원하는 대학 진학은 어렵고, 정시는 자신이 없고. 검정고시를 잘 쳐서 검정고시 전형으로 더 높은 대학에 가겠다는 계획이었다.
이미 2학년 2학기였다. 검정고시를 준비하기에도 빡빡한 시간이었다. 00이 어머니와 내가 여러 번 말리고 또 말렸지만 결국 00이는 자퇴를 선택했다. 끝까지 반대 의사를 보이던 00이 어머니도 아이 인생 엄마가 대신 살아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스무 살이 다 되어가는 아이의 결정을 더이상 말릴 수가 없다고 하시며 00이의 손을 들어주었다. 00이가 자퇴서에 서명하고 교무실을 나서던 날, 나도 울고, 00이도 울고, 어머니도 울었다.
00이는 초등학교,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전교 순위권 안에 들던 아이였다. 학교 다니는 내내 예쁘고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라고 칭찬을 받고 자랐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해 치른 첫 시험에서 좌절을 맛봤다. 늘 하던 대로 시험을 준비 했지만 평균 3등급의 성적을 받았다. 평균 3등급의 성적은 보통의 지방 일반고 인문계열에서는 수시로 지방 국립대를 가기에 부족한 성적이다. 부랴부랴 학원도 다녀 보고 잠자는 시간, 먹는 시간도 줄여 가며 공부량을 늘렸지만 역부족이었다. 3등급의 성적은 오르기는커녕 유지도 어려워졌다.
이런 이야기는 비단 00이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진학한 대부분의 아이들이 겪는 첫 번째 좌절이다. 이는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에서 비롯된 당연한 결과다. 중학교는 절대평가지만 고등학교는 9등급제 상대평가기 때문.
중학교 때는 90점만 넘으면 1등급을 받았다. 아이들의 학업 성취 의욕 고취를 위해 시험 문제를 쉽게 출제하라는 압박을 받는 곳도 있단다. 하지만 고등학교는 다르다. 고등학교 시험은 아이들의 등급을 나눠야만 한다. 등급이 제대로 나누어지지 않으면 오히려 민원이 빗발친다.
각 과목의 수강생 4%만이 1등급을 받는다. 국어 과목 수강생이 100명이라고 했을 때 1등급을 4명만이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90점만 넘으면 1등급을 받던 아이들이 0.1점으로 등급이 갈린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선택과목이 늘어나면서 과목별 수강 인원은 줄어들고 1등급을 받는 학생 수 또한 점점 줄어든다. 반면 아이들의 좌절은 점점 커진다.
이런 상황에서 여러 유형의 아이들이 나타난다. 00이처럼 학교를 그만두고 다른 길을 모색하는 아이, 자신의 위치를 받아들이는 아이, 중학교 때의 성적을 탈환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는 아이. 저마다의 좌절을 품에 안고 학교생활을 한다. 내신 경쟁에서 밀려나면 수능을 쳐서 대학을 가는 정시를 생각해 볼 수 있지만 정시 준비는 내신 준비보다 더 어려워 시도조차 안 하는 아이들이 부지기수다.
지난해 내가 근무한 학교는 나름 학군지였다. 초중학교 성취도가 지방에서 손꼽힐 정도의 지역이었다. 초등학교에서부터 아니, 초등 입학 전부터 각종 학습지와 사교육으로 무장된 아이들이 왜 이렇게 됐을까?
나 또한 아이가 생기고 내 아이의 초등 입학을 목전에 두면서 더욱더 궁금해졌다. 좌절하는 아이들에게 꽂혀있던 시선을 반대로 돌렸다. 초중학교 때는 별 두각을 보이지 않다가 고등학교에서 놀라운 성적을 보여주는 아이들에게로.
‘저 아이는 예전부터 잘 했나? 아니면 갑자기 잘하나? 어떻게 공부하길래 이렇게 잘하나?’
고등학교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아이들 즉, 고등학교에서 포텐 터지는 아이들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초등학교, 중학교에서는 축구만 하는 아이인 줄 알았는데 고등학교 진학 후 내신 올 1등급을 찍더니 학력평가 성적도 1등급을 받아내는 아이. 처음에는 그 아이가 지금 고등학교에서 해내는 공부에 답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답은 그 아이가 보낸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에 있었다.
이 학교, 저 학교의 1등들을 수소문해 관찰했다. 고등학교에서 포텐 터지는 아이들의 공통점은 초등학교부터 준비가 잘된 아이들이다. 이런 말을 하면 엄마들은 무조건적 반응으로 묻는다. “어느 학원 다녔대? 무슨 학습지 했대?” 하지만 여기서 준비가 잘 되었다는 말은 선행 혹은 사교육으로 잘 무장했다는 말이 절대 아니다.
이 아이들은 엄마표로 초등학교에서부터 다져온 단단한 기본기가 있다. 이는 학원은 한 군데도 가지 않고 엄마가 A부터 Z까지 가르쳤다는 얘기도 아니다. 엄마가 중심을 잡고 내 아이에게 맞는 공부를 함께 했다는 것이다.
유치원, 초등학교 때부터 쌓아온 독서량, 일상적으로 학습해 온 영어, 학습 결손 없이 반복 학습으로 꾸준히 다져온 연산 실력.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하고자 하는 의지와 인내력. 그리고 적재적소에 필요한 만큼의 사교육. 이 모든 것들의 바탕에 엄마표가 있었다.
요즘 고등학생들은 정말이지 너무너무 바쁘다. 우리 엄마들 학교 다닐 때랑은 비교도 안 되게 바쁘다. 치열한 내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시험 공부는 물론 수많은 수행평가를 해내야 한다. 학력평가 성적도 관리해야 한다. 원만한 친구 관계는 기본이고, 유행하는 춤도 추고 노래도 불러야 한다. 육각형 인간이 따로 없다.
이렇게 바쁜 시기, 초등, 중등에서 제대로 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아이에게 고등학교에 와서 잘하라고, 열심히 하라고 하면 이건 폭력이다. 아이가 먹는 시간, 자는 시간, 쉬는 시간을 모두 희생하고 해야 할 수 있는 양이기 때문이다.
내 아이도, 내가 학교에서 만나는 다른 집 아이들도 고등학교에서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포텐이 터지면 좋겠다. 그러려면 다소 시간적 여유가 있는 초등학교에서부터 엄마가 함께 실력을 다져줘야 한다. 중학교에서 하면 되지 않냐고? 중학교 사춘기 시절 엄마 말이 먹히기 쉽지 않다. 초등학교 엄마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사교육도 선행도 답이 아니다. 엄마표가 답이다.